지난 7월 27일 강화도에서 ‘한강하구 평화의 배 띄우기 행사’가 열렸다. 2008년 중단된지 10년 만에 부활했다.평화의 배는 강화군 외포리 선착장에서 평통자문위 관계자 등 150명이 탑승해 출항했다. 선상에서는 평화공감 토크와 공연, 종전선언 퍼포먼스가 열렸다. 북한과 인접한 강화 교동도 월선포에서는 평화 사신맞이 환영행사와 평화의 섬 스토리텔링 등 다양한 행사가 마련됐다.특히 평화의 배에서는 한강 물과 임진강 물, 예성강 물을 혼합하는 합수식을 갖고 어로한계선 이북 800m까지 항해했다가 되돌아왔다. 같은 날 경기 김포 전류리포구에서도 ‘한강하구 뱃길 열기’ 행사가 열렸다.
한강하구를 낀 김포시는 이번 합의를 토대로 공동이용수역을 평화경제특구로 지정하고 접경지역 관광 단지를 조성하는 등 관광 사업을 원활하게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정하영 김포시장은 "김포시는 한강하구 공동 조사와 민간선박 항행 등 중립수역을 평화적으로 이용하려는 사업을 추진해왔다"며 "한강하구 평화경제특구 지정과 평화생태 관광단지 조성 등의 노력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한강하구의 민간선박 통행을 기원하며 '평화의 배 띄우기' 행사에 참여해 온 김대훈(56) 김포범시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은 20일 "원래 한강하구는 정전협정에 따라 민간선박이 자유롭게 통행해야 하는 구역이었다"며 이번 합의를 반겼다.이어 "인근 어부들에 의하면 신곡수중보부터 전류리포구까지 준설이 안 돼 강바닥에
임진강과 예성강 한강이 합쳐 서해로 빠져나가는 한강하구(漢江河口)가 있다. 남측은 김포에서 교동도, 북측은 개성에서 황해도 연안군이 해당된다. 한강하구는 지난 남북정상회담전까지 군사통제구역이었다. 남북정상회담후 남북이 공동수역으로 개발하기로 했다.◆12월까지 공동조사단남북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열리던 지난 9월 19일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북한 인민무력상은 한강하구를 공동이용수역으로 설정하고 이를 위한 군사적 대책을 강구하기로 합의서 서명했다. 공동이용수역은 남측의 김포반도 동북쪽 끝에서 교동도 서남쪽 끝까지, 북측의 개성시 판문군 임한리에서 황해남도 연안군 해남리까지다. 길이 70㎞·면적 280㎢에 이른다.남북은 올해 12월까지 공동조사단을 꾸려 공동이용수역의 현장조사를 하고 민간
최근 남북정상회담 등 평화 무드로 실향민들 설레서해 교역로… 대룡시장 교동향교 화개사 등 인기강화 교동도는 남북이 합의한 한강공동수역의 끝에 해당한다.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에 합쳐진 강물은 교동도를 통해 서해 넓은 바다에 도달한다. 교동도에는 지금도 실향민이 많이 살고 있다. 황해도 옹진이나 개성 해주가 고향인 실행민이 적지않다. 전쟁을 피해 잠시 섬으로 피해왔는 데 70년이 넘었다. 북한 땅을 바로 마주한 지리적 특성 때문에 분단의 아픔과 통일의 여망이 공존하는 곳으로 주목받는다.◇ 분단의 아픔 속 피어오르는 통일의 희망한반도가 분단되기전 교동도와 북한 황해도 연백군(현 황해남도 연안군·배천군)은 같은 생활권이었다. 교동도에서 북한 땅과의 거리는 3㎞ 남짓, 최단 거리는 2.6
광주대단지 사건은 1977년 ‘창작과 비평’에 발표된 윤흥길의 중편소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의 배경이 되었다. 이 소설은 주인공을 통해 도시 소시민의 위선과, 도시화와 산업화라는 미명하에 우리 사회의 폭력성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경찰의 보호관찰 대상자이자 시위사건 주동자였던 권씨가 학교 교사인 오 선생의 문간방으로 이사 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참담한 고생 끝에 경기 성남 시청 뒷산 은행주택을 산 다음, 자그마치 100평 대지 위에 슬라브 집을 지은 오 선생. 그의 집에 권(안동 권)씨네가 문간방으로 이사하던 날. 그 풍경이 가관이다 못해 장관이었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다.화이트 컬러 노동자의 상징인 구두. 권씨는 문간방에 살망정 반짝이는 구두를 신는다. 어쩌면 그에게 구두는 지식인의 마
