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남북회담본부 제공)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돌아오지 않는 다리' 남쪽 유엔군측 제 3초소 앞에서 미군장교 2명과 사병 4명, 한국군 장교 1명, 사병 4명으로 이뤄진 11명 장병이 한국인 노무자들의 미루나무 가자 치기 절단 작업을 호위하던 중이었다. 2명의 북한군 장교와 수십명 사병이 나타나 작업 중단을 요구했다. UN측은 이를 무시하고 계속 작업을 했다. 갑자기 북한군 30여명은 도끼와 쇠망치를 휘둘렀다. 북한군은 가지치기 작업에 사용 중이던 도끼로 유엔사 경비대대 중대장 보니파스 대위와 소대장 배럿 중위를 무참히 살해하고, 한미 경비병 8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사건 직후 유엔군사령관은 주한미군의 전투태세 강화, 오키나와에 배치된 미군 전투기를 한국으로 재배치, 미 본토의 전폭기 한국 이동 등 군사 조치를 단행했다. 방어준비태세 데프콘-쓰리(DEFCON 3)를 발령했다. 북한도 8월 19일 김일성 명의로 전 군대와 노동적위대, 붉은청년근위대 등 예비 병력까지 전투태세로 돌입했다.

유엔군사령관 스틸웰 장군은 미루나무 절단 작전을 8월 21일 실행하도록 명령했다. 미 2사단 병력과 한국군 제1공수특전단을 중심으로 작전이 펼쳐졌다. 특수부대가 트럭을 타고 공동경비구역으로 들어가 마침내 미루나무 가를 절단했다. 

북한 김일성은 8월 21일 오후 스틸웰 UN군사령관에게 “오랫동안 판문점에서 큰 사건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에서 사건이 일어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라며 사과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남북관계는 오랫동안 또 다시 얼어붙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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