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시 유엔군 초전기념관(관장 이규준)은 16일 기념관 야외광장과 기념탑에서 3000여 명의 어린이와 가족이 참여한 가운데 ‘제2회 한국전쟁 체험박람회’를 성황리에 개최했다.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해 호국영웅의 희생을 기리고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는 이번 체험박람회는 기성세대에게는 과거의 향수를, 어린 세대는 우리나라의 자랑스럽고 올바른 역사를 배울 수 있는 소통과 공감의 장이라는 평을 받았다.올해로 2회를 맞이한 박람회는 작년보다 더욱 다양한 체험활동들로 운영됐다. 주요 체험은 ‘태극기 바람개비 만들기’ ‘신초전비 입체퍼즐 만들기’ ‘참전국 손수건 색칠’ ‘학도병 책갈피 만들기’ ‘1950년대 군복과 피란민복 입어보기’ ‘전투식량 체험’ ‘DMZ 동물 샌드아트’ ‘훈장 컵받침 만들기’ ‘헌화 꽃
오산시 유엔군 초전기념관(관장 이규준)이 오는 16일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해 호국영웅의 희생을 기리고 평화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역사 체험 행사 ‘한국전쟁 체험박람회’를 개최한다. 올해로 2회를 맞는 행사는 작년보다 더욱 풍성한 내용으로 운영될 예정이며, 한국전쟁과 관련한 15개의 체험부스를 비롯해 ‘찾아가는 문화공연’도 함께 이루어진다. 주요 체험 행사로는 ‘태극기 바람개비 만들기’ ‘신초전비 입체퍼즐 만들기’ ‘참전국 손수건 색칠’ ‘학도병 책갈피 만들기’ ‘1950년대 군복과 피란민복 입어보기’ ‘전투식량 체험’ ‘DMZ 동물 샌드아트’ ‘훈장 컵받침 만들기’ ‘헌화 꽃 만들기’등이 있다. 유엔군 초전기념관 관계자는 “이번 행사는 한국전쟁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를 높이고 어
한반도에 평화의 바람이 불면서 비무장지대(DMZ) 내 유일한 민간인 거주지인 파주 대성동 마을이 주목받고 있다. 지난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때 대성동 초등학생 2명이 김정은위원장에게 꽃을 전달해 뉴스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대성동 마을 주민들은 남북 평화가 영원히 이어져 맘편하게 농사를 지었으면 좋겠다며 북한의 대남방송이 사라져 한결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접경지 주민 "다리 뻗고 잘 듯"파주시 대성동 마을 주민들은 "이제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다"며 남북 평화의 바람을 실감 중이다. 이 마을 김동구 이장은 "북한군과 마주하고 살면서 언제 총부리가 겨눠질지 몰라 늘 불안했는데 남·북한 정상이 만난 자리에서 '종전'이라는 말이 나와 반갑고 속이 시원하다"고 안도했다.파주시는
남북 정상이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지르며 65년간 분단의 상징이었던 군사분계선(MDL) 위에 평화를 염원하는 소나무를 심는다.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26일 공개한 남북 정상의 공동기념식수 계획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7일 오전 첫 번째 정상회담을 하고 별도 오찬을 가진 뒤 공동 기념식수로 오후 일정을 시작한다.기념식수에 쓰이는 나무는 우리 민족에게 가장 친근한 소나무로 선정됐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생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나무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지난 1998년 소 떼를 몰고 고향을 방북했던 MDL 인근 '소 떼 길'에 심어진다. 당시 정 명예회장 일행은 판문점 북측 경비병 휴게소 오른쪽 공터를 통해 북한으로 들어갔다.
