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12시 출발해요.’

막내딸한테서 문자가 떴다. 날이 쌀쌀해져서 한 이틀 구들장 신세 좀 지는가 했더니, 부산 사위와 막내딸이 올라오는 중이란다. 이젠 부산도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빈둥빈둥 천정을 보며 시간을 넘기고 있는데, 벌써 도착했다는 문자가 떴다. 횟집에 도착하니 큰딸까지 와있다. 겉모양은 허름한 건물인데도 이른 저녁부터 단체 손님들로 초만원이다.

막 집회를 끝내고 행진하는 장면이 뉴스화면에 흐른다. 딸들 앞에서 이따금 할 말이 막힐 때 흘깃 쳐다봤지만, 보는 것조차 멋쩍다. 사위와 딸들에게는 안 본 척 관심도 없는 척 시침 떼고 뒤꽁무니를 틀었다. 일곱 차례에 걸쳐 바뀌어 나오는 산해진미들을 입에 넣었다. 막내딸은 멍게껍질 네 개에 소주를 따라 이른바 ‘멍게주’를 만들었다. 멍게주가 빈속으로 들어가니 거북했던 속이 후련하게 풀렸다.

벽걸이 TV에선 멍 때리는 뉴스만 연실 내보내는 중이다. 온갖 의혹에도 버티고 있는 민정수석과 대갓집 집사만도 못한 문고리 3인방은 무엇하는 사람들인지 모르겠다. 의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에 7인회 회칼 김기춘이 진즉에 물러나고 약골 L 비서실장으로 바꿀 때부터 감이 잡혔다. 막강한 입김을 쬔 수석, 문고리 3인방 등 십상시도 모자라 8선녀까지 두었으니, 불통이 도를 넘쳐 이제야 미주알이 빠진 모양이다.

방귀가 잦으면 이처럼 더러운 게 묻어난다. 대통령이 순실이 아주머니를 모시는 대한민국, 정말 대단한 국민 주권의 나라였다. 설마, 설마가 했는데, 폭군이 지배하던 왕권시대처럼 ‘십상시’도 모자라 아무런 직함도 없는 아주머니가 대통령의 연설문까지 까집고, 여성 대통령답게 ‘팔선녀’까지 곁에 앉혀 감 놔라 배 놔라 했다니 맛이 가도 너무 심하게 갔다. 뒤늦게 여당은 거국중립내각 구성 운운하고 있으니 정말 웃기는 짬뽕이다.

며칠 전에 경찰이 고 백남기 농민의 시신 부검을 하지 않기로 갑자기 태도를 바꿔 조용해지는가 싶었다. 그런 발표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봇물 터지듯 또 다른 분노가 터졌다. 이번에는 대통령이다. 학생과 교수들이 시국선언을 하고 어린이까지 촛불 집회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화면이 흐른다. 이런 판에 야당은 눈치나 실실 살피며 손익계산에 분주하고, 언론과 방송도 질리지도 않는지 재탕 삼탕의 기사에 재미 들려 열심히 도배 중이다.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희생돼야 하나. 그 답은 바람만이 안다던, 밥 딜런이 드디어 노벨상을 타겠다는 보도가 나왔다. 목줄에 핏대를 세우며 밥 달라고 꿀꿀댔던 꼴로 변했다. 평화와 반전주의자라서 거부할 줄로만 알았는데, 역시였다. 우리나라는 순실이 같은 미친바람에 문화예술도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필자가 예술을 포기한 이유도 그랬다. 듣도 보도 못한 것들이 나타나 몽땅 주워 먹으니 입에 풀칠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토요일에 모처럼 밥 딜런이 불렀던 노래들을 돌렸다.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저항적인 노래로 노벨문학상도 받는데, 우리 청와대는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로 목줄을 죄고 있었다. 필자는 10여 년부터 아예 예술 활동을 접었다. 30여 년 청춘을 허송한 기구한 팔자다. 많은 선·후배와 지인들이 명단에 자랑스럽게 이름을 올려 속상하지만, 비싼 돈 주고 샀던 밥 딜런 음반까지도 빠개 쓰레기통에 집어던졌다. 정말 속이 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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