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무 기자.
                                       정연무 기자.

“대한민국이 ‘지옥’이다”

이 땅의 젊은이들이 미래와 희망을 잃어버렸다. 
불공정과 비상식에 무책임을 더한 기득권세력이 젊은이들의 미래를 빼앗았다. 
불합리, 내로남불로 무장한 권력이 젊은이들의 입을 막았고, 발을 묶었으며, 눈을 가리고, 사고를 정지시키고 희망을 앗아갔다. 

그리고, 청년세대의 미래와 관련한 개혁과제를 철저하게 외면해온 집권세력은 불과 5년만에 ’나랏빚 1000조‘를 넘기고, 국가채무비율 50%를 돌파하면서 이들에게 절망을 전가했다.
무책임하고 파렴치한 행태다.

이로 인해 미래의 희망을, 꿈조차 꿀 수 없게 된 우리의 젊은이들은 스스로를 '이태백(20대 백수)' '삼태백(30대 백수)'으로 조롱하면서 자신들의 조국, 대한민국에 지독한 부정과 냉소가 가득 담긴 ‘절망의 분노’를 쏟아냈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지옥’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IMF 세대'보다 참혹한 '코로나 세대’

젊은 세대는 “돈 대신 공정한 기회를 달라”고 외치는데 기득권세력은 구태에 빠져 있다.
최근 대한민국은 무수히 되풀이된 공정, 정의 논쟁의 연장선에서 날이 갈수록 벌어지는 빈부격차, 안정된 일자리 부족, 집값과 전세값 상승, 계층사다리의 소멸 등의 심화로 2030세대가 겪는 좌절과 고통은 남녀를 가리지 않는 그런 문제가 됐다.
한때 ‘공정과 정의’의 꿈으로 가슴설레던 대한민국이 어느새 청년들이 미래에 대한 기대를 부정하는 나라가 돼버린 것이다. 
그렇게 이 땅의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IMF 세대 '보다 참혹한 '코로나 세대’가 됐다.

2030의 분노
이 땅의 2030 세대가, 이익을 사유화하고 손실은 공유화해버린 기득권세력에 분노하고 있다.
이들의 분노는 궤변과 망상으로 ‘먹칠된 민주주의’에 대한 경고이고, 무시된 절차, 파괴된 규칙, 훼손된 법치에 대한 절망이고, 무수히 많은 젊음의 피와 땀과 눈물을 헛되게 만든 죄에 대한 유죄선고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이미 기득권으로 자리한 집권세력은 반시장적인 실험으로 '삶을 파괴하는 무능력한 아마추어이고, 시민단체는 연줄로 빨대 꼽아서 '세금 빨아먹는 조선 말기의 서원' 따위이며, ‘군가산점제’ ‘페미니즘’등을 향해 남녀 갈라치기 선동이나 하고 ‘코인 사라’를 대책이라 내놓는 정치인들은 “좌절과 분노까지 착취하는 저질”이다. 

대한민국이 미래를 잃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빚의 굴레에 얽매이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20, 30대 다중채무자가 130만명을 넘어서고, 이들의 빚이 150조원을 돌파했다는 통계적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만성화된 취업난에 고용의 질까지 나빠지면서 청년들이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기반을 흔들고 있다.

2030세대는 현 정권의 불공정과 불안, 불신의 3불(不)에도 등을 돌리고, 절망하면서 “기만당했고, 배신당했다”고 단언한다.

임금을 매달 차곡차곡 모아도, 이보다 몇 십배로 수직 상승하는 부동산 앞에서 무력할 수 밖에 없는 2030세대는 “해도 안된다”며 좌절한다.

2030세대는 절박하다.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은다는 뜻)에도 부동산 장벽에 막히고, 코인, 주식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고, 지방출신은 일자리조차 찾을 수 없는 현실에 절망하면서 교육격차, 노후 불안에 미래를 잃었다.

”이들에겐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는 너무 옛날이야기일 뿐이다“
이들의 분노는 이 사회 전반에 깔려있는 공정하지 못하고 정의롭지 못한 위선에 대한 정당한 권리이고, 허위와 위선으로 가득찬 부당함과 뻔뻔한 기성세대에 대한 피끓는 항의이다. 바뀔 것이라고 생각했던 희망에 대한 좌절과 배신에 절규이다.

이들이 마지막까지 타협하지 않고 저항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정치를 넘어 경제·사회·문화 등 여러 부문에서 대한민국이 진짜 공정·정의를 기반으로 미래를 열자는 간곡한 바람일 것이다.      

이제는 국가와 기성세대들이 나서서 청년세대의 ‘꿈과 미래’가 무엇인지, 이들은 어떻게 좌절했고, 왜 분노했는지 고민하고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한국 사회 모순이 여기에 있고, 포퓰리즘에 물든 채 ‘미래 세대 착취’에 부끄러움도 없는 기성세대의 반성 또한 여기가 방점이다.

”더 이상의 희망이 없는 사회에서 타협은 곧 죽음이요, 적응은 굴종일 뿐“이라는 이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이들을 이렇게 만든 것도 결국 당대의 국가이고 필자를 포함하는 기성세대인 것을...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 '비참한 이들'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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