판문점 평화의집은 남북회담 장소로 즐겨 이용되는 곳이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 우리측 지역에는 크게 두 채의 건물이 있다. 북측과 마주 보고 있는 '자유의 집'과 여기서 남서쪽으로 130m 정도 떨어져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 '평화의 집'으로 유엔군사령부 관할이다.통일부 남북회담본부에 따르면 평화의 집은 연건평 998평 규모의 3층짜리 석조 건물로 1989년 12월 19일 준공됐다. 남북회담을 위해 지어져 1층에는 기자실과 소회의실, 2층에는 회담장과 남북회담 대표대기실, 3층에는 대회의실과 소회의실이 있다.남북회담이 열리면 회담장에 CCTV와 마이크가 설치돼 청와대와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남북회담본부에서 실시간으로 회담 상황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측으로는 영
마침내 27일 판문점의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과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장 사이의 군사분계선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마주 선다. 그 분계선 위로 남북한 정상은 손을 맞잡고 뜨거운 악수를 한 뒤 인사말을 나누며 판문각을 마주 보며 남쪽에 있는 자유의 집을 거쳐 평화의 집으로 향한다.판문점은 1951년부터 1952년까지 지루한 휴전협상을 이어가던 장소다. 전쟁 와중에 천으로 된 허름한 텐트가 세워지고 서로 말싸움을 주고받았다. 판문점(板門店)이란 지명은 '널문(리) 주막마을'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현재 판문점은 남쪽 땅도 아니고 북쪽 땅도 아니며, 공동경비구역(JSA)으로 불린다. 남쪽 지역은 유엔군 사령부가 관할하고 있다. 남쪽 지역의 행정구역은 파주시에 속한다.정전회담이 끝
오산시 유엔군 초전기념관(관장 이규준)은 오는 23일 개관 5주년을 맞이해 기념주화 2종을 발행한다.이번 기념주화는 6·25전쟁 중 오산 죽미령 전투에 참전했던 미 제24사단 제21연대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에 대한 추모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됐으며, 올해 처음 발행된 유엔군 초전기념관 제1호 주화이다. 주화 앞면에는 스미스 특수임무부대(Task Force Smith)의 보병 대대장인 스미스 중령(Charles B. Smith)과 제52포병대대 대대장인 페리 중령(Miller O. Perry)의 모습과 이름이, 뒷면에는 이들이 참전했던 오산 죽미령 전투 당시 소속, 계급, 생몰연도가 새겨져 있다. 유엔군 초전기념관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희생했던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와 오산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4월말 판문점에서 열린다. 남북은 판문점 남측 지역인 평화의 집에서 정상회담을 열기로 합의했다. 판문점과 평화의 집이 관심을 받고 있다.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정은은 처음으로 남한 땅을 밟게 된다. 앞서 두 번의 정상회담은 모두 남측이 북한을 방문해 이뤄졌다.◆판문점판문점은 서울에서 북북서쪽으로 60km 정도 떨어져 있는 군사정전위원회가 있는 지역이다. 원래 지명은 널문리였는데, 1951년 10월 정전회담이 개성에서 이곳으로 옮겨 오면서 회담 일방인 중국어 표기를 위해서 판문점(板門店)으로 고쳐쓰면서 지명으로 굳어졌다.오늘날의 판문점이라면, 군사정전위원회 유엔사측과 공산(북한·중국)이 군사정전위원회 회의를 원만히 운영하기 위해 1963년 10월 군사정전위원회 본부구
자유한국당, 새 역사교과 집필 강력 비판"시민과 함께 서인부대되어 역사 지킬 것"최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마련한 새로운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시안에 ‘인천상륙작전’이 삭제되는 것으로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이에 대해 자유한국당 인천시당이 인천상륙작전은 서인부대가 지킨다며 강하게 반발했다.자유한국당은 "‘인천상륙작전’은 1950년 9월 15일 맥아더장군의 지휘아래 유엔군이 인천에 상륙해 6ㆍ25 전쟁의 전세를 역전시킨 기념비적 군사작전으로서 인천시민은 물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라며 "인천상륙작전을 역사교과서에서 삭제한다는 건 대한민국에서 인천의 역사적 의미를 없앤다는 것과 같다"고 밝혔다.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군사·외교 분야에서 ▲유엔군 참전 ▲중국
