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 되고 계절도 가을로 접어들었지만, 감칠맛 나고 입맛 다실 맛깔날 글감이 영 떠오르질 않는다. 가을의 형용사야 무진장해도 끌어와 쓰려면 왠지 조심스럽다. 촌놈인 필자는 ‘가을’ 하면 농촌맛, 촌맛부터 떠올려 천고마비, 추수에 감사해야 하지만, 역마살로 떠돌다 보니 낚시터에서 즐기는 대맛, 영화관이나 낙엽 지는 공원에서 사색과 고독에 취해 잠맛에 빠지기 일쑤다. 하지만, 볼맛, 눈맛은 변치 않아 책 읽기에 딱 좋은 독서의 계절을 맨 앞에 놓는 건 잊지 않았다. 지금 도서관에서는 독서주간이라면서 한 번에 10권까지도 2주 동안이나 무료로 책을 빌려준다. ‘남아수독오거서’ 별것 아니라는 생각도 잠깐, 코앞으로 다가선 한가위에 고향 땅으로 내려가려니 목구멍에 붙은 혀끝의 뒷맛이 씁쓸하다. 

옛말이란 조금도 틀린 게 없는가 보다. 식구끼리 모여 송편을 만들 때, ‘예쁘게 만들어야 예쁜 딸 낳는다’던 어머님 말씀. 헐, 며느리도 있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필자는 딸 둘은 참 예쁘게 뽑았다. 봄맛, 여름맛, 가을맛 듬뿍 머금은 삼색 나물과 무맛인지 물맛인지 몰라도 깔끔하게 우려낸 세 가지 탕맛은 어디에 가도 손색없다. 필자가 젖 떨어진 후 첫맛을 다셨다는 어머님 손맛(화학조미료 살 돈이 없었다.)의 부침개는 따스함이 사라져 차갑게 식어도 맛은 여전하다. 고만고만했던 새까만 머리통의 삼 형제가 한자리에 둘러앉아 먹는 밥맛은 꿀맛, 불룩 나온 배를 쓰다듬으며 광 파는 이 없이 주거니 받거니 그림책을 돌리며 판맛을 즐길 때, 내 앞으로 돌아온 그 쓴맛(점 10인데 거금 900원 나감), 그 술맛 너무 써 인상도 써진다.

서로서로 치켜세우며 오가는 덕담 속에는 웃음꽃이 절로 피지만, 오랜만에 돈맛 좀 본 세 치 혀가 잠잠할 리 없다. 구수한 맛의 진담인데 듣는 이는 자격지심에 발동해 고소한 맛으로 오해해 목에 걸리며 악담으로 들릴 수 있나니, 하필이면 밑천이 달랑거리던 그 판에 안 해도 될 떫은 말은 이해하지 않아 오해되나니, 가까운 사이끼리 돈·자식·아파트 자랑은 삼가는 게 불문율이다. 세상은 넓고 할 일도 많은데 이웃집이나 아는 사람과 비교하면 더더욱 안 된다. 뻔히 잘 알면서도 모르는 체 시침 떼고 취업, 결혼, 출산, 다이어트 같은 거로 확인 사살하는 무자비함. 역지사지,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세상사가 돌아간다면 이 세상에 부자, 권력자, 스타 아닌 사람 그 누구랴. 말맛 없는 말도 아닌 말로 입맛 떨어지는 자랑, 정하고 싶다면 숨 끊어지기 직전에 유언으로나 남기시라.

방송이나 신문에서 이미 보았지만, 신기하게 짜깁기한 뉴스가 SNS를 통해 입맛 다시게끔 올라온다. 자기 편한 입장과 처지에서 거두절미(앞뒤를 빼고 요점만 정리)했으니, 보는 관점에 따라 글도 다르게 읽힌다. 요즘 스마트폰이 대세라서 그 얕은맛에 길들어져 나도 모르는 새 ‘좋아요.’ 누르며 소통하는 횟수가 점점 늘어난다. 물론, 전하고자 하는 뜻이 제대로 전달했다면 그쪽은 말맛이라도 났겠지만, 잡맛의 삿된 정보에 홍역 앓듯 고역을 치르는 수많은 네티즌은 단맛, 꿀맛이 아닌 개운치 않은 뒷맛으로 쓴맛, 소태맛에 등 돌리기 일쑤다. 가뜩이나 외래어와 속어, 유행어 등에 익숙하지 않아 딴맛과 떫은맛에 심통이 나 있는 판이다. 글맛이 깊은맛을 내지도 못하며 주먹맛, 몽둥이맛, 매맛도 아니라서 매운맛, 된맛이 나질 않는다. 장맛처럼 짠맛도 난다거나 식초처럼 신맛이라면 뒷입맛이라도 다시겠지만, 총알맛, 칼맛 같아서 별맛도 없으면서 정신만 쏙 빼놓는다. 

세상살이 볼 만큼 맛보았지만, 세상맛, 제맛이 나지 않는 요즘이다. 한가위에 가위눌려 살맛 안 나는 사람들 어디 한둘이더냐. 말은 해야 맛이고, 고기는 씹어야 맛이라고 했다. 맨 마지막, 한맛도 있는데, ‘가르침을 받는 이의 자질에 따라 다르지만, 그 본뜻은 똑같다’는 말이다. 필자가 에둘러 빙빙 빙글빙글 돌아가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눈치챘다면 그대는 대박이다. 굳이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가 아니더라도 세상의 갑이라는 권력자들 스스로 돈맛을 멀리해야 참맛도 알게 된다. 장급 후보자로 추천된 인재마다 언제 그 많은 재산을 어떻게 모았는지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올해도 석 달 반 남았는데, 이 해가 정말 안 간다. 맛있고 기분 좋은 한가위, 맛 떨어질까 봐 정치권 얘기는 아예 접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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