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사회2부 부장 이원규

춥다. 수은주가 영하 10도까지 내려갔다니 체감온도는 두 배쯤 될 성싶다. ‘한파주의보 안내문자’가 스마트폰 화면에 떴다. 교대역 10번 출구를 빠져나와 서울중앙지법으로 가는 길이다. 몇 해 동안 개켜두고 입지도 않았던 내복을 껴입었는데도 춥다. 특히 귓바퀴가 시리다. 가죽장갑을 낀 채 지그시 감싸며 비볐지만, 오히려 바스락거리며 떨어져 나갈 듯하다. 재판은 11시 반이었지만 일찌감치 서두른 탓에 1시간이나 일찍 법원에 도착했다. 법인 문제로 전자소송 중인 2차 변론이 민사법정 3층에서 있다. 우리가 고소한 그들은 자기들끼리 임시총회를 열고는 창립자인 K 씨는 물론 필자까지 초창기 구성원 중 단 한 사람만 제외하고는 쥐도 새도 모르게 바꿔치기한 사건이다.

필자는 전자소송을 한 K 씨와 함께 인터넷을 통한 문학의 생활화라는 뜻에 마음을 맞추면서 동참했다. 있는 재주라고는 글 쓰고 읽는 것밖에는 없기에 초창기 창립 때부터 등기 이사로 등록했었다. 금전적 소득이 없다는 것도 익히 알고 있었다. K 씨가 사비를 투자해 홈페이지까지 제작하고, 자신이 개발해 특허를 낸 인터넷 백일장 추진했기에 10여 년 이상을 함께 했던 사업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밝힌다면 인터넷을 통한 ‘생활문학’의 기치를 내걸고 재능기부를 한 것이다. 이 세상에는 배우고 싶어도 형편이 어렵다거나, 길을 몰라 방황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그들에게 내가 아는 것이 있다면 아낌없이 알려주고 더 좋은 방향으로 인도하는 길라잡이가 되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보람이었다.

그 단체의 최초 설립자인 K 씨는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역경을 이겨낸 입지전적 인물이다. 검정고시로 시작해서 최근에는 대학원에서 석사학위까지 취득했다. 그곳에 재능기부를 한 이유가 필자 또한 그와 마찬가지의 삶, 즉 동병상련 때문이었다. 순수한 마음으로 문학을 사랑하며 동인지 형태의 문학지가 나올 때는 기쁨이 두 배였다. 올해는 소송에 시달려 동인지를 내지 않겠다는 걸 필자가 결사반대해 가까스로 펴냈다. 이권이나 수익이 될 사업은 개인 저서의 출판뿐인데, 대부분 경제적 사정이 여의치 않아 소량 출판을 원해서 오히려 교정을 봐주고 편집하는데 시간만 축내는 고단한 작업이었다. 그러던 중 K 씨가 믿을만한(?) 사람이 나타났다면서 그 사람에게 몇 해 동안만이라도 맡기기로 했단다. 예술프로그램 전문가이고 마당발이라서 자신의 업무를 대신할 적임자라고 했다. 그 당시 필자는 강원도 산골짜기에 머물던 때였는지라 잘 됐다고 천만다행이라고 덩달아 좋아했었다.
   
하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믿을만한 사람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생선가게를 고양이에게 맡겨서 온전할 리가 없다. 첫해는 무사히 넘기는가 싶었는데, 있지도 않은 ‘내 보따리까지 내놔라’하는 내용증명까지 보내면서 인터넷 언론사를 앞세워 협박했단다. 애초부터 순수 문학을 추구했던 단체이다. 설립 당시에 법인 잔고증명을 은행에서 뗀 것을 자산으로 착각한 모양이다. 생선 맛을 본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꼴이 됐다. 수십 년 공든 탑이 하마터면 무너질 판이다. 그래서 참다못한 K 씨가 적법한 절차를 무시한 임시총회가 무효라는 전자소송을 제기했다. 그 총회에는 필자는 물론 대표권 있는 현 대표도 참석하지 않았고, 총회가 성립될 정족수 또한 미달 상태였음도 불 보듯 뻔하다. 두고 보시라. 정의는 승리한다.

마지막 한 장 남은 12월 달력을 보니 ‘20일’이 붉은 글씨이고 날짜 옆에 ‘19대 대통령 선거’라고 인쇄돼 있다. 정상적으로 국정 운영이 됐더라면 당연히 이번 주 수요일은 대통령선거일이 맞다. 지금쯤 막바지 선거운동 열기로 전국은 뜨겁게 달궈졌을 것이다. 검찰은 국정농단으로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새로운 정권으로 뒤바꾼 지대한 공로를 세운 최순실 씨에게 1심에서 유기징역 25년과 수억대 추징금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단다. 그녀는 피고인 대기실에서 ‘아아악!’ 큰 비명까지 질렀단다. 처지와 상황이야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고양이에게 생선가게 맡겼다가 낭패 본 이들 이참에 다 나오시라. 속이라도 시원하게끔 전방을 향해 최대한 악다구니 써가며 함성 5초간 발사, 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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