파주 감악산은 전국에서 인기있는 명산이다. 특히 출렁다리를 개장한 2016년 9월부터 올해 1월 7일까지 1년 4개월 동안 감악산을 찾은 방문객은 103만5570명에 달한다. 감악산은 오래전부터 명산일만큼 역사에도 각종 기록이 있다. 감악산은 해발 675m 높이다. 그리 높지는 않지만 우리 역사에서는 영험한 곳으로 내내 꼽힌다."(조선에서 이름난 산으로) 동쪽엔 치악산이요, 남쪽으로는 계룡산과 죽령산과 우불산과 주흘산과 금성산이며, 중부엔 목멱산(지금의 서울 남산)이며, 서쪽으로는 오관산과 우이산이고, 북쪽으로는 감악산과 의관령이 있다."조선 후기 학자 이긍익(1736~1806)의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지금의 경기 파주 적성면에 있는 감악산은 조선 시대에 신성
안병용 의정부시장은 5일 평택 미군기지 본부 로비에서 개최된 미8군 사령관 토마스 밴달(Thomas S. Vandal) 중장 전역식에 참석해 밴달 중장의 그동안 노고를 치하하고 밴달 부부 이름을 새긴 머그컵 및 컵받침 세트와 밴달 중장의 활동사진을 담은 사진첩을 선물했다.이날 전역한 밴달 중장은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미2사단장으로 부임해 의정부시와 인연을 맺었으며 2016년부터 2월 미8군 사령관으로 부임해 의정부시내 미군기지 이전 등에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신임 미8군 사령관은 마이클 빌스(Michael A. Bills) 중장이며 유엔군, 한미연합, 주한미군 작전참모부장을 역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에서 서남쪽으로 10여km 떨어진 곳에 팔미도란 섬이 있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배를 타고 인천대교를 지나다 보면 섬이 눈에 들어온다. 이 곳에 등대가 있다. 팔미도 등대다. 1903년 6월에 건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이다. 당시 소월미도 등대와 함께 처음으로 불을 밝힌 등대로 건립되었다. 서해와 남해에서 인천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자리하여 해상 교통의 중심으로 기능하였고,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성공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오랫동안 민간인 통제가 되었던 팔미도는 10여전부터 출입이 자유로워졌다. 특히 해가 바뀌는 신년초가 되면 많은 관광객들이 팔미도를 찾아 일출을 구경하며 새해 힘찬 출발을 다짐하기도 한다.◆인천 연안부두서 배타면 보여팔미도는 인천 연안부두에서 10㎞가량 떨어진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돌아오지 않는 다리' 남쪽 유엔군측 제 3초소 앞에서 미군장교 2명과 사병 4명, 한국군 장교 1명, 사병 4명으로 이뤄진 11명 장병이 한국인 노무자들의 미루나무 가자 치기 절단 작업을 호위하던 중이었다. 2명의 북한군 장교와 수십명 사병이 나타나 작업 중단을 요구했다. UN측은 이를 무시하고 계속 작업을 했다. 갑자기 북한군 30여명은 도끼와 쇠망치를 휘둘렀다. 북한군은 가지치기 작업에 사용 중이던 도끼로 유엔사 경비대대 중대장 보니파스 대위와 소대장 배럿 중위를 무참히 살해하고, 한미 경비병 8명에게 부상을 입혔다.사건 직후 유엔군사령관은 주한미군의 전투태세 강화, 오키나와에 배치된 미군 전투기를 한국으로 재배치, 미 본토의 전폭기 한국 이동 등 군사
원래 북쪽에서 공동경비구역과 연결되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 있었다. 이 다리 가운데로 남북 경계가 나뉜다. 북측이 판문점으로 이동하는 유일한 교량이었다. 1976년 8월 이전까지는 공동경비구역 내의 남북 통행이 가능했다. 1976년 8월 18일 북한군이 공동경비구역 안에서 도끼로 미군 장교 2명을 살해하고, 경비병 9명에게 부상을 입혔던 ‘도끼만행사건’이 발생한다. 유엔 측은 공동경비구역 내에도 군사분계선을 긋고 ‘돌아오지 않는 다리’의 통행을 차단했다.다리가 폐쇄되자 북한군은 보급품 전달이 어려워졌다. 그래서 기존 다리보다 조금 위쪽에 새 교량을 급하게 만들었다. 72시간 만에 콘크리트 다리를 완공했다. 그렇게 해서 붙여진 이름이 ‘72시간 다리’다. 이 다리는 주로 북쪽에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북한 지프차가 논밭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쏜살같이 달리며 남쪽으로 내려온다. 전조등을 켜고 북한의 ‘72시간 다리’를 건너고 ‘김일성 친필비’를 지나 군사분계선쪽으로 질주한다. 잠시후 우회전하더니 지프차의 바퀴가 배수로에 빠진다. 몇 차례 시동을 걸었으나 실패한다. 곧바로 북한군들이 정신없이 달려간다. 지프차에 있던 북한 병사는 차에서 내려 남쪽으로 달린다. 북한군 3명이 도망가는 병사를 겨누고 사격했으며 다른 한명은 엎드려서 사격을 시작한다. 귀순 병사에게는 생사의 갈림길이었다. 이 병사는 5~6발을 맞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쪽에서 쓰러진다. 이 병사를 쫓던 북한군 1명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쪽으로 왔다가 이를 알고 쏜살같이 북쪽으로 다시 넘어간다. 우리 군이 쓰러진 귀순 병사를 발견하고 포복으로 접근해 극
