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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최초’ 짜장면130여년전 인천서 첫 짜장면… 국민음식이 되다
  • 이두 기자
  • 승인 2018.09.06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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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음식으로 최고 인기를 얻고 있는 짜장면.

1882년 임오군란후 중국인 인천 몰려와 차이나타운 형성

1910년대 최초 중국음식점 '공화춘'… 박물관으로 재탄생

국민음식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짜장면은 인천에서 처음 탄생했다. 1882년 임오군란 시기 조선에 파견된 청나라 군대의 군용품을 조달하기 위해 중국 상인 40여명이 한반도로 들어왔다. 이후 상인과 부두 노동자 등 많은 중국인들이 조선으로 건너와 인천에 자리잡았다. 이들은 인천에서 한국식 짜장면을 즐겨찾았다. 무엇보다 값싸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인천서 한국식 짜장면 탄생

2017년 개봉한 영화 '대장 김창수'는 1896년 황해도 치하포에서 일본인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주인공을 다룬 이야기다. 배우 조진웅이 연기한 김창수는 훗날 임시정부의 지도자가 된 백범 김구다. 영화 속 김창수는 살인 혐의로 체포된 이후 인천 감리서(감옥소)에서 수감 생활을 하며 강제노역에 동원된다. 경인선 철도 건설 현장이었다. 이 장면에서 그는 동료 재소자들과 함께 경인선 철로 옆에서 젓가락을 이용해 짜장면을 먹는다. 재소자들은 처음 맛보는 신기한 음식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영화 속 배경인 인천과 중국에서 건너온 한국식 음식 짜장면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한국식 짜장면이 처음 만들어진 곳이 인천이기 때문이다.

1882년 8월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이 체결되면서 중국 상인들은 조선 정부와 민간인을 상대로 장사할 수 있게 됐다. 이후 많은 중국 상인 화교들이 몰려왔고 인천에만 230여명이 머물렀다. 1884년 인천시 중구 선린동 일대 구릉 지역에 5000평(약 1만7000㎡) 규모의 청국 조계지(租界地)가 설정된 이후에는 인천으로 이주한 화교가 더 늘었다.

인천 차이나타운 일대.

치외법권이 인정되는 청국 조계지 내에서 무역 활동뿐 아니라 부동산도 소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 제물포항에서 일하는 부두 노동자도 중국에서 대거 들어왔다. 1900년 인천 지역 화교는 2200여명까지 증가했다. 화교 집단 거주지인 인천 차이나타운이 형성된 것도 이 시기였다.

주로 중국 산둥성(山東省) 출신이 90%가량인 이 화교들은 값싸게 먹을 수 있는 고향 음식으로 짜장면을 즐겼다. 한자로는 작장면(炸醬麵)으로 표기하는데 중국식 발음이 짜장면이어서, 이게 그대로 한국에 전해진 것이다. 원래 발음은 자장면이지만 경음화 현상이 널리 퍼져 짜장면이라는 말도 같이 표준어로 인정되고 있다. 짜장면은 현재도 산둥성을 포함한 중국 북방지역과 대만에서도 같은 이름과 비슷한 제조방식을 통해 판매되고 있지만, 맛은 우리와 조금 다르다.

짜장면은 중국식 된장인 춘장에 캐러멜 색소와 돼지고기 등을 추가하는 등 변화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과 맛으로 진화했다.

돈을 벌기 위해 한국 인천에 온 산둥성 화교들이 고향 생각이 간절할 때 많이 요리해 먹던 짜장면은 이제 한국인들의 국민음식이 됐다.

 

이두 기자  ld@1g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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