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밀리언셀러 '인간시장'
검열 속에서 피어난 시대의 고발
법륜 스님과의 인연 발단 "역사"
포천 문학 활성화 관련 묘안 내놔
[일간경기=김순철 기자] 수많은 작품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울리고 깊은 성찰을 이끌어온, 한국 문학계의 상징이자 ‘문화대통령’으로 불리는 김홍신 작가를 만났다. 수많은 작품을 통해 독자들의 마음을 울리고 깊은 성찰을 이끌어온 이야기꾼, 한국 문학의 대표적 상징이자 문화대통령으로 불리는 김홍신 작가. 이번 인터뷰는 포천시가 지향하는 인문도시의 가치와도 맞닿아 있다. 문학 세계뿐 아니라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시각, 그리고 우리 사회를 향한 치열한 작가 정신을 통해 지속적인 창작 활동을 이어온 김홍신 작가와의 대화를 통해 문학의 힘과 글쓰기의 본질을 되새길 수 있었다. 지금부터, 포천의 인문적 가능성과 함께한 김홍신 작가와의 특별한 만남으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대한민국 최초의 밀리언셀러 소설가, '인간시장'의 탄생 배경은?
1980년대는 출판 전 검열이 존재하던 시기로, 모든 작품에 '검열필'이 필수였다. 사회 비판적인 글을 발표하기 어렵던 당시, 많은 문학가들이 기업의 사내 소식지인 ‘사보’에 시, 수필, 꽁트 등을 발표하며 문학 활동을 이어갔다.
꽁트는 원고료가 상대적으로 높아 자주 쓰게 됐고, 100편이 넘는 꽁트를 묶어 '도둑놈과 도둑님'이라는 책을 출간하게 됐다. 이후 조선일보에 “이 시대의 도둑은 누구이며 도둑님은 누구인가?”라는 문구로 된 광고를 냈고, 이 광고로 인해 보안사의 조사를 받기도 했다.
이때 이종찬 전 국정원장, 김행자 이화여대 교수, 임인규 동아출판 회장 등 여러 인사들이 탄원서를 써주며 큰 힘이 돼주었다.
그 시기 동아일보에 ‘서울요철’이라는 칼럼을 쓰고 있던 중, 주간한국으로부터 소설 연재 제안을 받았다. 당시 검열과 감시가 심했던 상황이었지만, 편집국장의 전폭적인 지원 약속으로 '인간시장'을 자유롭게 연재할 수 있었다.
초기 주인공 이름은 ‘권총찬’이었으나, 검열에 걸려 ‘장총찬’으로 바꾸게 됐다. 이는 존 웨인 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었다.
이 작품은 정치인, 재벌, 의료계, 교육계, 사이비 종교, 군·경찰, 사법기관 등 사회의 기득권층과 각종 범죄를 고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서울역 일대를 무대로 가짜 ‘선도’ 완장을 차고 여성들을 납치·폭행한 인신매매 범죄와 가짜 휘발유 제조업자에 관한 내용은 직접 취재를 바탕으로 집필했다.
당시는 부조리와 모순이 만연했던 시대였고, '인간시장'은 이런 현실에 맞서 싸우는 개인의 용기와 정의를 그려낸 작품이다.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깊은 성찰과 카타르시스를 안겨주었고, 지금도 그 의미는 여전히 유효하다.
-카톨릭 신자인 작가님과 법륜 스님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는지요?
법륜 스님과의 인연은 국회의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스님은 “정치보다도 잃어버린 우리 역사, 특히 발해를 찾는 일이 더 보람 있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그 말씀에 깊이 공감하며 발해사에 관심을 갖게 됐고, 스님과 함께 역사 공부를 시작했다. 이후 스님과 함께 중국의 발해 유적지를 자주 답사했고, 특히 중국 동모산 박물관을 방문하기도 했다.
당시 연변대학교의 방학봉 명예교수가 도움을 주셔서 조교수 자격으로 현장을 방문할 수 있었지만, 유물은 보안상의 이유로 직접 보지 못했다. 이후 북한 지역의 발해 관련 유적지도 방문했고, 귀한 자료들을 접할 수 있었다. 현재는 북한 내 발해 연구가 중단된 상태로 알고 있다.
방학봉 교수는 2년 전 별세하셨고, 그분의 유물과 자료는 현재 속초의 ‘발해역사관’에 보관돼 있다.
종교적으로는 카톨릭 신자이지만, 법륜 스님의 ‘만일기도’에 함께 참여하며 스님이 여는 말을 하고 나는 닫는 말을 한다. 서로의 믿음을 존중하며 역사 연구와 봉사활동을 함께해온 소중한 인연이다. 네팔 현지 봉사활동도 함께 다녀왔고, 지금까지도 따뜻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 ‘인간시장2’를 기다리는 팬들이 많다. 후속작 계획이 있으신지?
현재 ‘신 인간시장’이라는 제목으로 3권 분량의 시놉시스를 완성한 상태다.
하지만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는 더 이상 쓸 수 없다.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겪은 정치와 사회 전반의 이야기를 녹여내고자 했지만, '대발해' 집필 후 글쓰기 트라우마를 겪으며 7년 동안 창작 활동을 멈췄다.
이제는 젊은 시절의 ‘나만 옳고 내가 정의다’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상대의 입장에도 옳음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내가 51% 옳았다면 상대는 49% 옳았다’는 깨달음은 나에게 큰 전환점이 됐다.
그렇기에 지금 집필 중인 ‘신 인간시장’이 과연 시대에 부합하는지, 또 독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시간이 좀 더 필요하겠지만, 언젠가는 다시 펜을 들어 그 이야기를 완성할 날이 오리라 생각한다.
- 포천시에도 많은 문학인이 있다. 인문학 도시 포천시를 건설하기 위해 작가님의 묘안은?
포천은 한탄강과 주상절리 등 천혜의 자연경관을 품은 도시로, 인문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 충분하다.
문학은 공간과 자연을 통해 상상력을 자극받는다. 지역 수필가와 시인들이 주상절리를 배경으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계절마다 문학 행사와 사생대회를 열면 포천은 문학 애호가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도시가 될 것이다.
국내외 유명 작가를 초청하는 국제 문학행사를 열어 교류를 촉진하고, 드라마·영화·광고 등 미디어 콘텐츠의 촬영지로도 활용한다면 포천의 인문학적 위상이 한층 높아질 것이다.
행정적 지원과 인센티브 제도가 뒷받침된다면 창작자들의 발길을 끌어들이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장기적인 안목과 지속 가능한 정책이다. 인문도시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속적인 투자와 관심이 필요하다.
-앞으로의 작품 활동 계획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140권의 저서를 펴냈지만, 이제는 ‘어린이의 눈’으로 세상을 다시 바라보고 싶다.
과거에도 어린이 책을 썼지만, 지금은 더 깊은 성찰과 경험을 담아 동화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 5월 출간한 동화 '수업이 끝나면 미래로 갈 거야'는 내 고향 논산에서의 어린 시절과 그 속에서 얻은 교훈, 그리고 미래에 대한 상상을 담은 작품이다.
예컨대, 초등학교 시절 몸이 불편한 친구를 놀렸다가 어머니에게 받은 따뜻한 훈계는 지금도 마음에 남아 있는 소중한 기억이다.
이 동화는 손자들에게 전하는 인생의 편지이자, 작가로서 인생 후반부의 새로운 도전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도 순수한 감성과 따뜻한 시선을 담은 동화 집필에 전념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