한국 산업화의 모순이 폭발한 지점이자 성남시의 태동이 되었던 1971년 8월 10일 발생한 광주대단지 사건을 다룬 연극이 최초로 무대에 올랐다. 성남의 한 극단이 지난 8월 4일과 5일 6시 성남아트센터 앙상불시어터에서 광주대단지의 다른 이름 ‘황무지’를 무대에 올렸다.황무지는 지난해에 이어 2번째로 무대에 올려지는 작품으로 올해 연극에서는 ‘황무지’는 ‘아이의 눈’을 통해서 본 광주대단지의 처참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를 통해 광주대단지의 상황을 새로운 시각에서 보여주어 관객들에게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할 예정이다.한경훈 극단 성남93 대표는 "광주대단지 사건을 형상화한 작품은 황무지가 처음이다“라며 "황무지를 통해 광주대단지사건의 의미를 돌아보는 공연이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한편
성남시가 47년 전인 1971년 서울 판자촌 주민 집단이주 과정에서 발생한 '광주대단지 사건' 재조명 작업을 다시 검토하고 나섰다. 광주대단지 사건은 1971년 서울시 무허가 판자촌 철거계획에 따라 경기 광주군 중부면(현 성남시 수정·중원구. 1973년 성남시로 분리) 일대에 조성한 광주대단지에 강제로 이주당한 철거민 10만여명 중 수만 명이 생존권 대책을 요구하며 벌인 집단 저항이었다. 성남시는 오래전부터 광주대단지 사건 재조명과 당사자들의 명예회복을 추진해왔다. 은수미 성남시장이 취임하면서 재조명을 다시 시도하고 있다.◆시가 앞장서 진상 규명과 명예회복은수미 성남시장은 지난 8월 22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광주대단지 사건으로 구속됐다가 47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면복권조차 이뤄지지 않은 22
일반인 잘 몰라… 민간인 없고 해병대·해군 주둔물빠지면 북한 갯벌과 연결… 북 훈련 포격 들려연평도와 강화도 사이에 우도(隅島)라는 섬이 있다. 서해 5도의 하나인 우도를 아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다. 심지어 위치조차 알지 못한다. 우도는 인천시 강화군 서도면 말도리에 딸린 섬이다. 이 섬이 잘 알려지지 않는 주된 이유 중의 하나는 군사 지역으로 군인들만 거주하고 특별히 관심을 끌만한 사건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사요충지이다. 면적이 작고 민간인은 살고 있지않다. 일반인들은 허가를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다.◆연평도와 강화도 사이 위치우도는 연평도와 25km, 강화도의 말도와 14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연평도 선착장에서 보면 동쪽에 멀리 보이는 섬이 하나 있는데 서해 5
대원군이 물러나고 고종이 친정을 펼치기 시작한 1874년 조선은 외교 노선을 바꿔 일본과 여러 차례 접촉을 갖고 정상적인 외교 관계를 맺으려 노력한다. 그러나 양쪽의 입장이 워낙 달라 관계 정상화를 이끌어 내는데 실패한다. 일본은 결국 무력 사용이라는 카드를 꺼내든다. 1875년 이른바 운양호 사건이다. 일본 군함은 조선의 허락도 없이 조선의 바다를 맘대로 오간다. 강화도와 영종도에 포를 발사하고 민간인을 살상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일본은 무력으로 조선을 길들이겠다는 의사를 확실하게 나타냈다.◆조선 연해 탐사 명목 일본 군함 파견일본 정부는 군함을 파견하면서 대마도와 조선의 연해 항로를 조사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걸었다. 1875년 5월 25일 운양호(雲揚號)함이 부산에 입항한다. 운양호는
고(故) 장준하 선생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선생의 뜻을 기리는 행사가 지난 8월 26일 서울에서 열렸다. 장준하100년위원회와 서울시는 서울시청 광장에서 '장준하 100년 어울림 한마당' 행사를 열고 시민들이 참여하는 다채로운 체험 부스를 운영했다.시민들은 광장 곳곳에 마련된 부스를 찾아 장 선생의 탄생 100년을 축하하는 글을 작성하거나 화가 홍성담, 이하, 박정진 등 작가 5명의 전시회를 둘러봤다.장 선생의 '못난 조상이 되지 말자'는 어록을 효림 스님의 글씨체로 프린트한 종이를 나눠주는 부스에도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이 밖에 장 선생을 기리는 '민주주의의 등불 장준하', '두 손바닥은 따뜻하다’ 등의 서적과 한자 '백성 민(民)'을 그림으로 표현한 티셔츠 등의 기념품 판