6·25 전쟁 당시 1·4 후퇴로 남쪽으로 밀려난 국군과 유엔군이 서울을 다시 수복하고 반격할 계기를 만들어준 '제2차 인천상륙작전'을 기리는 전승비가 인천에 세워졌다.해군은 15일 "제2차 인천상륙작전 전승비 제막식을 오후 1시 30분 인천 월미공원 맥아더길 입구에서 거행했다"고 밝혔다.제2차 인천상륙작전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지휘로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지 5개월 만인 1951년 2월 10일 국군 단독으로 성공한 작전이다.당시 국군과 유엔군은 1·4 후퇴로 밀려났고 서울과 인천은 북한군과 중공군이 점령한 상태였다.서울 재수복을 위한 군수품 보급 통로로 쓸 양륙 항만을 물색하던 국군은 백두산함(PC-701), 강경정(YMS-510), 대전정(JMS-301), 통영정(JMS-
주한 미2사단과 경기도 의정부·동두천과의 인연은 남다르다. 미2사단은 50년 넘게 경기 북부 지역에 머무르면서 대한민국 최전선 안보를 담당했다. 미2사단이 지난달 26일로 부대 창설 100주년을 맞았다. 미2사단은 6·25 전쟁 중 처음으로 한국과 인연을 맺은 뒤 현재까지 한미 연합방위태세의 주력 부대로 활약하고 있다. 미2사단은 주한미군 병력의 40%를 차지하는 주력 부대다. 의정부와 동두천 등 경기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1만4000여명이 주둔해왔다.6·25 전쟁 발발 직후 7월 부산을 통해 한국에 첫 발을 내딛었다. 미국 주둔 부대 중 최초로 한국에 도착한 미2사단은 미 8군과 함께 낙동강 방어선을 처음으로 벗어났다. 이후 UN군 중 북한 평양에 최초로 입성했다. 당시 김일성 집무실에서 인공기를
동두천시는 오는 27일 문화가 있는 날(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을 맞아 시민들의 문화향유 기회를 제공하고 문화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시립도서관, 꿈나무정보도서관과 자유수호평화박물관에서 전시회 및 체험 행사를 개최한다.시에 따르면 행사 당일 시립도서관에서는 원화전시회 ‘반고흐 영혼의 편지’를 열 예정이며 꿈나무정보도서관에서는 연극 뮤지컬 ‘에픽-숲속의 전설’이, 자유수호평화박물관에서는 ‘유엔군 종이인형만들기’ 체험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시 관계자는 "앞으로도 시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해‘문화가 있는 날’을 기회로 삼아 수준 높은 문화행사를 지속적으로 개최할 예정이다"고 전했다.
1950년 9월 15일 새벽 미국과 영국, 호주, 프랑스 등 8개국의 항공모함과 구축함, 순양함 등 261척의 함정이 인천앞바다에 집결했다.이날 새벽 5시부터 함포사격과 함께 상륙작전이 시작됐고, 6시 33분 선발대가 월미도(Green Beach)에 상륙했다. 정오쯤에는 월미도 일대에 있던 북한군을 섬멸하고 주변을 장악했다. 이어 오후 5시 32분 후발대인 미 해병 1연대가 지금의 남구 용현5동 일대 해안(Blue Beach)에, 5시 33분에는 미 제5해병연대가 동구 만석동 부근(Red Beach)에 상륙했다. 국군 해병 1연대도 오후 8시 만석동 부근에 상륙해 시가지 소탕전과 외곽 경비를 맡았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이었다.이날 작전에서 인천에 상륙한 유엔군은 1만3000여명이었으며, 전사
경기남부보훈지청(지청장 구남신)과 수원 외국어마을(원장 박진석)은 6.25전쟁 정전협정 및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일을 맞아 지난 2일에 명예선양의 일환으로「UN참전군인에게 감사편지 쓰기(Thank you korea) 행사를 개최하였다.수원 외국어마을 여름방학 영어캠프에서 개최한 오늘 행사에서는 초?중학교 130여명 학생과 함께 국민의례, 6.25 / 7.27 홍보동영상 관람, UN참전군인에게 감사편지쓰기 등 여러 다양한 행사를 경험하며 UN군 참전영웅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구남신 경기남부보훈지청장은 "오늘 행사를 통하여 우리나라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참전한 13만여 UN군 참전영웅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라사랑을 더욱 다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