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세계
-김경철을 기리며
                                         

                                       유국환

 

들을 수 없어도 나는 보았지요
꺼칠한 손으로 애교머리를 쓸어내리는 여동생의 꿈을 

말할 수 없어도 나에게도 꿈이 있었지요
기와를 굽더라도 어무이 배곯지 않게 하겠다고

갸가 어릴 때 경기가 왔는디
나가 뭘 모릉께 마이싱을 많이 맞아 부럿제
그 이후로 귀가 먹어버렸어

사람들이 유행가에 어깨를 들썩이는 날이었지요
강물은 흘러갑니다 제3 한강교 밑을
당신과 나의 꿈을 안고서 흘러만 갑니다

너 데모했지, 연락병이지?
어디서 벙어리 흉내 내?
손사래질 위로 햇살보다 몽둥이가 먼저 쏟아졌습니다
까마득한 곳에서 어무이 말소리가 들렸지요 
내일 하고 모레면 부처님 오신 날인디

갸가 기와를 굽다가 가운데 손가락이 짤려 부렷어
다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데 요래조래 찾아봉께 
가운데 손가락 없는 애가 눈에 딱 들어오던 걸

올해로 마흔 번 아들을 죽였다고 말하지만
울 어머니가 아들을 쓰다듬을 때마다
시커먼 땅속에서는
파란 잔디와 뜨거운 햇살이 살아난다니께요.

 

                                                 화가 일휴
                                                 화가 일휴

 유국환 부산 출생. 서울대 국문학과 졸업. 5.18 신인 문학상, 푸른사상 신인상, 황토현 시문학 대상 수상. 시집 '고요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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