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이 도련님도 나오셨네!”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콸콸 쏟아지던 시절이 아니었다. 높은 곳인데도 신비스럽게도 샘물이 솟는 공동우물이 있어 웬만한 먹을거리는 그곳에서 만들던 때였다. 필자가 할머님 손에 이끌려 장구를 메고 우물가에 행차(?)하면 말로는 도련님이지만 젊은 아낙들 손버릇은 못 말렸다. 최근 보도에 나온 성폭행, 성폭력은 아무것도 아니다. 고무장갑을 끼던 때도 아니었다. 논배미로 내갈 새참을 준비할 즈음이었다. 겉절이를 무치기 위해 돌확에 날고추를 짓눌러 갈던 맨손을 우물에 대충 헹구더니, 너도나도 필자의 귀한 것을 명절날 떡칠 때 찹쌀 주무르듯 만졌단다. 집으로 돌아오신 할머님께서는 어머님 눈치를 실실 보시며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 뒤뜰 장독대 앞에서 만신창이로 띵띵 불은 그걸 정성스럽게 닦아주셨단다.

할머니께서 필자를 어릴 적에 하도 ‘울 강아지, 강아지’라고 부르셔서 나이 많으신 고향 어르신 중에는 개똥이(#제동이는 아니다)로 아시는 분도 있다. 필자가 걸음을 떼자 할아버지께서 소가죽을 말려 만들어주신 조그마한 장구를 신바람 나게 쳤다고 한다. 거두절미하고 장구 얘기는 다음 기회에 들려드리겠다. 옛날 부잣집은 대를 이를 자손이 귀했다. 온갖 산해진미를 다 먹여도 시름시름 앓다죽기도 했다. 그래서 천박(친박이 아니다)해 보여야 오래 산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고리타분한 믿음에서 돌림 자 딴 이름이 호적에서 잉크가 마르기 전까지는 누구라도 아무렇게나 부를 흔한 이름으로 불렀단다. 귀한 꼬치까지 달고 세상에 나와 끗발이 하늘 끝까지 치솟았지만, 어머님께서는 손수 뜬 자수로 윗도리는 예쁘게 만들어 입혔지만, 아랫도리는 지엄하신 할아버님 엄명에 따라 바람이 숭숭 통하도록 아예 벗겨놓으셨단다.

무엇이든지 입으로 들어오면 뒤로 나오게 마련이다. 이상한 것을 잔뜩 먹어 소화를 시키지 못해 똘똘 뭉친 게 마지막 과정에 이르러 문제가 생긴다. 병원에서는 라지 인테스튼트( large intestine)라고 부르는데, 필자도 언젠가 그 증상이 너무 심해져서 응급실 신세를 진 적이 있었다. 간호사는 ‘어른이 엄살도 너무 심하다’고 눈을 흘겼다. 탄알처럼 생긴 좌약을 내밀면서 투입 후 최대한 버텼다가 처리하면 된단다. 하지만 채 1분도 안 돼 급한 신호는 왔다. 좌변기에 앉자마자 맹물만 쭉쭉 빠지고 정작 나와야 할 그 큰놈이 빠져나오지 않는다. 사태가 꽤 심각한 모양이다. X-레이 필름을 유심히 쳐다보던 의사 선생님은 안경 너머로 간호사에게 야릇한 웃음까지 지으며 근엄한 말투로 짧게 지시했다.

“#핑거!”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간호사의 인상은 험하게 구겨졌다. 필자의 얼굴을 레이저 광선보다도 더 센 눈빛으로 째려봤다. 뒤로 돌아 엉덩이를 까라면서 무엇인가 단단히 채비를 서두른다. 다행히 수술용 칼과 주사기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가냘픈 두 개의 손가락은 인정사정도 없었다. 막창 끝에서부터 거꾸로 찔러 구곡간장 깊숙이까지 들어와서는 마구 후벼 파냈다. 염소 똥처럼 잘게 부서진 전리품들이 비닐봉지에 한 알씩 담겼다. 아픈 것은 둘째 치고 앳된 간호사에게 몹쓸 짓을 했다는 민망함에 차마 고개도 못 들고 눈을 딱 감은 상태였다. 잠시 후 간호사가 어깨를 툭툭 치더니 꼭지가 달린 동그란 것을 주며 ‘#다시 하라’고 했다. 해산을 앞둔 산모처럼 어기적거리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10여 분의 혈투 끝에 드디어 차돌보다도 더 단단한 그놈을 빼내는 데 성공했다. 이마를 타고 흐르던 땀은 소금물이 아니다. 악쓰며 참아낼 때 터졌던 실핏줄을 뚫고 나온 한 맺힌 핏물이었다.

지난 #1112 토요일, 한바탕 축제는 끝났다. 밤새 내렸던 빗물은 속이 탄 국민의 뭉친 핏방울이었다. 요즘 똥줄 탈 벼슬아치들 너무 많아졌다. 그렇게 마구 먹어댔으니 막판에 안 막히면 사람도 아니다. 그때 그 간호사처럼 뒤로 돌아 꿇어 앉혀 엉덩이를 훌러덩 벗겨내야 한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개똥이, 쇠똥이, 말순이까지 모두 다 촛불을 들었다. 제발 #하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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