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규 편집국 사회2부 부장

내 인생의 진로가 바뀐 계기는 문학의 스승인 ‘김대규 시인’과의 만남 때문이다. 갈색 체크 남방, 빗금무늬 넥타이, 터부룩한 곱슬머리, 무엇보다도 꿈꾸는 듯한 마스크가 군대 스타일에 익숙했던 나를 혼란스럽게 흔들었다. (중략) 명학역에서 안양역까지는 언제나 걸어 다녔다. 그곳 지하상가에 제2의 아지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복영 시인이 운영하던 ‘독서당 수리’라는 작은 책방이었다. 소주 2병과 새우깡이면 ‘글로 문학이 되고 술이 시’가 되던 시절이었다. (중략) 문예회관 앞의 ‘다예원’에서 그립던 스승과 마주 앉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운다. 나는 아직도 ‘근로문학’ 현역임을 자처한다. 문단 이력의 첫머리에 언제나 ‘근로문학으로 작품 활동 시작’이라고 분명히 쓴다. 역마살로 떠돌아도 안양(安養)은 나를 편안하게 키워주던 내 문학의 고향이다. -안양시민신문, 2002년 8월 9일 자, ‘술에 관한 기억 몇 조각’ 부분

 

“나의 고향은/급행열차가/서지 않는 곳//친구야//놀러 오려거든/삼등객차를/타고 오렴.” -김대규 시인의 ‘엽서’ 전문

 

세월 참 빠르네요. 선생님 문하에 들어간 게 1981년 봄 이맘때쯤이니, 벌써 36년이 넘었네요. 저도 환갑을 넘겼지만, 아직도 저는 선생님 곁에서 아희처럼 굴고 싶어요. 말썽도 부리고 그러다가 선생님께 꿀밤도 맞고 싶고요. 요즘 선생님께서 편찮으시긴 하지만 저희 눈에는 변함없이 열혈청년으로만 비친답니다. 세월이 그렇게 많이 흘렀어도 그런 맘이 조금도 변하지 않는 이유를 저도 알 수 없어요.

 

저희 또래가 1대 제자들인데, 다들 못 나서 죄송합니다. 많은 제자에게 시 사랑을 나눠주시느라 기력이 쇠해지신 게 아닌가 싶어 더욱 송구스럽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글밥’ 먹는 제자들도 참 많아졌습니다. 선생님은 늘 제게는 자랑스러운 이름입니다. 아직도 선생님 앞에서는 어린애들인 우리를 생각해서라도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건강이 좋아지시어 오래도록 지켜보아 주시고 또 조금만 더 이끌어주십시오, 선생님! -본보 2017년 5월 14일 자, 스승의 날에 ‘김대규 선생님 전 상서 부분

유족대표 장남 김진영 씨의 인사

 

보름 전인 지난 9일(금요일)에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된 신준희 시인을 앞세워 박공수 시인과 함께 선생님 댁을 방문했었다.

 

“예술은 감동을 줘야 해. 예술은 인간의 영혼을(손을 천정으로 향하게 하시며) 올려주는 거야. 무엇보다도 자기 세계는 자기가 구축해야지, 열심히!”

 

선생님은 ‘열심히’라는 단어에 잔뜩 힘을 주셨다. 하기야 ‘아픔까지도 열심히’ 아파야 한다는 분이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3차 항암 투여에 들어가신단다. ‘주사 맞고 나면 많이 아파.’하시는 말씀에 우리는 삐져나오려는 눈물을 억지로 참았다. 이젠 겨울도 가고 새봄이 왔으니 선생님도 새봄에는 건강을 되찾으시길 기원하면서 현관문을 나섰다. 나오는 우리에게 눈길을 떼지 않으시며 손을 흔들어 주시는 하얀 손이 눈에 밟힌다. 선생님은 그 손으로 만년필을 잡고 주옥같은 작품들을 써내셨다. 감히 우리는 다가서지도 못할 찬란한 문장의 텃밭을 애써 일구어 놓으시고 지금은 잠시 쉬고 계실 뿐이다. 잠시만, 정말 잠시다. 새봄에는 선생님 손 꼭 잡고 삼덕공원 한 바퀴 둘러볼 참이다. -본보 2018년 3월 14일 자, ‘선생님! 새봄이 왔어요’ 부분

 

지리산 이원규 시인을 취재한 후 전주로 이동했는데, 김선우 시인으로부터 24일 새벽 0시 35분에 김대규 선생님께서 하늘의 부름에 따르셨다는 소식이다. 먹먹하다. 보름 전인데, 뵙고 선생님 손을 잡아 드렸는데…. 머릿속이 하얘졌다. 글이 잘 써지지 않아서 옛글을 복사해서 다시 옮긴다. 이젠 이런 옛 추억마저 잊힐까 두려워 이렇게라도 기록으로 남긴다. 영원무궁 저희 곁에 계실 김대규 시인님! 아픔 없는 곳에서 편히 영면하소서

 

 

 

열심히 마셨고, 열심히 피웠다.

열심히 읽었고, 열심히 썼다.

열심히 사랑했고, 열심히 방황했다.

열심히 홀로였고, 열심히 외로웠다.

열심히 아팠고, 열심히 거듭났다.

열심히 살았고, 열심히 죽는다.

-김대규 시인의 ‘간추린 자서전’

(김대규 시인님 묘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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