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 다시는 안 한다.”
“내가 뭐랬어. 하지 마라니까.”

적은 돈으로 스트레스를 날리려고 인형 뽑기를 한다는 말은 말도 안 된다. 별 쓸모도 없을 인형에 왜 집착하는지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파트 분리수거장에 버려지는 인형들도 수두룩하다. 꼭 필요하다면 그것으로 재활용하면 된다. 인형 뽑기 가게 앞에서 지켜보면 인형을 뽑는 사람들보다는 돈만 먹히고 씁쓸한 표정으로 뒤돌아서는 사람들이 더 많이 보인다. 한마디로 돈 먹는 하마일 뿐이다. 젊은이들이 특히 청소년들이 득도 되지 않을 것으로 사행심에 눈멀어 중독으로 이어질 것 같아 걱정스럽다. 예전처럼 돈 안 들이고 즐길 놀이문화는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인형 뽑기 기계가 거리마다 골목마다 우후죽순처럼 늘어났다. 기계도 저렴하고 무인시스템이라 관리를 안 해도 현금이 들어오니 자영업자들이 너도나도 설치하려고 한다. 온종일 장사해도 가겟세와 아르바이트비 주고 나면 남는 게 없으니 그럴 만도 하다. 얼마 전 인형 뽑기 달인이라는 사람이 나와 온갖 기술로 뽑는 장면도 방송을 탔다. 그처럼 방송 한 번만 타면 여기저기서 그와 유사하게 흉내를 낸다. 또 어떤 이가 2시간 만에 인형뽑기 기계 5개를 싹쓸이해 경찰이 조사했는데 절도나 편법이 아니라서 난감해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런데, 인형 뽑기 기계는 30번에 한 번쯤 뽑힐 둥 말 둥 하게 조작됐단다. 30번이면 3만 원이다. 그 돈이면 영화나 연극은 물론 괜찮은 뮤지컬도 관람할 수 있고 책을 산다면 한 다발이다.

“장미 대선?”
“들판 좀 봐, 뭔 짓거리들이야.”

인형 뽑기 기계 옆 평상에서는 방금 들판에서 돌아오신 어르신들이 한 상 푸짐하게 챙겨놓고(열무김치 1첩에 막걸리 서너 병) 내뱉는 푸념이다. 한창 바쁜 농번기에 대통령 뽑는 데 신경 쓸 여력이 없다. 예전처럼 농사일 다 끝낸 겨울철이었더라면 유세장에 당연히 나가셨을 어르신들이다. 젊은이들이야 인터넷 등을 통해 후보자들을 알아볼 수 있지만, 어르신들은 그래도 유세장을 나가보는 게 도리라고 생각하며 하시는 말씀이다. 일반인들이야 날씨 좋고 꽃 피는 계절에 노는 날 많아서 좋겠지만. 농사짓는 농부들은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허리가 빠개질 듯 아픈 데 뭔 난리냐는 말씀이다.

대통령도 교도소로 들어가 사는 마당이다. 얼마 전에 가까스로 건져 올렸지만 3년이나 끌었던 세월호에 심신은 지칠 대로 지쳤다. 이젠 누구도 믿을 사람은 없다는 생각도 사람들 가슴속마다 깊게 뿌리내렸다. 그러니 이번 대선에 누가 대통령이 되건 별로 뽑을 맘이 내키지 않는다는 말이다. 길지 않은 역사에 존경을 받는 대통령이 한 번 뽑아내지 못한 대한민국이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좌파, 우파, 북풍, 안보라는 단어는 이젠 지긋지긋해 신물이 난다. 이번 장미 대선에 크게 관심이 없어진 것은 어르신들뿐만이 아니다. 젊은 층은 더 관심조차 없다.

다들 난 체하지만 그렇게 잘나 보이지도 믿어지지도 않는다. 이미 큰일 날 뻔했던 상황이야 수차례 겪어 무덤덤해졌다. 인형 뽑기 기계 속에 누워 있는 인형처럼 보이는 쓸데없을 후보들은 또 무엇인가. 물론 제 돈 들여 나왔다지만 15명이나 대통령 하겠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열 걸음 이상 길게 도배된 담벼락에는 생판 듣도 보도 못했던 얼굴도 보인다. 대통령도 만만한 세상이다.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화가 없는 정치판을 보면 대한민국의 앞날도 뻔하다. 지긋지긋하고 암담해서 말 같지도 않은 말이 절로 나와 한숨만 나온다. 먹고살기도 바쁜 우리가 광장으로 나갈 일은 제발 없어야 하겠다. 인형 뽑기에서처럼 쓴 입맛 다실 일도 없어야겠다. 30번쯤 이리저리 살펴본 다음에 조심조심 뽑자. 이번만큼은 뽑기 인형처럼 분리수거장에 내버릴 대통령은 절대로 뽑지 말아야 한다.

저작권자 © 일간경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