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 하는 거야! 안 들려요?” 

고물장수 트럭이 ‘고물 삽니다, 고물. 못 쓰는 텔레비, 헌 냉장고, 에어컨, 헌 컴퓨터, 오디오 삽니다’라는 방송하면서 단지를 한 바퀴 돌고 나갈 찰나, 40대 초반인 동대표 말자 씨가 대역죄인 목 치듯 망나니 쇳소리로 경비실 앞에서 핏대를 올리며 닦달이다. 경비아저씨 한 씨는 식겁해서 고물차 뒤꽁무니를 따라갔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나이 많은 한 씨가 둘째 딸 또래인 말자 씨한테 찍혀 소장이 한두 번 싹싹 빌었던 게 아니다. 이번에는 반성문으로 끝날 성싶지 않다. 관리사무소로 가면서 당장 잘라버리겠다며 씩씩거리는 품새가 예사롭지 않다.

청춘을 다 바쳤다는 직장에서 만물박사로 통하고 과·부장까지 진급해 부하 직원 삼사십 명씩 거느렸다던 화려한 과거와 이력도 이곳에서 통하지 않는다. 딸·아들 출가시키니 모아둔 돈도 바닥났다. 남들은 션찮다 하겠지만 두 내외 입에 풀칠은 가능해 도시락 두 개씩 싸와서 ‘참을 인(忍)’ 자 되새김질하며 이빨 악물고 지켰던 경비실에서 먼 하늘을 올려다본다. 24시간 맞교대 근무였지만 하늘이 내린 큰 은혜로 알고 결근 한 번 없었는데, 이번에 또 사고를 쳤으니 마지막 근무가 될 판이다.

돈밖에 모르는 대기업 회장님, 사장님들이 권력의 뒷전에 돈다발 쌓다가 발각돼 세상이 떠들썩하다. 제 식구들 임금인상에서는 고물값 흥정하듯 팍팍 깎아내리더니 권력자 앞에서는 체면이고 나발이고 없었다. 노조도 예전과 같지 않아서 줄줄이 낙하산 타고 공기업으로 내려와 자리 꿰찬 돈독 오른 기생충들에 설설 기며 한통속이 된 모양이다. 중소기업, 하청업체는 물론 백만 원대 월급으로 생활하면서도 가자미처럼 눈이 돌아가는 한 씨처럼 불쌍한 처지인 사람들은 아예 사람 축에도 끼지 못한다.

필자의 고향 ‘오색시장 오매장터(요즘 바뀐 이름)에는 입으로 불을 내뿜는 불쇼는 물론 장소팔·고춘자 선생의 만담과 지난 6월에 별세하신 소리꾼 이은관 선생도 배뱅잇굿을 공연하던 오래된 전통시장이 있다. 요즘처럼 볼거리가 많지 않아서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어른들 뒤를 따라가 시장통 싸전마당에 앉았다. 약장수들이 따발총처럼 쏘아대는 재담에 헬렐레 입을 벌리며 허기를 달랬다. ‘엿장수가 가위를 몇 번 치냐?’라고 물으면 ‘열 번, 스무 번’ 여기저기서 대답했지만, 정답은 ‘엿장수 맘대로’였다. 드디어 본전을 뽑아갈 약장사가 개시된다.

“아가야! 이리 나와 보렴.”

약장수는 대뜸 얼굴에 마른버짐이 허옇게 핀 옆집 사는 승필이를 무대 앞 맨땅으로 불러내 알약 서너 개를 먹인다. 가수들은 노래하고 춤추며 시장을 뒤집어놓을 듯 한바탕 신명 나게 흥을 돋운다. 얼굴을 찡그리고 안절부절못하면서 뒤 마려운 강아지처럼 승필이가 끙끙댄다. 이때를 놓칠세라, 약장수가 바지를 내려주며 용변을 누게 한다. 헤집는 꼬챙이에 허연 회충들이 꼬물거린다. 한 끼씩 건너뛴 빈속에 너도나도 회충약 몇 알 입에 털어 넣으면 하늘이 노랗게 보인다. 다음 날 아침 뒷간에는 누가 쏟아놓았는지 허연 회충들을 수북했다.

사상 최대의 가계부채와 청년 실업률에도 멍청하게 견디며 살았던 병신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겁을 상실한 지독한 철면피들은 콩고물이 잔뜩 묻어 고물장수도 가져가지 않는다. 용꼬리에 빌붙어 사는 기생충들도 약발이 먹히질 않는다. 드디어 국회에서 ‘전경련 해산 촉구 안’이 발의됐다. 조짐이 심상치 않다. 그 옛날처럼 ‘기생충을 박멸하자’는 표어가 문득 떠오른다. 내년에는 사람 인(人)자 제대로 눌러야 한다. 촌충, 십이지장충, 편충, 요충까지 기생충들은 모조리 수세식 변기 속에 몰아넣어 순식간에 밀어내서 건강부터 챙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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