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석 첫 시집 '이 길에 우리 있었네' 출판기념회 참관기

10월 첫날,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오산시문학회 박민순 사무국장은 회원이 시집을 냈는데, 좋은 기삿거리가 될 거라고 했다. 마침 연휴 기간이라서 카메라를 챙겨 박 국장의 아파트 앞으로 가서 만났다. 워낙 바지런한 성격이라서 주섬주섬 챙겨 차에 재는 준비물들이 꽤 많다. 행사장으로 가는 길에 정순희, 박연근 회원과 공란식 회장까지 합승시킨다.

비포장도로인 좁은 산길을 한참 따라가다가 어느 집 앞마당에 차를 세웠다. 가정집을 개조한 ‘류향’이라는 음식점이다. 방안에는 안병석, 신경애, 양길순, 조은주 회원과 재능시낭송협회 이경량 시낭송가, 바다문인협회 이정석 전, 회장 부부가 대기하고 있다. 회원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벽에 ‘오산사랑 글사랑 오산시문학회’라고 새겨진 현수막을 걸고, 그 밑에 스케치북에 유성 매직으로 그린 ‘안병석 첫 시집 출판기념회’라는 글자를 스카치테이프로 척척 붙였다. 박민순 사무국장의 진행으로 월례회의가 시작됐다. 공란식 회장의 인사말이 끝나자, 안병석 시인은 회원들에게 자신의 시집 한 권씩을 자필 사인까지 해 건네주었다. 모두 귀중한 보물이라도 받은 듯 눈을 반짝이며 시집을 살펴본다. 이경량 시낭송가가 시집을 들고 일어서더니 ‘58쪽을 낭송합니다’라면서 분위기를 잡았다.

한려수도 찰랑찰랑 물길을 따라 / 맴도는 해풍을 따라갔더니 / 어깨춤을 추는 섬 하나 있었네 (중략) 기다리는 사람 아무도 없고 / 기다려야 할 사람 기다리지 않아도 / 그 해 / 남으로 난 여름 길은 섬보다 좋았네. - 보길도 연서(戀書) 부분

시낭송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앉은 자리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면서 회원 모두가 1편씩 안병석 시인의 시집에 실린 시를 정성껏 낭송하고 서로 격려하듯 손뼉까지 쳐준다. 추석 연휴를 맞아 공란식 회장은 회원들에게 김 선물세트를, 안병석 시인에게는 만년필을 선물하면서 ‘좋은 글을 많이 쓰라’고 당부한다. 큰 연회장에서 많은 손님을 초대해 세력을 과시하는 출판기념회가 아닌 따스한 정이 소록소록 오가는 출판기념회였다. 식당에서 준비한 홍어찜의 톡 쏘는 맛처럼 코끝이 뭉클하다.

안병석 시인은 지난 4월, 오산시문학회에 신입 회원으로 가입해 적극적인 창작 활동과 인터넷 카페 활동으로 오산시문학회에 활력을 주고 있다. 특히 매월 정기모임마다 리포트 형식으로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 ‘유익한 순우리말 사전’, ‘국어 바로 쓰기’, ‘내가 읽은 좋은 시’ 등 자료를 챙겨와 나눠주는 열성파이다. 오산시문학회 외에도 한비문학회, 담쟁이문학회와 세 군데의 산악회 회원으로도 활동한다. 바쁜 와중에도 도서관에 들러서 매주 3권씩 책을 빌려다 보기도 하고, 휴일에는 산을 타거나 문학관을 방문했던 결과를 인터넷 카페에 사진까지 첨부해 부지런히 올려 회원들과 공유한다.

안병석 시인의 고향은 전남 화순이다. 젊은 시절에는 광주광역시 한미제과 영업부에서 20여 년간 근무했었다. 그때는 그야말로 영업으로 바빠 시집 한 권 읽어볼 짬이 없었다. 주근야독(낮 근무, 밤 공부)으로 자격증 여남은 개를 취득한 40대 후반이던 IMF 이후부터 아파트관리 업무로 직업을 바꾸었다. 우연한 기회에 경기도와 인연을 맺게 되어 현재는 평택시의 한 아파트에서 근무 중이다. 가정에서 두 남매에게 훈육할 때 “몸이 무너져도 가르칠 테니 공부 마친 후의 앞가림은 너희가 해라”라고 강조했단다. 등단 10년 만에 아들 안숭범 시인에 뒤질세라 아버지인 그도 시집을 냈다.

시집 첫 시의 제목이 <생이별>이다. 송아지를 팔기 위해 어미 소와 함께 우시장으로 나온 이야기다. 저녁나절 송아지는 새 주인에게로 가고 ‘물리다 만 젖이 뚝뚝 흘렀다> 는 어미 소와의 마지막 이별 장면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 영화처럼 구슬프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양념처럼 뿌려진 풍자와 해학에 절로 웃음이 나고, 곳곳에 도사린 번뜩이는 기지는 죽비로 목덜미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하다. 한 번 손에 잡으면 끝까지 단숨에 읽게 되는 참 재밌는 시집이다.

이제 와 보니 아버지의 머리숱을 다 삶아 먹고 등뼈를 다 고아 먹었는데도 이만큼밖에 자라지 못했습니다. (중략) 저를 닮은 아들 녀석을 보면서 아버지를 닮았을 저를 생각하는 오늘입니다. 종종 아버지를 뵈러 가면, 아버지 손에 들린 시집과 책을 통해 근황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부디 안병석 시인의 시편을, 또 다른 아버지의 자식들을 더 오래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작품 해설 <숨과 쉼을 거느린 언어의 집> 중에서

시집에 해설을 쓴 안숭범(한신대학교 콘텐츠학부) 교수는 안병석 시인의 아들로 아버지보다는 빠른 2005년 문학수첩 신인상으로 시인이 됐다. 전공인 영화에서는 2009년에는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최우수 신인평론상을 받은 유망한 영화평론가이다. 2012년 EBS ‘시네마천국’ MC와 영화제, 스토리텔링연구소 운영 등에도 참여했다. 2012년 천년의시작에서 출간했던 첫 시집 '티티카카의 석양' 이후, 이번에 문학수첩에서 나온 '무한으로 가는 순간들'은 아들의 두 번째 시집이다. 이 가을에 아버지와 아들의 시집 모두가 대박 나길 기대해본다.

 

이 길에 우리 있었네, 교우미디어, 126쪽, 7천원
무한으로 가는 순간들, 문학수첩, 144쪽, 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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