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일기 둘째 아들부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까지
흙에서 배운 인생, 정책으로 꽃펴..문화인생 '외길'
"배우, 사람이 아니되 사람을 근심하는 존재" 해답
[일간경기=김순철 기자] 세계 최빈국에서 K-컬처를 선도하는 문화 강국으로 도약한 대한민국의 발자취에는 언제나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삶이 함께하고 있다. 급격한 경제 성장 속 녹록지 않았던 농촌의 현장을 배우의 시선으로 담아내었던 그는, 이후 대한민국 최초로 두 차례 장관을 역임하며 저작권 강화의 기틀을 마련하는 등 문화 행정가로서도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영원한 농촌 대변인’이자 ‘문화 대변인’인 유인촌 전 장관과의 만남을 통해 그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청사진을 깊이 조명해 보았다.
사람들은 흔히 ‘연기자’와 ‘배우’라는 단어를 혼용한다. ‘배우’란 무엇인가.
배우라는 직업은 타인의 인생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 삶을 마치 자신의 일부처럼 살아내야 하는 ‘혼의 울림’이자 그 과정 자체라고 생각한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는 인물들이 가면을 쓰고 다른 존재를 표현했고, 샤머니즘 시대의 제사장들 역시 공동체의 건강과 행복을 빌며 자신을 내던졌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처럼 배우 역시 자신의 본모습을 내려놓고 또 다른 인물이 되어 관객에게 위로와 영감을 전달하는 존재다.
흔히 ‘연기자’와 ‘배우’를 섞어 쓰지만, 이 둘 사이에는 미묘하면서도 중요한 차이가 있다. 연기자가 맡은 역할의 특징이나 감정을 기술적으로 충실히 표현하는 데 집중한다면, 배우는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의 삶을 깊이 이해하고 넓게 포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단순히 역할을 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관객이 진정으로 공감하고 위로받을 수 있게 해야 진짜 배우라 할 수 있다.
한자 ‘배우(俳優)’를 파자(破字)해 들여다보면 이 직업의 본질이 더욱 또렷해진다.
‘배(俳)’ 자는 ‘사람 인(人)’과 ‘아닐 비(非)’가, ‘우(優)’ 자는 ‘사람 인(人)’ 변에 ‘근심 우(憂)’가 합쳐진 형태다. 이를 해석하면 ‘사람은 아니지만(非人), 사람을 걱정하고 근심하는(憂) 존재’라는 뜻을 품고 있다. 즉, 배우는 자신의 경계를 넘어 타인의 아픔과 기쁨, 그리고 삶의 여러 단면을 깊이 껴안아야 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누구나 연기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진짜 배우라 불리기 위해서는 이러한 이해와 포용, 그리고 인간에 대한 한층 더 깊은 통찰이 필요하다. 관객은 배우를 통해 자신의 삶을 투영하고, 함께 웃고 운다. 그렇기에 배우는 단순히 대사를 외우고 기계적으로 동작을 취하는 것을 넘어, 역할에 진심을 담고 작품 전체에 책임감을 가질 때 비로소 진정한 ‘프라이드’를 가질 수 있다.
-유인촌 전 장관에게 드라마 ‘전원일기’는 어떤 의미인가.
‘전원일기’가 방영을 시작한 시점은 제5공화국 출범 초기였다. 사회 분위기는 매우 경직되어 있었고, 이연헌 PD가 제작을 맡았음에도 농촌 드라마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농촌이라는 배경에서 특별한 에피소드나 지속적인 주제를 끌어낼 수 있을지 불투명했기에 비관론이 팽배했다. 하지만 ‘전원일기’는 한 가족과 마을, 그리고 농촌을 배경으로 한 휴먼 드라마를 지향하며 출발했다.
초기 10회의 극본은 차범석 선생이 맡아 작품의 기틀을 다졌다. ‘전원일기’의 핵심은 단순한 농촌 풍경 묘사를 넘어선 곳에 있었다. 농부들이 겪는 어려움과 고난, 그리고 그 속의 소소한 행복 등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조명하며 궁극적으로는 ‘인간성 회복’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당시 양파, 배추, 마늘 파동이나 자연재해 같은 사회적 이슈를 다루기도 했지만, 특정 문제를 고발하기보다는 실제 삶의 모습과 그 안에서 피어나는 휴머니즘을 그려내는 데 집중했다. 물론 일각에서는 가부장적인 아버지상이나 다소 폐쇄적인 분위기에 대한 비판도 있었으나, ‘전원일기’는 인간 본연의 가치와 따뜻한 삶의 이야기를 통해 국민적 공감을 얻은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다.
‘전원일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혹은 애착이 가는 스토리가 있다면.
100회 특집이었던 ‘흙바람’ 편이다. 이 에피소드는 장남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 인물이 겪는 내적 갈등을 심도 있게 다뤘다.
