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박물관사업소장 이종빈
이종빈 성남시박물관 사업소장.

판교박물관 수장고에서 ‘이기익 증시교지(李箕翊 贈詩敎旨)’(1788년, 정조12년)를 만난 순간의 감정은 미세한 떨림 그 자체였다.

‘증시교지’란 임금이 나라의 이름난 선비에게 시호를 내리는 교지를 뜻하며, 자헌대부 공조판서 겸 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도총관인 이기익에게 “양정공(良靖公)”이란 시호를 내린 것이다.

전주이씨 덕양군파 종중에서 기탁, 보관하고있는 200년이 지난 조상의 유품을 오롯이 마주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맥을 소중히 이어온 옛 어른들의 노력과 박물관 시스템 덕일 것이다.

박물관은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한계를 초월해 과거를 경험하고 소통하게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어떤 이는 지식을 얻고 다른 누군가는 감상에 젖는다. 기록이 기억을 재생하고 공간은 인식을 환기해 나타나는 ‘박물관의 마법’인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현대의 박물관은 지역사회 구성원에게 쉼터를 제공하고, 인식을 개선하며, 문화를 창조하는 단계로 확장하고 있다.

성남은 분당으로 대표되는 신도시 이미지가 강해 그 역사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도외시되었지만, 실상 나름의 역사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도읍 한양의 관문으로 마지막 봉화인 천림산 봉수가 위치했고, 고려시대 광주목, 삼국시대 온조왕의 위례성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실제 판교 개발 당시 백제와 고구려의 돌방무덤 11기를 비롯해 다수의 유물이 출토됐으며, 이를 계기로 현재의 판교박물관이 건립됐다.

필자는 조선 11대 중종대왕의 5째 왕자이신 덕양군(이기)의 16대손이며 판교박물관의 관장이자 새롭게 세워질 성남시의 박물관 책임자를 겸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성남시가 시로 승격된 지 50년이 되는 기념적인 시기로, 그 정점을 찍은 문화의 박물관 건립의 첫발을 내딛게 되었으며, 그 역사적인 순간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되었다는 것에 사뭇 흥분됨과 동시에 진중한 무게감을 느낀다.

성남시 박물관은 전시동과 체험동 2개 동으로 조성될 계획으로 체험동은 지상 4층 규모로 완공이 되었으며 전시동은 지하2층 지상2층 규모로 설계중에 있다.

‘공원박물관’을 컨셉으로 인접한 공원과 연계해 경관을 정비하고, 공원과 박물관 옥상정원을 직접 연결해 문화와 여가를 동시에 즐길 수 있고,‘4차산업 특별도시’를 모토로 한 도시인만큼 박물관 건축과 전시를 위해 IT 디지털 박물관의 집합체라 할 수 있고,  열린수장고와 전시실은 자동화 기술로 통제되어 경제적이고 안전하게 운영할 계획이다.

우리 박물관사업소는 희망대공원 박물관 부지에 먼저 건립된 디지털복합체험동으로 이전하여 상반기에 체험동을 먼저 개방해 VR과 실감형 콘텐츠 등 프로그램을 추진하게 된다. 성남시 태동의 50년, 그리고 다음 반세기의 꿈을 담을 박물관을 어떻게 그려나가야 할지 현장을 마주한 채 고민하기 위한 단초인 것이다. 

필자의 선조이신 덕양군 탄생 500주년의 오랜 역사의 산실은 물론, 시 승격 50년의 역사와 미래의 성남을 그려갈 성남시 박물관 건립의 첫 삽을 뜨는 올해, 필자가 조상의 숨결과 미래의 꿈을 담을 막중한 역사(役事)를 담당하게 됨은 아마 오래전부터 정해진 나의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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