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사회2부 부장 이원규

새해 1년 52주 중 첫 주가 지났다. 세상 좋아졌다고 난리지만, 옛날에는 없었던 이상한 사건들이 곳곳에서 터진다. 뻔히 보이는데, 처음에는 안 그랬는데 세월이 갈수록 이해 못 할 인간말종들이 생각보다 많아졌다. 홀로 태평성대라도 누리는지는 몰라도 썩은 미소 지으며 카메라 앞에서 누런 이빨 드러내는 정치꾼들을 보면 부아가 치민다. 지난해 연말부터 웬 불은 그리 자주 났는지, 불통이 불똥으로 변한 건 분명하다.

얼마 전에 영세민 아파트에서 끔찍한 사건이 터졌다. 20대 초반에 세 아이의 부모가 된 부부가 있었다. 어린 아빠는 정규직에서 실직 후 술집, 피시방 등을 전전하며 아르바이트로 다섯 식구의 생계를 이어가려 했으나 다리까지 다쳤다. 역시 어린 엄마도 콜센터에서 일하다 휴직한 상태였다니 세 아이의 우윳값과 기저귓값도 버겁다. 더는 버틸 수 없어 기초수급대상자 신청을 했다가 부양 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탈락했단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갈 때는 책상머리에 앉아서 서류만 보고 판단하지 말고 한 번쯤 방문 조사를 했더라면 이런 불행은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다. 젊으면 뭐하나 몸도 아프고 맘도 아프고 일자리까지 없는데….

소설도 이처럼 긴박하게 쓸 수는 없다. 그들은 중학교 때부터 만나 고등학생 시절인 2013년에 일찌감치 첫아들을 낳고 2015년에는 둘째 아들까지 낳은 후 뒤늦게나마 결혼식까지 올리고 셋째인 딸도 낳았다. 그런데 불이 나기 며칠 전인 12월 27일에 이혼했단다. 하지만 “아빠! 아빠!”하며 따르는 아이들이 눈에 밟혀 한집에 살았단다. 네 살·두 살의 아들과 열다섯 달 된 딸에게 맨밥을 간장으로 비벼 먹인 후 잠재웠다. 연말도 됐고 울적했던 아기 아빠는 밤 10시께 피시방으로, 엄마는 강소주를 마시고 인사불성이 돼 이불에 담뱃불을 끄는 바람에 불이 났다는데, 어린 생명은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그냥 타죽었다.

시시콜콜한 얘기라고 우습게 생각하지 말자. 비닐봉짓값 20원 때문에 시비가 붙어 흉기에 찔려 살해된 편의점 종업원도 있었고, 20원짜리 비닐봉지 두 장을 훔쳤다고 10대 알바생을 절도범으로 몰았던 점주도 있었다. 일을 마치고 필요한 물건을 골라 스스로 계산한 뒤 집에 가져가기 위해 비닐봉지 두 장을 사용했을 뿐이다. 언제부턴가 골목 장사가 더 무섭게 변했다. 백화점이나 큰 쇼핑센터에 가면 말 안 해도 자기들이 척척 알아서 담아주는 비닐봉지다.

필자도 이따금 집 앞 편의점에서 간단한 일용품을 산다. 비싼데 봉짓값까지 받는가 싶어 야박하다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편의점 알바생은 공정거래법, 환경부담금 운운하며 점주가 꼭 받으라고 했단다. 20원짜리 봉지 1장 인심 썼다가 수십만 원 벌금을 낸단다. 별로 쓸모없을 10원짜리 동전은 대부분 편의점에서 받아온다. 길바닥에 떨어져 있어도 허리 굽혀 줍는 사람 없을 10원짜리 두 개 때문에 살인도 하고, 종업원을 도둑으로 모는 추접스럽고 못된 세상이다.

진실로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위민정치와 행정이 그립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갈수록 불편하고 불행해지고 어처구니없는 일들만 터진다. 잘못된 법들을 고치고 실행으로 옮기는 데 힘써야 할 정치꾼들은 서로 자기가 잘났다고 게거품 물며 치고받으며 쌈박질이고, 눈칫밥으로 배를 불려도 세상 부러울 게 없는 철밥통들은 완벽한 복지부동, 눈알이 가자미처럼 돌아가 책상머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분명한 갑이면서도 을 행세까지 하는 지지리 복도 없는 우리다. 월급도 세금부터 떼고 받고, 장사가 안돼도 세금만큼은 꼬박꼬박 내면서 그들을 먹여 살리느라 비지땀은 물론 피땀까지 짜내고 있다. 세상 좋아졌다고 하도 떠들어대니 지나가던 개가 뒤돌아보더니 씩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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