극 중 큰형은 대학을 졸업하고 번듯한 군청 공무원이 되었지만, 둘째인 ‘나(용식)’는 고등학교 졸업 후 가업을 이어받아 농사를 지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도 대학에 가고 싶다”, “도시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는 갈망이 좌절되면서 방황하고, 급기야 아버지께 대들기까지 한다. 이는 둘째라는 이유로 흙을 일구며 살아야 하는 운명에 대한 처절한 고뇌이자 반란이었다. 그러나 종국에는 ‘흙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노력한 만큼 반드시 보답한다’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
또한, 당시 사회적으로 권장되지 않았던 입양 문제를 다룬 ‘금동이’ 캐릭터 역시 시대상을 반영한 중요한 부분이었다.
무엇보다 ‘전원일기’를 통해 가장 큰 울림을 주었던 것은 ‘아버지의 존재’였다. 늘 무겁고 엄하며, 거대한 산처럼 느껴졌던 아버지를 업고 가는 장면에서 “아버지가 이렇게 가벼워진 줄 몰랐다”라고 읊조리는 대사는 당대 수많은 자식들이 느꼈을, 그리고 앞으로도 느낄 감정이다. ‘박수 칠 때 떠나라’편에서 나온 늙어가는 아버지를 업은 자식의 마음은 지금도 가슴 시린 진동으로 남아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재직 시 중점을 두었던 정책은 무엇이었나.
2008년 첫 장관 취임 당시, 음악·드라마·영화 등 창작자의 고뇌와 영혼이 담긴 산물을 보호하기 위한 ‘저작권 강화’에 주력했다. 당시만 해도 인터넷 불법 다운로드와 해적판 유통이 만연해 저작권 인식이 상당히 미비한 수준이었다.
이에 첫 단추로 인터넷 관련 법안 개정을 추진했다. 좋은 약에도 부작용이 따르듯 여러 오해와 곡해가 있었지만, 용산, 이태원, 테크노마트 등지에서 불법 음반 및 테이프를 근절하기 위해 문체부 특별사법경찰 50여 명이 1년간 지속적인 단속을 벌이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 끝에 2009년 1월 1일, 스티븐슨 주한 미국 대사로부터 “곧 대한민국이 저작권 감시 대상국에서 해제될 것”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당시 한국은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감시 대상국이었으나, 이를 벗어나게 된 것이다. 현재 음악저작권협회의 연간 징수액이 5,000억 원을 넘어선 것으로 안다. 당시의 법제화 노력은 미래의 창작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필수적인 선택이었다. 이제 대한민국은 저작권 선진국이자 한류 콘텐츠 시스템을 수출하는 명실상부한 문화 선도국이다.
다만, 영화감독 등의 보상권 문제가 아직 과제로 남아있다. 해외와의 협상 등 난관이 있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잘 마무리될 것이라 기대한다.
아울러 시민들의 문화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옛 국군수도통합병원 부지를 활용한 ‘서울미술관(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용산의 ‘국립한글박물관’, 광화문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등 3대 문화 인프라를 완성한 것 역시 기억에 남는다. 말뿐인 정책이 아닌, 실질적인 완성을 위해 정진했다.
포천아트밸리의 발전 방향과 포천시가 문화 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한 요소에 대해 말씀해달라.
포천아트밸리는 인공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자연 친화적으로, 현 상태 그대로를 살리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깎아지른 암벽 자체가 이미 훌륭한 ‘자연 세트’였기 때문이다. 동절기엔 클라이밍 장소로, 하절기엔 예술 무대로 쓰이길 원했고, 처음 프로젝트를 접했을 때부터 충분히 훌륭한 관광 자원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활성화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아트밸리의 옥빛 호수 위에 ‘수중 무대’를 설치하는 것을 제안하고 싶다. 그곳에서 무용, 사물놀이, 연극, 그리고 청소년 댄스 배틀 같은 행사가 열린다면 어떨까. 서울과의 접근성이 좋기에 홍보만 강화된다면, 젊은 청년들이 포천을 주목하고 방문할 것이다.
또한 천혜의 관광지인 산정호수와의 연계도 중요하다. 예선은 아트밸리에서, 본선은 산정호수에서 치르는 식의 문화 행사가 정례화된다면 큰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다. 단, 차별화를 위해 수중 무대 설치는 필수적인 조건이라 본다.
더불어 ‘걷기 좋은 도시’, ‘사진 찍기 좋은 도시’, ‘교통법규를 잘 지키는 도시’를 구현했으면 한다. 지역 주민들에겐 사소해 보일지라도, 외지인들이 포천에 왔을 때 교차로나 신호등에서 겪는 철저한 ‘사람 배려’는 깊은 인상을 남긴다. 또한 포토존 설치나 벤치 디자인 등에 조금만 노력을 기울여도 적은 예산으로 ‘사진 찍기 좋은 도시’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이 문화 도시로 나아가는 기본이자 핵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