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경기

상단여백
HOME 메트로 경기이야기
[경기이야기] 수원 명예의 전당 8인
  • 이두 기자
  • 승인 2018.08.30 17:47
  • 댓글 0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서 기념 촬영을 한 참석자들. 사진 왼쪽부터 김중수(김향화의 후손), 이선영(이종학의 녀), 윤정 (이종학의 처), 이종례(안점순의 질녀), 임병우(임면수의 손), 염태영 수원시장, 조명자 수원시 시의장, 최신원(최종건의 자).

수원시가 지난 8월 14일 시청 대강당에서 ‘수원시 명예의 전당 헌액식’을 열고 8명을 헌액했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인물은 독립운동가 김세환·이선경·임면수·김향화, 서지학자 이종학, 기업가 최종건·최종현, 평화활동가 안점순 할머니 등이다. 모두 세상을 떠났지만 수원을 크게 빛낸 위인들이다. 8명의 업적을 2회로 나뉘어 싣는다.

염태영 수원시장은 기념사에서 “명예의 전당 헌액자들은 수원의 명예를 드높인, 공적으로 귀감이 되는 분들”이라며 “명예의 전당은 우리 시민의 자긍심을 높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헌액식 후에는 시청 본관 로비 벽면에 설치한 명예의 전당 제막 행사가 이어졌다. 명예의 전당에는 헌액자들의 사진과 간략한 생애·경력·업적 등이 새겨진 동판을 부착했다.

헌액식에는 임면수 선생의 손자, 최종건 전 SK 회장의 아들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 이종학 선생의 처와 딸 등 명예의 전당 헌액자들의 후손(가족)이 참석했다.

◆김세환, 3.1 운동 사전 조직하고 이끌다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김세환(金世煥·1888~1945)은 수원시 팔달구 남수동 출신이다. 1919년 3월 1일 전국적으로 일어난 독립만세 운동을 사전에 조직하고 준비한 47인 중의 한 명이다. 수원의 3.1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으며 3월 13일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일본경찰에 붙잡혔다. 다음해 10월 출감한 뒤에도 수원상업학교를 설립, 2세 교육을 통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그는 한성외국어학교와 일본 중앙대학에서 신학문을 배우고 수원으로 돌아와 삼일여학교(지금의 매향 여중·상업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다. 1919년 10월 감옥에서 나온 직후에는 곡물상회를 경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1925년 4월 17일 종로경찰서에서 경성지방 법원 검사에게 보낸 비밀 문건에 의하면 그는 ‘조선사회운동자동맹 발기 준비위원회’ 수원지역 준비위원으로 참여했다. 위원회에는 당시 전국의 독립운동가들이 총망라되어 있었다. 1927년에는 사회주의자와 민족주의자들이 힘을 합쳐 일제로부터 조선의 독립을 쟁취하고자 결성한 '신간회' 수원지회에도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이선경, ‘수원의 유관순’… 19세 순국

3․1운동의 대한독립만세를 생각하면 대표적인 아이콘으로 '유관순 누나'를 떠올린다. 수원에도 18살이라는 나이에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비밀 독립활동 중 일제 경찰에 붙잡혀 갖은 옥고를 치르다 19살의 나이에 순국한 누나가 있다. '수원의 유관순‘인 이선경(李善卿·1902~1921)이다.

이선경은 수원공립보통학교(현 신풍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918년 서울의 숙명여학교에 입학, 1919년 3월 5일 서울 만세운동 시위에 참가했다가 구속돼 3월 20일 무죄로 풀려났다. 숙명여학교에서 퇴학 조치를 받은 후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로 전학하였고, 임순남과 최문순 등과 함께 비밀 결사조직인 혈복단(血復團)을 구국민단(求國民團)으로 개칭하고 활동했다. 구국민단은 경술국치에 반대해 독립 국가를 조직할 것과 독립운동을 하다가 수감돼 있는 사람의 가족을 구조할 것 등의 목표를 세우고, 매주 금요일 삼일학교에서 회합을 가졌다. 1920년 8월 일제에 의해 구국민단의 활동이 발각되어 박선태․임순남 등과 함께 체포됐다. 1921년 4월 12일 재판 끝에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받고 8개월의 옥고를 겪은 뒤 풀려났으나 9일 만인 4월 21일 고문 후유증으로 숨졌다. 2012년 순국이 인정되어 건국포장 애국장을 받아 독립유공자가 되었다.

◆임면수, 신민회 경기도 책임자로 활동

필동(必東) 임면수(林勉洙·1874~1930) 선생은 수원지역 대표적 근대교육가이자 독립운동가로 삼일학교를 설립하고, 독립군을 양성하는 등 항일투쟁에 나섰다.

1874년 6월 수원면 매향동에서 태어나 1893년 동학당 의병봉기에 참여했다. 1903년 삼일학교를 세우고 1907년 수원지역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했다. 1909년 신민회 경기도 책임자로 활동 후 독립군 양성학교인 ‘신흥무관학교’ 설립과 군자금 조달 등의 활동을 했다. 1980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지난 2015년 8월 15일 수원 올림픽 공원에서 수원의 독립운동가 필동 임면수 선생의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 동상 제막을 비롯해 ▲임면수 선생 학술대회 ▲책자 발간 ▲초·중·고 독립 인권 평화 PT경진대회 등이 열렸다. 지난해에는 PT경진대회에서 입상한 학생들과 중국 연변 일대 독립운동 현장을 방문하는 역사탐방이 추진됐다.

당시 이석휘 임면수 선생 기념사업 추진위원장은 "수원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이면서도 주목 받지 못한 점이 안타까워 재조명을 이유로 추진된 사업"이라며 "120만 수원시민의 의지로 건립된 필동 선생의 동상 제막식인 만큼, 시민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기생들의 3.1운동 이끈 김향화

김향화(金香花·1897~?)는 1919년 3.1운동 당시 수원 기생들의 만세운동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1896년생으로 본명은 순이(順伊)였다. 향화는 기명으로 꽃과 같이 아름다운 그녀의 명성에 걸맞는 이름이었다.

김향화는 경성에서 나고 자랐으나 수원에 내려와 수원기생이 된 후 '수원예기조합'의 꽃이 되었다. 갸름한 얼굴에 주근깨가 있으나, 목청은 탁 트여서 애절하면서도 구슬프게 노래를 잘하며 순하고 귀여운 기생이었다. 검무와 승무에 능했고, 경성잡가와 서관소리를 잘 불렀다. 또한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들어왔던 악기인 양금도 잘 다루었다. ‘조선미인보감’이라는 책에 남아있는 김향화의 사진에는 굳셈과 당당함이 느껴진다.

당시 꽃다운 나이 스물셋의 기생 김향화는 기생들의 선두에 서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수원기생 30여명을 이끌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2개월여의 감금과 고문 끝에 경성지방법원 수원지청 검사분국으로 넘겨져 재판을 받고 징역 6개월에 처해져 옥고를 치렀다. 김향화는 기생으로서가 아닌 조선의 백성으로 재판정에 당당히 서서 대한독립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지난 2009년 4월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다.

이두 기자  ld@1gan.co.kr

<저작권자 © 일간경기,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기이야기면 다른기사 보기
이두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