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기야! 니가 모쟁이 좀 해야 쓰겄다.”

중학교에 진학했던 이맘때쯤인 5월이었다. 양수 아저씨가 술병으로 일어나지 못한 모양이다. 어머님께서 가막골 논으로 어서 가보라면서 내 등을 떠미신다. 우리 집 논은 산비탈에 있는 하늘바라기라서 다른 집에 비해 늦은 망종 무렵에야 마냥모로 냈었다. 그해는 웬일인지 때맞춰 비가 내려 일찌감치 단오 전에 모내기했다.

6학년 때에도 그랬는데 중학생인데 체통이 영 서질 않는 사건이 연달아 터진다. 이미 동생들에게 개구리와 햇보리를 구워주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한 터였다. 사연인즉슨, 단옷날 씨름대회로 아버님께서는 체력단련 때문에 논에 나가 힘을 뺄 처지가 아니시란다. 실력 발휘 좀 하겠다고 정성을 다해 만든 개구리 잡는 총을 아쉽지만, 둘째에게 건네주면서 사용방법까지도 꼼꼼하게 알려줬다. 어머님께 발각되면 혼쭐날 일이지만, 대나무 통의 날카로운 철사를 당겨줄 긴 고무줄이 없어 아버님 팬츠에 끼워진 것을 몰래 빼서 만든 총이다.

보릿고개가 있던 배고픈 시절이었다. 우리가 논에 따라갈 때면 아버님께서 큰 나무 그늘 밑에 풀을 널따랗게 베어내시고 ‘뱀 나오니까 멀리 가지 말고 예서 놀아라’ 하시며 자리를 마련해 주셨다. 바로 그 앞 보리밭에는 군침이 절로 도는 먹을거리가 잘 여물고 있었다. 쉴 참에 아버지는 삭정이를 주워 모닥불을 지펴 풋보리를 구워주셨다. 살짝 그을린 풋보리를 손바닥으로 살살 비비고 호호 불어서 입에 털어 넣는 그 맛이란 꿀보다도 더 달고 고소했다. 거기에 개구리 뒷다리까지 구워 먹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였다.

이른 아침부터 일꾼들은 네모반듯한 모판에서 허리를 기역 자로 구부리고 모를 찐다. 근재 아저씨가 황소를 몰며 써레질하다가 필자가 오는 것을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어 주셨다. 까만 스타킹을 종아리에서 허벅지까지 올리고 질퍽한 논에 들어갔다. 아직도 물은 차갑다. 우리 집 논에는 유난히 거머리가 많았다. 스타킹까지 뚫고 빨판을 들이대는 지독한 찰거머리들이다. 행전이 없으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거머리에게 헌혈해야 한다.

필자가 맡았던 모쟁이라는 게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일꾼들이 쪄놓은 모춤을 들고 들쑥날쑥한 논배미에 듬성듬성 던져놓는 것부터 잡다한 일은 모두 모쟁이의 몫이다. 드디어 일꾼들이 한 줄로 늘어서서 ‘줄! 어여차!’하며 구령에 맞춰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하며 모를 심었다. 별로 잘한 것도 없는데, 어머니께서 새참을 내오시자, 일꾼들은 있는 아양은 다 떨면서 필자를 칭찬하느라 입가에 게거품을 물었다. 어머니도 대단히 흡족하셨던 모양이다.

“그람요, 울 큰애는 지아비 닮아 무척 야물지요.”

5월이면 아버님 몸을 만드시는 어머니의 정성은 지극했다. 아침마다 빈속에 익모초즙 한 대접을 들게 하시고 점심때는 뒤란에서 제멋대로 자라는 부추를 쓱쓱 베어 가마솥 솥뚜껑을 뒤로 엎어 부침개를 부치셨다. 아버님은 막걸리 한 주전자와 부추전 서너 판을 뚝딱 잡수시고는 고봉밥 한 그릇까지 말끔하게 비우셨다. 그게 끝이 아니다. 누룽지 국물 한 사발로 마지막 입가심하신 후 대청에서 세상이야 어떻게 돌아가건 말건 한잠 주무셨다.

으라차차! 아버님 목소리가 크게 들리는 여름이 성큼 다가섰다. 만약에 아버님께서 지금까지 살아계셨더라면…. 큰 다리 밑에서 발목에 타이어를 차고 뛰시거나, 느티나무 가지에 매단 고무 튜브를 끌어당기시며 연습하셨을 거다. 씨름판에서 업어치기 한판으로 시원시원하게 끝장내시던 아버님 모습이 정말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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