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의 미학, 삶의 여백박말임 작가단골집이란 매번 주문하지 않아도 나를 알아서 챙겨주는 그런 곳 이 아닐까. 여성에게 미용실은 예민하고 중요한 공간이다. 예고도 없이 단골 미용실이 문을 닫고, 폐업 안내문만 덜렁 붙어 있으면 낭 패감이 몰려온다.나는 스스로를 까칠한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마음 에 드는 미용실을 찾기란 쉽지 않다. 머리숱이 적고 머리카락이 가늘 어, 어렵게 한 파마가 샴푸 한 번에 다 풀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늘 “뽀글뽀글하게 볶아주세요.”라는 말을 덧붙여야 했다.그런저런 이유로 단골 미용실을 정하기까지
불편한 동거안덕일 작가요즈음 하루를 아침 산책으로 시작한다. 산책에는 아내와 강아지 두 마리가 동행한다. 푸들로 소형견이라서 어미가 되어서도 강아지로 부른다.출근하는 아내는 종종 산책에 빠지기도 하지만 강아지들은 언제나 내 곁을 지켰다. 그들은 엄마와 딸 사이로 올해로 열네 살과 열세 살이 되었다. 사람 나이로 치면 중노인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름은 어미가 소중이요, 새끼는 리소다.처음 집으로 데리고 왔던 딸아이가 지은 이름이다. 나는 원래 강아지 기르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에 이름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그저 따라 불렀다. 하지만
쪼갤까 붙일까?송란교 작가수만 대의 자동차를 싣고서 이 항구 저 항구를 드나드는 화물선도 한 조각 한 조각, 수만 개의 작은 철판을 붙여야 만들어진다. 바다 위를 떠다니려면 물 샐 틈 없이 붙여야 한다.날마다 타고 다니는 자동차도 수만 개의 부속품을 붙이고 연결해야만 굴러간다. 눈곱만한 제품도 소홀히 할 수 없음이다.치열한 선거판에서 당선되려면 유권자의 표심을 한 표 한 표 금붙이 끌어모으듯 모아야 한다.그것도 상대방보다 최소한 한 표는 더 많아야 이기는 것이다.역사의 유물이라는 웅장한 모습의 피라미드 건축물도 수만 개의 돌덩어리를
가을단상오희숙가만히 하늘만 쳐다봐도 마음 편안한 계절이다. 뭉게구름 사이로 추억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시절마다 함께했던 사람들은 그 사연도 다양했다. 추억은 시간을 비켜갔는지 퇴색되지 않은 채 하나같이 푸르다.하지만 인화되어 가는 사진처럼 추억이 선명해져도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점이 아쉽기만 하다. 여름날 소나기처럼 짧았던 인연들은 그리움의 허기만 채운 채 묵은 추억을 덮고 있다.가을은 그리움을 안겨주는 맞춤형 계절인가 보다.잘 익어 벌어진 석류는 틀니를 하고 웃던 한 할머니를 닮았다. 할머니는 틀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웃음을
무엇이 온전함인가이방형나와 여진의 어머니는 커피숍에 마주 앉았다.“여진이 어머님,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그래야만 제가 여진이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그녀는 아직 쉰이 안 된 나이임에도 생활의 고난이 얼굴에 배어 있었다.내가 여진이를 처음 만난 것은 내 나이 쉰을 넘어 중반을 향해 갈 즈음이었다. 회사에 경리 사무를 담당할 여직원을 찾고 있을 때 그의 이력서가 들어왔다. 스물셋, 또박또박 써 내려간 글씨가 정갈했다.그가 회사에 첫 출근하였을 때, 인물의 반듯함 속에서 조금 허둥대는 모습을 보였으며 긴장함
모정(母情) 상일찍이 플라톤은 인간 삶의 형태를 영혼적인 측면에서 에피투미아(Epithymia), 에로스(Eros), 아가페(Agape)적인 삶 등 세 가지로 구분하였다. 에피투미아는 동물적인 삶, 즉 욕망을 말하는 것으로 자기 본위적이며, 에로스는 인간 본연의 삶 속의 사랑으로 이른바 네가 있으면 내가 있고, 내가 있으면 네가 있다는 식의 자타 공존적이며, 아가페는 조건 없는 사랑으로 타자 본위적인 특성이 있는 것이라고 알려져 왔다. 그래서 인간은 모름지기 에피투미아적인 삶에서 에로스적인 삶을 거쳐 아가페적인 삶으로의 지향을 추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