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손가락에 나비가 앉았다’ - 이상적, 전투적, 미학적 낭만주의 건축물

첫 만남에서 박지웅 시인은 “애인 아시죠? 이동원이 불렀던 노래요?” 뜻밖에도 첫 마디가 폴 발레리가 아닌 ‘장석주’가 나왔다. “장 선생님의 시는 그 멀고 어둑어둑한 시절에 어린 제 마음을 많이 안아줬지요.”

박 시인의 고향은 부산이다. 필자도 젊은 시절 20여 년을 부산에서 보냈다. 강영환, 양왕용, 이윤택, 최영철 시인들과 교류했던 ‘젊은시동인’ 이야기까지 들먹이며 자랑했다. 하기야 필자도 문청시절 꿈은 ‘청하시선’에 이름을 올리는 것이었다. 다음 주 기형도문학관에서 강연한다는데 장석주 시인도 꼭 만나야 할 이유가 생긴 셈이다.

박 시인은 1984년 9월 12일부터 시를 썼다고 날짜까지 정확하게 밝힌다. 물론 시라기보다는 책받침 등에 인쇄된 외국 시들을 흉내 내 일기장에 옮기는 것이었지만, 자물쇠까지 채워 소중하게 보관했단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혼자만의 공간인 다락방에서 촛불을 켜고 김승희, 한하운, 전혜린 등을 읽으면서 본격적으로 시인의 꿈을 키웠다.

A4 용지를 넷으로 나눠 앞뒤로 빡빡하게 퇴고했단다. 그렇게 습작했던 용지가 박 시인의 키만큼 쌓였을 때, 서울로 올라와 늦깎이로 대학에 입학해 생활비와 학비 조달을 위해 동대문 야시장에서 새벽까지 일했단다. 두 번째 겨울, 더는 버틸 수 없어 탔던 부산행 무궁화호 열차 안에서 접한 '시와 사상' 신인상은 시를 써야 할 용기와 명분을 세워주었다.

드디어 2005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서 ‘즐거운 제사’가 당선됐다. 심사를 맡았던 황동규, 최승호 시인은 ‘감칠맛이 나는 문장, 마음이 스며 있는 언어, 한 편의 묘한 분위기를 빚어내는 솜씨는 보기 드문 것’이라며 손을 들어주었다. 당선 소식을 알렸던 그 전화를 사채 회사의 추심 전화로 오해했는데, 그날만은 빚이 아닌 빛의 전화였다.

박 시인은 문학동네에서 ‘너의 반은 꽃이다(2007년)’와 ‘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2012년)’ 두 권의 시집을 냈다. 2016년 10월 1일에 출간한 ‘빈 손가락에 나비가 앉았다’라는 세 번째 시집이다. 6개월간 휴직계까지 내고 마무리했던 노력에 보답하듯 출간 백일 만에 2쇄를 찍었다. 이 시집의 해설에서 고봉준 문학평론가는 ‘박지웅의 시는 이상적, 전투적, 미학적 세 개의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낭만주의 건축물’이라고 평했다.

문장 하나하나가 헛됨이 없고, 유려하고 생생하며 아름다워 한 번 펼치면 끝장을 덮을 때까지 중독상태에 빠진다. 등단 10여 년 만에 지리산문학상과 천상병문학상으로 비로소 징소리를 울렸다. 내친김에 한 달 전에는 직장도 그만두고 전업 작가의 길을 택했다. 외롭고 힘겹지만,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겨 마냥 행복하단다.

지난 12월 2일(토요일)에는 안성시 보개도서관 ‘행복한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독자와의 만남 시간도 가졌다. 전국을 무대로 뛰는 박 시인은 택시에서 ‘내가 / 행복했던 곳으로 가주세요’ 라고 외친다. 탕, 탕 망치로 두드려 만든 청동 나비들이 날개를 활짝 펴고 비상(飛翔)한다. 지웅 지웅 박지웅, 징소리 더 크게 더 멀리 울려라.

빈 손가락에 나비가 앉았다, 문예중앙, 160쪽,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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