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온전함인가

이방형

나와 여진의 어머니는 커피숍에 마주 앉았다.
“여진이 어머님,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그래야만 제가 여진이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녀는 아직 쉰이 안 된 나이임에도 생활의 고난이 얼굴에 배어 있었다.
내가 여진이를 처음 만난 것은 내 나이 쉰을 넘어 중반을 향해 갈 즈음이었다. 회사에 경리 사무를 담당할 여직원을 찾고 있을 때 그의 이력서가 들어왔다. 스물셋, 또박또박 써 내려간 글씨가 정갈했다.

그가 회사에 첫 출근하였을 때, 인물의 반듯함 속에서 조금 허둥대는 모습을 보였으며 긴장함을 가득 안고 있었다. 하루가 지나고 며칠이 지나도 그의 허둥대는 모습은 여전했다.

그러나 전화를 받는 모습은 충실했고, 출근 시간보다 30분 일찍 나와서 사무실을 정리했다. 경리 장부 기재의 글자는 반듯하였으나 아래위의 숫자에 혼란을 보였다. 틀린 숫자에 대한 지적에 극도의 두려움을 나타냈다. 그는 가끔 멍한 표정으로 책상에 앉아 있곤 하였다.

회사의 모든 직원들은 스무 곳이 넘는 현장을 관리하기 위하여 그곳으로 바로 출근하기에 사무실에는 그와 나만이 있었다. 나 역시도 업무상 만나는 사람들로 인하여 사무실을 비웠기에 여진이 혼자 사무실을 지키는 일이 많았다.

가끔 직원들이 결재와 업무 보고를 위하여 사무실을 들렀다.
어느 날 한 직원이 결재를 위하여 사무실에 들렀을 때 여진이 혼자 사무실에 있었고, 마침 점심시간이기에 회사에서 점심을 같이하였다. 식사하는 도중 여진이가 젓가락을 들고서 잠깐 멍하니 초점 잃은 눈으로 앉아 있더니 벌떡 일어나 내 방으로 가서 책상 서랍을 뒤지더라는 것이었다.

“여진 씨, 뭐해요!” 불러도 대답하지 않았고, 다시 방을 나와 빗자루를 들고 바닥을 쓸더라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다음날 여진을 불러 마주 앉아 물어보았다. 그는 자신의 상태를 이야기해 주었다.

여진은 아주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맞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었다. 아무려면, 어떠한 아비이길래, 딸이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길래 아이가 정신병자로 평생을 살아가도록 때렸단 말인가.

나는 감상에서 벗어나 이 아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여야 했다.
그의 어머니를 만나기로 했다. 커피숍에 만난 그의 어머니는 딸의 모습을 숨기려 했다.
“어머님, 여진이가 어렸을 때 아버지로부터 맞아서 그리되었다고 말합니다.”
“딸이 제 아버지를 싫어하고 공포를 느꼈지만 아버지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에요.”

아이가 열 살이 되기 전 어느 날, 저녁을 먹는 밥상에서 아이가 숟가락을 들고 멍하니 앉아 있었고, 제 아비가 그러지 말라고 하였으나 아이는 그대로 있었고, 아비는 말을 듣지 않는다 하여 따귀를 때렸다고 한다.
따귀를 맞은 아이는 울지 않았고 그렇게 있었다. 화가 난 아비는 아이가 반항하는 줄로 여겨 다시 또 따귀를 때렸다. 이러한 일이 몇 번 있고 나자 아이는 아비를 피하였다.

식구들은 아이의 상태가 온전치 못함을 알게 되었으나 대부분의 시간 동안은 아이가 정상적인 모습을 보이니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이의 행동은 더하여졌고 어미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찾았다.
이 병원 저 병원 찾았으나 아이는 호전되지 않았다. 보다 못해 같이 살고 있던 할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절을 찾아 불공을 드렸다.

불공은 효험이 없었고, 아이는 친구를 따라 교회에 가겠다고 하였다. 그것도 방법이겠거니 하여 일요일이면 교회에 나가게 하였다.
아이는 자라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2년제 대학을 졸업했다.
학교에서도 가끔 그러한 모습을 보이니 친구가 없었다.졸업 후 이곳저곳 작은 사무실에 취직했으나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집으로 보내졌다.

여진은 그곳이 어디든 그러한 모습을 보였고, 그 시간 동안의 자신을 기억하지 못했으며 자신이 어떠한 모습을 보였는지도 알지 못하였다.

여진의 어머니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아빠도 공장에 나가고 나도 공장에 나가요. 애를 충분히 케어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으나 우리 형편이 그러하지 못해요.”

내 어린 시절, 한 해 겨울 동안 우리 집에 머물다 간 복순이 누나가 떠올려졌다.
몸의 왼쪽이 성하지 못하게 태어나 그 나이가 되도록 타인의 냉소와 조소 속에서 빛 한 점 없는 어둠에 살다가 스물한 살의 피지 못한 꽃으로 스러져 갔었다.

누나는 둘째 할아버지의 손녀인 나의 6촌 재종누나로서 세상을 하직한 지 40여 년이 흘렀지만 누나의 청초함과 조곤조곤히 들려주던 심청이 이야기를 잊지 못한다.

“심 봉사가 딸을 부를 때 ‘심청아!’ 할까?”

여진이는 어찌하여 나와 만나게 되었을까. 이 또한 정해진 인연의 끈인가?
가끔 사무실에 들러 나에게 조언을 하고, 일을 도와주던 조사장이 찾아왔다.
“이사장, 여직원이 이상하던데!”

나는 그간의 사정을 모두 이야기하여 주었다. 그리고 내가 데리고 있어야 하는 이유를 말해 주었다.

“이사장, 고맙습니다.”
“조사장이 나에게 고마워야 할 이유가 있나요.”

조사장은 자신의 손위 누이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그 또한 여진이와 같은 병을 앓고 있었다고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혼자 집에 있을 때 정신을 잃고 헤매다 어딘가에 걸려 넘어졌고, 넘어지면서 식탁 모서리에 머리를 박고 쓰러져 20대의 젊은 나이에 명을 달리하였다고 하였다.

그는 여진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죽은 누이의 모습을 보았다고 했다.
그러한 아픔을 가진 그를 받아준 내가 자신의 누이를 받아 준 것 같아 고마웠다고 했다.

“그럴지라도, 내보내이소.”
사무실에 그 혼자 있을 경우가 많은데 자신의 누이와 같은 사고가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니 집으로 보냄이 옳다 하였다.

다시 그의 어머니를 만나 조사장 누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집안 형편이 어렵거나 아이가 돈을 벌고 싶다 하여 밖으로 내어 보냄은 좋지 못하다 설득하였다.

그녀는 고뇌에 찬 눈으로 말하였다.
아이가 아비를 싫어하여 한 시라도 아비로부터 떨어져 있으려 하며, 자신도 무언가 할 수 있음을 보이려 하기에 막기가 쉽지 않다고 하였다.

여진이는 그렇게 나를 떠났다.
10여 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건만 그때의 경리 장부에는 그가 쓴 글들이 남아 있다.
나도 너도, 우리 모두는 그를 온전치 못하다 말한다.

우리의 온전함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정상이라는 말일 것이다.
정상적인 것! 그것의 기준은 무엇일까.
우리는 모두가 진정으로 올바른가?

 

이방형 작가
월간 『시사문단』, 월간 『문학세계』 수필 등단.

문학세계문인회,

(사)세계문인협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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