지난 8월 18일 장준하 선생이 숨진 채 발견된 장소인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약사계곡 현장에서 43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추모식에는 유족을 대표해 장남 장호권 '사상계' 대표와 박윤국 포천시장 등 80여 명이 참석했다. 추모식은 국민의례,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약력 소개, 추모사, 추모의 노래 제창, 유족 인사, 헌화 순으로 30분간 진행됐다.장호권 대표는 "이곳은 등산 전문가도 오기 힘든 계곡인 데다 선친이 발견되기 불과 1주일 전에 군사보호구역에서 해제된 곳"이라며 타살 의혹을 제기한 뒤 "암울한 역사를 되돌아보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박윤국 포천시장은 추모사를 통해 "선생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실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며 "진실 규명과 함께 선생의 애국애족의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정치가·민주화운동가였던 장준하(1918∼1975)선생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조국 사랑 정신을 되살리려는 움직임이 포천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장준하 선생은 일제 강점기에 광복군과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했다. 광복 후 박정희 유신정권에 맞서 싸우다 1975년 포천 약사봉에서 목숨을 잃었다. 포천시는 최근 장준하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민주화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장준하 100년 위원회’(위원장 장호권)와 상호협력에 관한 협약을 체결했다.◆포천, 장준하 정신 계승포천시와 장준하위원회 협약식에는 박윤국 포천시장과 ‘장준하 100년 위원회’ 장호권 위원장 및 조용춘 포천시의회 의장 등 20여명이 참석했다. 협약식은 장준하 선생 탄생 100주년을 맞아 ‘장
인근은 개항전까지 인천 중심지… 인천도호부 산성 등 유적지지난 50여년간 군사지역이었다가 2015년 개방돼 시민 품으로인천 문학경기장 인근에 있는 문학산(文鶴山)은 인천을 대표하는 산이다. 주말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2000여 년전 인천의 첫 출발지가 문학산이었다. 최근 문학산 정상에 지난 2000년의 역사를 보여주는 역사관이 들어섰다. 지난 주말에는 매년 한 차례씩 인천시민을 위한 무료 음악회가 열렸다. 오랫동안 인천의 중심지였지만 군사지역에 묶여 몇 년 전까지 멀리서만 바라봤던 문학산이 이제는 개방돼 인천시민들의 친구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고 있다.◆인천 역사의 발상지문학산은 인천시 미추홀구의 문학동 · 관교동 · 학익동과 연수구 연수동 · 청학동에 걸쳐 위치한 산이다.
1882년 임오군란후 중국인 인천 몰려와 차이나타운 형성1910년대 최초 중국음식점 '공화춘'… 박물관으로 재탄생국민음식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짜장면은 인천에서 처음 탄생했다. 1882년 임오군란 시기 조선에 파견된 청나라 군대의 군용품을 조달하기 위해 중국 상인 40여명이 한반도로 들어왔다. 이후 상인과 부두 노동자 등 많은 중국인들이 조선으로 건너와 인천에 자리잡았다. 이들은 인천에서 한국식 짜장면을 즐겨찾았다. 무엇보다 값싸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인천서 한국식 짜장면 탄생2017년 개봉한 영화 '대장 김창수'는 1896년 황해도 치하포에서 일본인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주인공을 다룬 이야기다. 배우 조진웅이 연기한 김창수는 훗날 임시정부의 지도자가 된 백범
조선 26대왕 고종이 친정 체제를 갖춘 1874년 조선과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처음 공식적으로 외교적 접촉을 갖는다. 이전까지 오랫동안 조선의 일본의 외교는 대마도라는 중개인을 통해 이뤄져왔다. 그러나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단행하며 조선과 직접 외교를 시도했다. 6~7년간 갈등 기간을 거친 뒤 고종은 유연한 자세를 갖고 일본과 협상에 임한다. 조선은 일본의 문서에 일본 왕을 황제로 칭하는 등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서계 내용을 일부 수정하면 교섭을 갖겠다는 입장이었다. 일본의 조선의 요구를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그러나 막상 협의 때는 서로의 입장이 다르다는 사실만 확인하게 된다. 결국 1875년 일본은 조선에 군함을 보내 무력 행사에 들어가 강화도에서 운요오호 사건을 일으킨다.◆고종 대일외교 라인의 변화
