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경기=김희열 기자] 수원시가 수원지역 독립운동가의 희생을 기리고자 올해 김노적, 이현경 등 7명의 독립운동가에 대한 포상을 국가보훈부에 신청했다.
후손이 없거나 증거자료가 부족해 서훈을 받지 못한 인물들의 공적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아 그 희생을 잊지 않기 위한 조치다.
김노적(1895~1963)은 수원면 산루리 출신으로 수원상업강습소에서 김세환 교장 겸 교감의 지도를 받으며 1919년 수원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정오에 시작하려던 만세운동 계획이 발각되자 저녁 방화수류정 앞에서 횃불시위로 전환됐고, 주도자로 체포된 김노적은 고문과 구타로 머리 한쪽이 함몰되고 왼쪽 손목이 불구가 됐다.
이후 수원학생친목회를 조직해 활동했으며, 화성학원과 삼일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고 신간회 수원지회 창립회장으로 사회운동을 이끌었다. 1941년 일제 탄압으로 교직을 그만둔 뒤 중국으로 망명했다가 1945년 해방 후 귀국해 10여 년간 투병생활을 거쳐 1963년 사망했다. 수원시는 향토사 자료를 추가해 김노적에 대한 포상을 신청했다.
이현경(1899~미상)은 수원의 유관순으로 불리는 이선경의 언니다. 수원면 산루리에서 태어나 수원사립진명여학교를 졸업하고 1914년 관립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에 진학했다. 졸업 후 경남 밀양에서 교원 생활을 하다가 동경으로 유학해 1921년 3월1일 동경 히비야공원에서 140여 명 유학생과 만세운동을 주도해 체포됐다.
약 11년간 일본에서 여성운동 단체 활동을 했고, 귀국 후 동아일보 기자로 근우회 활동에 주력했다. 일제 탄압을 피해 남편 안광천과 중국으로 망명해 1930년대 초까지 김원봉과 북경에서 활동했다. 이후 행적과 생사는 확인되지 않아 공적을 인정받지 못했다. 수원시는 재일 조선인 관계 자료 등을 근거로 포상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와 함께 수원시는 광복 80주년인 2025년에 문용배, 윤경의, 임학수, 정재억, 최병두 등 5명의 수원 출신 독립운동가에 대한 포상도 신청했다.
이들은 독립 및 민족운동을 하다 체포돼 판결문 등 공적 확인 자료가 남아 있다. 문용배(1916~미상)는 조선공산당재건운동 사건으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고, 윤경의(1893~미상)는 전시 체제기 유언비어 유포로 금고형을 받았다.
임학수(1923~미상)는 사회주의 활동으로 징역 2년 이상을 선고받았다. 정재억(1910~미상)은 민족차별교육 반대 동맹 활동으로 징역 6월을 받았고, 최병두(1925~미상)는 일본 회사에서 차별 항의 낙서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수원시는 수원 출신 또는 수원에서 항일운동을 한 인물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포상을 신청하며 독립운동가의 명예를 밝히고 있다. 2010년 이선경부터 2024년 홍영유, 한인택까지 13명이 서훈을 받았다. 2008년 개관한 수원박물관은 독립운동가 발굴의 중심축으로 2009년 김향화 대통령표창, 2012년 이선경 애국장 포상 등 성과를 냈다. 2017년부터는 ‘독립운동 인물 발굴사업’을 추진해 113명을 추가 발굴했고, 2019년 15명 포상 신청 중 9명이 인정받았다. 2022년 7명 신청 중 2명이 서훈을 받았다.
홍영유는 1911년 수원 서신면 전곡리 출신으로 1933년 중앙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반제·반전 격문을 배포해 체포됐다. 노동자농민과 근로학생제군 격문 450여 매를 인쇄해 배포한 혐의로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한인택은 1913년 수원면 남창리 출신으로 1932년 경성농업학교 재학 중 ‘소척대’ 비밀결사 활동을 하며 독립 의지를 전파했다. 체포돼 징역 1년형 구형을 받았으나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