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사회2부 부장 이원규

우리 교육의 현주소는 사람답게 살아갈 사람을 만드는 인성교육보다는 빠른 출세로 많은 재산을 축적하는 게 목표이지 싶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부터 외고, 특목고 등에 입학해 명문대를 졸업해서 연봉 많은 직장에서 고위직이라야 성공으로 치부한다. 지금도 스펙을 중시하는 사회구조와 의식은 더하면 더했지 조금도 변한 게 없다. 좋은 대학을 나와야 좋은 직장을 잡을 수 있는 건 당연한 현실이니 말이다. 그래서 학생을 둔 부모라면 오로지 자녀들에게 공부만 강요할 수밖에 없다. 아예 수능이 인생의 전부가 됐다. 우리 교육이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왔는지 올해도 한 달밖에 남지 않았지만,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갈수록 태산이고 별 희한한 꼴도 다 본다. 중심을 잡혀야 인성도 줏대도 바로 선다. 그런 걸 배운 바 없으니 골통들끼리 서로 잘났다고 치고받는 중이다. 볼꼴 사나운 뉴스거리만 제공하는 고위직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조상들 잘 만난 몇몇 금수저들을 빼면, 부모 세대가 겪었을 힘든 고통을 절대로 물려주지 않고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는 계속 찍어대고 있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어릴 때부터 살아남기 위한 이상한 방법부터 몸에 익혔다. 일찌감치 아이의 고통과는 상관없이 부모님 욕심대로 기성품을 찍어내는 일정한 틀에 아이들을 욱여넣었지 않았던가. ‘달걀은 스스로 껍데기를 깨고 나오면 병아리가 되지만, 사람이 깨면 후라이가 된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서의 교육문제는 모든 문제의 뿌리이며 곧바로 결과로 직결된다. 학벌이 최고의 가치라는 부모 세대들처럼 자식들 세대 또한 변함없이 줄기차게 이어질 게 불 보듯 뻔하다. 입으로야 ‘인생은 성적순이 아니잖아’하면서도 눈은 이미 딴 데로 돌리고 있으니 말이다.

요즘 이 정도의 추위는 추위라고 할 수도 없다. 코 밑에 솜털이 까매질 무렵인 고등학교 때는 정말로 매서웠다. 소 장사를 하시던 아버지 덕분에 나는 한겨울에는 솜을 두둑이 댄 아버지의 누비옷을 입었다. 워낙 체구가 크셨기에 내가 입으면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요즘 젊은이들이 입는 롱패딩 같은 거였다. 아마도 이맘때쯤으로 기억된다. 고3은 예비고사(지금의 수능)를 끝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빵집을 드나들었지만, 고2 때부터 이미 바짝 긴장됐다. 도시락을 두 개씩 싸 등교해서 밤 10시에나 수업이 끝났으니 말이다. 야간수업은 보통 추운 게 아니다. 교실 가운데 조개탄을 피웠지만, 난로 곁에 있는 사람 외에는 별 혜택도 없었다. 그때 소똥 냄새 밴 아버지의 누비 잠바인 롱패딩을 몸에 두르고 한기를 막았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려고 이 모양들인지 모르겠다. 일부 학교에서는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고 하지만, 거리에 나가 보면 십중팔구 젊은이들이 입고 다니는 옷이 ‘패딩(padding’ 점퍼, 바로 누비옷이다. 지난해에도 ‘등골 브레이커’라고 말썽을 피운 전력이 있는 놈이다. 물론 동계올림픽이 원인을 제공했다. 착한 가격이라고 내놓은 평창 롱패딩이 20만 원대라는데, 유명 연예인을 광고에 등장시킨 N 사가 두 배가 넘는 가격으로 내놓은 것이다. ‘비싸야 잘 팔린다’라는 얄팍한 상술도 적중했다. ‘유명 메이커 아니면 창피하다’는 청소년들 심리도 교묘하게 이용했다. 분명한 것은 이번 겨울 석 달이 지나면 또 사라져 버릴 유행이다. 배고파 감자탕 먹는 것도 아니고 진짜 등골 빼먹게 생겼다. 자랑 같지만, 우리 집은 안 그랬다. 큰딸도 청바지 두 벌로 대학 4년을 반듯하게 버텼다. 여하튼 학생을 둔 젊은 부모들 롱패딩 등쌀에 등골 빠지겠다.

기왕지사 말이 나온 김에 한 마디만 덧붙이고 끝맺겠다. 요즘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어른인지 애들인지 구분할 수 없다. 얼굴은 물론 손톱에서부터 입술과 눈 화장까지 요란하다. 막말로 학생인지 아줌마인지 도대체 모를 지경이다. 이런 얘기 했다고 고리타분하다면서 욕할 사람들도 많겠지만, 우리 학생 시절 그때의 여학생들 모습이 자랑스럽다. 단발머리에 흰색 깃의 교복을 단정하게 입고 가방을 들었던, 화장기 없이 깨끗했던 그때의 여학생들 얼굴이 새삼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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