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정 시인의 한영시집 ‘인생계략(LIFE PLOT)’

이상정 시인은 필자와 인연이 깊다. 경기도 문인협회에서 6년씩이나 사무국장과 차장으로 호흡을 맞춘 적이 있어 형제 같은 사이다. 지난 4월 말이었다. 필자의 행사 때 꼭 와서 색소폰 연주 좀 부탁한다고 전화했었다. 그랬더니 하필이면 그날부터 5월 초까지 아들과 함께 시베리아를 횡단하게 됐단다.

주먹구구식 / 감정처리가 / 가져온 쓴잔 / 무턱대고 시작한 일 / 가정도 사랑도 망치고 /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서 / 다시 시작이다 - ‘살아남는 방법·1’ 중에서

시발점이 곧 종착점이고 / 과거가 곧 현재고 / 머리가 곧 꼬리고 / 가는 것이 곧 오는 것이고 / 앞이 곧 뒤고 / 있는 것이 곧 없는 것이다 - ‘도덕경에서 노자를 보다·8’ 중에서

이번 시집을 받고 읽어보니 문득 아버지가 그립다. 긴 말씀은 없으셨지만, 늘 내게 당부했던 그런 말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첫 번째 작품부터 심상치 않더니 끝 작품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이상정 시인의 시는 현실에 단단히 뿌리를 내려 길어 올린 것들이라서 애증이 있고 애환이 있고 도약을 위한 이완과 수축이 있고 감김과 풀림이 있다. 우듬지까지 꿈을 밀어 올리는 역동적인 힘이 있으며 현실 발화를 통해, 독자가 친근감을 가지고 읽게 하는 친화력이 있다”라면서 김왕노 시인도 강력히 추천한다.

이 시집은 1부에서 3부까지 ‘살아남는 방법’ 14편 ‘인생계략’ 15편 ‘풍림화산’ 16편이 실려 있으며, 작품 해설을 쓴 손수여 시인은 “시인의 부성애가 담긴 아들에게 당부하는 인생살이의 지침서”라면서 아들에게 당부하는 형식으로 썼지만, 전편을 통하여 시인 자신은 물론 모든 이들의 인간성 회복을 위한 치유를 꿈꾸고 있는 작품들이다. 어쩌면 지당하고 당연한 말들이 가슴에 와 닿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시베리아 여행 좋았겠네요?”라는 필자의 물음에 “사사건건 아들과 충돌했지요.”라는 답변이다. 우리만 늙은 게 아니고 이젠 그만큼 아들도 훌쩍 커버렸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그러나 꼭 할 말은 하는 게 또한 시인이 아니던가. 몇 해 전에 유럽을 다녀온 후 쓴 여행 에세이 ‘아들과 떠난 유럽 아들이 보인다’에 이어 아들과 함께 떠난 시베리아 이야기도 한 권으로 머지않아 책으로 나올 성싶다.

이상정 시인은 1995년 ‘시와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입술도장편지(2015)’  ‘붉은 사막(2017)’에 이어 이번에 낸 한영시집 ‘인생계략(LIFE PLOT)’은 그의 열 번째 시집이다. 현재 국제PEN한국본부 제35대 이사, 경기펜 제5대 사무국장, 한국문인협회 제26대 문학생활화위원회 위원, 한국경기시인협회 기획국장, 수원시인협회 이사, 표암문학회 제5대 이사 등으로 활동한다.

인생계략, 시산맥사, 142쪽,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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