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욱 경기북부 취재본부장

강원도 철원군 갈마읍과 경기도 포천시 경계에 있는 명성산은 가을철이면 억새꽃 축제로 아주 유명한 곳이다. 명성산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산정호수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아름다운 산정호수를 끼고 있어 호수의 운치를 한껏 느낄 수 있다. 그러나 922m라는 높이만큼이나 산을 오르는 맛도 각별한 곳으로 산세가 전체적으로 바위와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은 경사가 완만하고, 남쪽에 있는 삼각봉 동편 분지에는 억세가 무성하다. 덕분에 매년 9월 말에서 10월 초 사이에 억세꽃 축제가 열려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산이기도 하다. 태봉국을 세운 궁예의 애환이 호수 뒤편에 병풍처럼 펼쳐진 명성산에 숨겨져 있다. 궁예의 부하 왕건과 최후의 결전을 벌인 후 전의을 상실한 궁예가 망국의 슬픔을 통곡하자 산도 따라 울었다는 설과 주인을 잃은 신하와 말이 산이 울릴 정도로 울었다고 하여 울림산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런 울 ‘鳴’자, 소리 ‘聲’자를 써서 지금에 鳴聲山(명성산)으로 정하였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이제 목표로 각흘산을 향하여 비탈길을 오르는데 산안개가 자욱하여 사방이 분간이 안될 지경이다. 서늘한 기온이 오를수록 땀이 차고 몸은 더워진다. 잠시 쉬어서 최고의 처방인 얼음물로 달래본다. 얼음물은 계절과 무관하게 산행하면서 더워진 몸의 열을 낮추고 갈증 해소를 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산행의 맛이 절로 난다. 산의 정취에 몰입하다보면 숨이 가쁠 틈도 없다. 속도를 늦추기도 하고 서두르기 하며 오른다. 숨이 턱까지 차지만 산을 오를수록 얻는 성취감이란 것이 있다. 그 성취감이 산행을 계속해서 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명성산은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그만큼의 풍경을 선사해준다.

한참을 올라 각흘산 정상에 도착하자 강원도와 경기도의 산야가 전망 좋게 펼쳐진다. 저 멀리 북서 방향으로 특별하게 다가오는 용화저수지가 처음에는 산정호수로 착각할 정도로 멋있어 보인다. 오늘의 최고점 명성산 쪽에는 산봉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산 구름이 희끗희끗 보일 뿐이데 마음은 벌써 정상에 도착한 듯 설렘으로 가득 찬다.

약사령에서 내리막 바닥을 치고 새로운 산행을 한다는 심정으로 산행을 이어나간다. 숨을 몰아쉬기도 하며 한참을 걷는다. 이윽고 하늘이 열리고 맑은 빛이 머리맡으로 들어온다. 피로는 약간 쌓이지만 하루에 두 산을 종주했다는 뿌듯함이 가슴을 꽉 채운다. 각흘산에서 눈으로만 바라보았던 풍경을 발이 따라잡은 것이다. 마침내 명성산 정상에 도착하면 삭막한 도시와는 다른 시간이 흘러가는 듯한 착각이 든다. 도시민들은 작은 땅에서 옥신각신 싸우며 서로의 약점을 헐뜯지만, 산은 언제나 넓은 가슴으로 그런 도시민들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내려다보는 것 같다. 산의 정상에 오르면 비로써 자연의 대단함을 알게 되는 것이다.

정상에서 쉼표 하나를 찍고 목표를 성취했다는 짜릿한 마음이 든다. 이제 그 성취감을 안고 하산을 해야 할 시간이다. 긴 산행의 여정을 마치고 산정호수를 둘러본다. 과연 명성산과 산정호수는 국민관광지로 손색이 없다. 한가롭게 날아드는 새들을 보며 유유자적 자연인이 되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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