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은 빼앗긴 주권을 도로 찾은 국경일이다. 노랫말에도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고 했다. 해방둥이란 그때 이 땅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다. 둘로 갈라선 비극의 나라에서 어린 시절에 보냈고, 성년이 돼서는 서로 싸우는 것도 모자라 머나먼 섬의 나라에까지 가서 피를 봤던 분들이다. 아마도 역사상에서 살아남기에 가장 힘들었을 세대가 바로 그 해방둥이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분들이 벌써 우리나라 셈법으로 일흔넷 연세를 잡수시게 됐다. 아마도 산낙지 열댓 마리를 삼킨 황소보다도 더 질긴 목숨임이 틀림없다.

“광복절로 땅겨서 점심 먹기로 했는데~, 의견은 어떠우?”

박 시인이 ‘평화의 소녀상’까지 들이밀며 문자를 때리는 바람에 정신이 퍼뜩 났다. 다음 주 토요일이 큰 형님 생신인데 그냥 넘길 수는 없지 않으냐는 거다. 그 형은 필자가 ‘큰형님’으로 모시는 경찰서 정문 앞 꽃집 김선우 시인을 말함이다. 큰 형님은 광복 열흘 전인 음력 6월 28일 태생의 해방둥이시다. 생신날에는 가족이나 새마을 회원들하고만 식사하시기에 우리는 광복절에 맞춰 만세삼창이라도 한 번 하자는데 애국 하나로 살아온 인생이 거역할 수는 없는 요청이다.

그런 줄 까마득히 모르고 지지난 주에 옆지기에게 손가락까지 걸면서 모처럼 황금연휴 마지막 날만큼은 꼭 함께 있겠노라 다짐까지 했는데, 이번에도 여지없이 깨졌다. 다음 기회로 미루겠다며 문자메시지를 날렸다.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보나 마나 입술이 댓 발은 삐쭉 나왔을 거다. 아무래도 일흔셋이나 되는 큰형님 행사가 더 중요하지 우리야 살날이 창창하지 않으냐며 간신히 설득했지만, 가까운 사람과의 약속은 이 모양 요 꼴로 매양 어긋난다.

미안한 마음을 사과하는 의미에서 말복 날 저녁은 일찍 퇴근해 오랜만에 외식했다. 두 발이건 네 발이건 걸어 다니는 짐승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터라 물속을 떠다니는 바닷고기로 합의했다. 남자치고 낙지 싫어할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게다. 주문해놓고 필자는 신바람이 나서 산낙지어천가를 19금 살살 양념으로 뿌려가며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다.

낙지는 오뉴월에 지친 황소도 벌떡 일으켜 세운다는 것으로 시작해 바닷가에 매 놓은 소가 쭈그려 앉아 먼 산을 바라보며 되새김질할 때 낙지가 슬금슬금 다가와 소의 콧구멍 속에 긴 발을 집어넣어 끌고 갔다는 데까지 얘기했는데, 갑자기 옆지기가 징그러워 못 먹겠다며 기겁하며 뒤로 자빠진다. 주방장이 이미 육수가 다 준비됐다며 정중히 사정사정하는 바람에 연포탕으로 메뉴를 바꿔치기해 위기를 돌파했다. 낙지는 갯벌에 사는 산삼, 우러난 국물만 마셔도 절로 힘이 솟게 마련이라면서 주방장은 다리 하나를 썰어와 참기름 깨소금과 함께 내 앞에 슬쩍 내려놓으며 왼쪽 눈을 살짝 감았다가 뜬다. 그다음 시간이 흐른 뒤의 이야기는 지면 관계상 이하생략하고,

큰 형님이 대화할 때마다 강조하시는 ‘국유연후유신’은 국어사전이나 옥편을 뒤지지 않아도 좋은 말씀임이 틀림없을 그 요지를 이런 시로 쓰셨기에 공개하노니,

대한민국은 우리나라 국호요 / 국민의 삶의 터전이다 / 너와 나 할 것 없이 온 국민이 / 이 나라를 가꿔나가며 / 지켜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 우리는 자손 대대로 이 땅 위에서 / 자유와 행복을 누리며 살려면 / 나 자신보다 나라를 먼저 / 생각해야 한다 / 이 나라가 없으면 나 자신도 / 없기 때문이다 / 국유연후유신 / 국민을 대표해서 나라를 이끌어가는 / 지도자들은 더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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