일제때 어업 전진기지… 철새들 오가는 통과지로 유명조선 후기 김대건 신부 육지 잠입위해 여러 차례 오가대청도 인근에 있는 소청도(小靑島)는 인천항에서 북서쪽으로 약 165km 떨어져 있다. 대청도에서 9.6㎞, 백령도에서 14㎞ 거리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대청면 소청리이다. 지질학 연구에 중요한 분바위가 있고 기암괴석과 해식동굴, 자갈해안 등으로 경관이 뛰어나다. 봄가을에 철새들이 많이 지나가는 철새 통과지이기도 하다.◆인천항에서 선박으로 4시간인천항에서 여객선으로 4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소청도의 면적은 2.91 ㎢이며 인구 270여 명에 177가구가 살고 있다. 소청도는 여러 차례 행정섬 남쪽에는 화석 스트로마톨라이트로 이루어진 해안인 천연기념물 제508호가
수원시가 지난 8월 14일 시청 대강당에서 ‘수원시 명예의 전당 헌액식’을 열고 8명을 헌액했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인물은 독립운동가 김세환·이선경·임면수·김향화, 서지학자 이종학, 기업가 최종건·최종현, 평화활동가 안점순 할머니 등이다. 모두 세상을 떠났지만 수원을 크게 빛낸 위인들이다. 8명의 업적을 2회로 나뉘어 싣는다.염태영 수원시장은 기념사에서 “명예의 전당 헌액자들은 수원의 명예를 드높인, 공적으로 귀감이 되는 분들”이라며 “명예의 전당은 우리 시민의 자긍심을 높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헌액식 후에는 시청 본관 로비 벽면에 설치한 명예의 전당 제막 행사가 이어졌다. 명예의 전당에는 헌액자들의 사진과 간략한 생애·경력·업적 등이 새겨진 동판을 부착했다.헌액식에는 임면수 선생의 손자
푸른 소나무가 많은 섬이어서 대청도… 원래 이름은 포을도고려 때 원나라 황태자들이 권력 다툼 속에 잇달아 유배와서해 5도의 하나인 대청도(大靑島)는 인천에서 북서쪽으로 약 171㎞가 떨어져 있다. 인천에서 배를 타고 가면 4시간 정도 걸린다. 약 40㎞ 거리에 백령도가 있다. 백령도와는 배를 타고 20여분 거리다. 대청도는 특이한 해안과 산세, 깎아지른 듯한 절벽 등 지질학의 보고이며 풍광이 빼어나다. 지난 2009년 대청도 인근에서 남북 무력 충돌이 일어나 뉴스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다.◆지질학의 보고 신이 내린 낙원대청도는 서해에 위치한 대한민국의 백령군도에 속한 섬이다. 행정구역 상으로는 인천시 옹진군 대청면 대청리에 속한다. 대청도의 면적은 12.623 ㎢, 인구는 130
유엔사에서 주관하는 ‘한국전쟁 정전 65주년’ 행사가 지난 달 27일 파주 판문점에서 개최됐다. 정전협정은 지난 1953년 7월 27일 유엔군과 북한군, 중공군 사이 체결됐다. 정부는 이 날을 '6·25전쟁 유엔군 참전의 날'로, 북한은 '조국해방전쟁 승리의 날'로 기념해왔다.남북 평화 분위기 속에 개최되는 이번 행사는 더욱 의미가 있다. 북한이 최근 조속한 종전선언 채택을 촉구하고 있는 만큼 정전협정 기념일에도 대결보다는 종전선언의 필요성과 평화를 향한 의지를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종전선언이 국제법적 구속력이 있는 평화협정은 아니나 ‘한반도에서 전쟁은 끝났다’는 선언으로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4·27 판문점 선언) 열망에 불을 지필 것으로 기대된다.이번 행사에 특별히 초청받
한국전쟁 당시 우리 나라는 정전협정에 강력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특히 이승만 대통령은 무력으로라도 통일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해 미국과 불편한 관계에 놓였다. 군인들에게 전투 행위를 계속할 것을 주문했다. 미국은 이승만 제거 계획을 세우기도 했으나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정전 협정이 체결된 이후에도 이승만은 줄기차게 정전 협정이 휴지 조각이라며 부정했다. 정전 이후인 1954년 7월 31일 미국을 방문한 이승만은 기자회견에서 "정전 협정은 이제 공문서(空文書)가 되었다" 며 정전 자체를 부정했다. 그만큼 통일 의지가 강했다.이승만 대통령은 무력을 행사해서라도 통일을 해야 한다고 강력 주장했다. 북진통일을 주장하며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자 여러 차례 미국가 맞선다. 연합군의 포로를 임의로 석방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