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TV 방송은 즐겨 보지 않아서 정말 몰랐었다. 패럴림픽은 이미 많은 매체에서 다룰 줄로만 알았다. 한가윗날 모처럼 형제가족들까지 한자리에 모였지만, 서로 나눌 대화의 화제는 그렇게 많지가 않았다. TV 오락프로그램이 끝나기가 무섭게 조카는 바쁘게 채널을 이리저리 돌렸다. 마침 스포츠뉴스가 떠 ‘잠시 보고 넘기자’고 필자가 말했다. 역도경기 중이었는데, 뭔가 좀 달랐다. 걸어 나오는 선수의 걸음걸이도 그랬고, 처음 본 낯선 경기 진행방식이다. 선수가 사방을 향해 인사를 하더니 벤치프레스에 드러눕는다. 코치인 듯한 사람이 벨트로 선수의 양쪽 하반신을 꼭꼭 매준다. 긴장한 표정의 두 사람이 양쪽 바벨 밑으로 손깍지를 끼고 받치면서 경기가 시작된다. 우리나라 선수는 아쉽게도 3차 시기에 실패했다. 이어 나온 외국 선수가 우승을 확정 짓고, 보너스로 주어진 4차 시기에서 310㎏도 거뜬히 들어 올렸다. 모니터에 세계신기록이라고 쓴 자막이 왼쪽으로 깜빡거리며 흐른다.

패럴림픽(Paralympics)은 올림픽이 끝난 후 바로 그 경기장에서 열리는 장애인 운동 선수들의 올림픽이다. 4년간 갈고닦은 실력을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 대결하는 국제적인 스포츠 축제이다. 우리나라도 양궁, 육상, 보치아, 사이클, 유도, 역도, 조정, 사격, 수영, 탁구, 휠체어 테니스 등 11개 종목에 164명의 선수단이 리우에서 구슬땀을 흘렸다. 올림픽 때는 모든 방송사가 밤을 새우며 중계하더니, 패럴림픽은 공영방송부터 슬그머니 꼬리를 내려 있는 줄도 몰랐다. 앞으로 18개월 후에는 다시 우리나라 평창에서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이 열린다고 한다. 아마도 국가와 국민이 지금과 같은 마음가짐이라면 보나 마나 뻔하다.

색깔과 관계없이 목에 건 메달은 장애를 극복한 강인한 정신력의 값진 결과물이다. 메달이 없더라도 국가대표로 출전한 것만으로도 가치는 충분하다. 아쉬움도 많았지만, 불편한 몸을 이끌고 지구 반대편까지 가서 정말 잘들 싸웠다. 그들의 이름을 모두 호명하고 싶지만, 지면이 좁다. 조기성은 100, 200m 수영 자유형에서 대회신기록을 세웠고, 50m도 역시 금메달로 3관왕이다. 배영 100m에서 이인국도 역시 신기록을 세웠다. 남자 유도 100kg급 최광근, 단체전 탁구 김영건-김정길-최일상, 뇌병변장애를 가진 보치아의 세계 일인자 정호원은 뒤늦게 금메달을 확정했다. ‘어머니, 저를 강하게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일그러진 얼굴로 인터뷰할 때는 우리도 울컥해져서 콧물까지 훌쩍거렸다.

여자 핸드 사이클에서 은메달을 딴 세 아이의 엄마라는 이도연 선수, 남자 평영 100m 임우근, 탁구 서수연·주영대, 세계최강 보치아팀인 정호원-김한수-최예진, 사격의 김근수, 이윤리, 이주희, 이장호 선수도 자랑스럽다. 1m 40cm에 39세의 뇌성마비 1급이라는 전민재 선수와 UDT 특수부대 출신의 김규대 선수, 효자종목인 양궁의 이억수·김미순, 혼성단체에서 구동섭-김옥금, 유도 이정민, 남자탁구단체전에서 차수용-주영대-김경묵 그리고 서수연·주영대 선수도 금메달을 놓고 겨루다 아쉽게도 은메달을 땄다. 여자단체전 탁구의 윤지유-이미규-서수연, 강외정-김옥-정영아 팀, 개인전의 정영아·김성옥·남기원 선수, 유도의 진송이와 서하나 선수도 값진 동메달을 각각 목에 걸었다.

사고나 질병으로 몸을 다친 경험이 있다면 장해와 장애는 쉽게 구별된다. 평상시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신체 일부가 이상이 생겨 제 기능을 못 할 때의 그 불편함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장해(障害)는 자신은 물론 남에게까지 불편함을 주지만, 장애(障碍)는 자신의 몸이 정상적이지 못해 그저 미안한 마음뿐이다. 곁에서 조금씩만 양보하고 배려한다면 절대로 남에게 피해는 주지 않는 천사의 모습을 간직한 사람들이 장애인이다. 아직은 정상인이라지만 언제, 어느 때 갑자기 장애가 닥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누구에게나 그리고 현실 상황에서 장애의 잠재적 요인은 느끼지 못할 뿐이다. 지진이 날까 봐 정말 무서웠지만, 지진보다 더 무서운 언론과 방송의 장해는 더욱 무서웠다. 명색이 ‘국가대표’인데 선수들에게는 정말 미안하고 미안할 따름이다. 아, 정말 가을이다. 필자의 원고를 읽던 조카의 젊은 팔뚝에도 좁쌀 같은 소름이 하얗게 돋는다. 춥고 떨릴 겨울도 머지않아 온다. 그때는 다 함께 따뜻한 마음이 넘칠 장해 없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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