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가 만우절이었다. 거짓말이 거짓말 낳고 또 낳기를 거듭 되풀이하면 참말도 거짓말로 믿지 않게 된다. 짐승과 사람이 다른 점은 거짓말을 하느냐 못하느냐 있다. 사람도 짐승도 아닌 이상야릇한 족속들은 제 몸뚱이 보신이라면 거짓말쯤이야 밥 먹듯 하고 말 바꾸는 데도 이골난 선수가 된다. 특히나 나라를 이끌어가야 할 중차대한 자리에 앉은 자들이 마치 누가 거짓말을 더 잘하느냐로 겨루기하는 듯하다. 필자도 한때 그런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허우적거리다가 간신히 빠져나왔다. 그 이후 찬밥신세가 됐지만, 뱃속은 아주 편하다. 찬밥을 먹는 한식이 됐다. 아버님 산소에 다녀올 일정을 맞추려고 어머님께 먼저 전화했다.

 “어머니! 접니다.” / “누구냐?” / “큰아들.” / “너희는 어쩜 목소리까지 그리 똑같냐!”

까만 똥 사건을 얘기하니 ‘큰애구나’하시며 알아채신다. 필자가 어린 시절 춘궁기에 어머님께서는 멥쌀 쑥버무리를 잔뜩 해서 소쿠리에 담아놓으시고 밭일을 나가셨다. 우리 형제들은 온종일 그걸 집어먹고 남새밭에 푸짐하게 똥을 쌌었다. 필자 대신 장남 노릇까지 도맡아 어머님을 모시는 둘째도 명퇴 이후 곧바로 중소기업에 입사해 예전처럼 평일에 시간을 내기가 어렵게 됐단다. 옥천을 지나 금산 선산까지 다녀오자면 휴일에는 고속도로 정체가 심해 오가는 데 시간을 너무 허비한다. 무엇보다도 아버님 산소에 가는 날이면 분명히 연로하신 어머님께서 앞장서실 게 뻔해 차멀미로 고생하실까 걱정이 됐다.

한식은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청명 다음날인 4월 5일 식목일과 겹친 날이다. 설날, 추석 등 다른 명절은 모두 음력으로 따지는데 유독 한식날만은 양력 4월 5일 혹은 6일이다. 한식날은 손이 없는 날이라고 해서 겨우내 얼었다가 녹아내린 산소에 황토를 뿌리거나 떼를 입히며 봉분을 다듬고 돌본다. 생활환경이 변하면서 아버님 세대처럼 조상들을 지극정성으로 모시지도 않고 쉽게 그 큰 은덕을 잊고 사는 게 안타깝다. 어느덧 필자도 아버님 나이를 훌쩍 넘어 환갑까지 넘겼다. 마음이야 아직은 이팔청춘이지만 두 딸과 조카들이 성장하는 것을 보면 늙어도 많이 늙었다. 굳이 옛 고사를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추운 겨울이 지나고 모처럼 들과 산으로 나서면 피부에 와 닿는 바람의 느낌이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이른 봄에는 날까지 건조해 불조심까지 염려했던 조상들의 지혜에 그저 감탄할 따름이다.

엊그제부터 어머니께서는 분주히 논두렁에서 어린 쑥을 뜯어와 찹쌀가루와 섞어 시루에 켜켜이 안쳐 쑥떡까지 만들어 베란다에 이미 식혀두셨다. 필자가 어렸던 시절에는 요새처럼 쌀이 흔하지 않아 4월에서 5월 초순까지는 멥쌀로 쑥버무리를 해서 주린 배를 채우기도 했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맛은 괜찮은데 똥이 새까맣게 나오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한방에서도 쑥은 속을 덥게 해 혈액순환이 잘되게 하고 양기를 보충하며 냉과 습을 없앤다 하여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좋은 흔했지만 귀한 약재였다. 오죽하면 단군신화에도 삼칠일(21일) 동안 굴속에 들어가 쑥과 마늘만 먹은 곰이 사람으로 환생했겠는가. 그래서 그런지 필자는 건강 하나만큼은 또래들과 비교하면 월등한 편이다.

옥천나들목을 빠져나와 일반도로를 탔다. 마침 육영수 여사 생가 앞을 지나치려는 찰나, 어머니께서는 잠시 들렀다가 가잔다. 그 딸이 대통령이 되긴 했는데 임기를 1년 남기고 탄핵당했다. 급기야 삼칠일만인 지난 3월 31일 새벽 3시 3분에는 수인번호 503번을 왼쪽 가슴에 달고 서울구치소 독방으로 거처를 옮겼다. 정에 약한 게 우리네 공통점이다. 악어의 눈물에도 함께 슬퍼할 정도로 정 많은 우리네가 아니던가. 부모가 돼 자식을 키워 봐야 부모 마음 알게 된다는 옛말은 한 글자도 틀린 데가 없다. 막내가 재촉하는 바람에 어머님께서는 몇 번이나 뒤돌아보며 차에 오르셨다. 거짓말은 이처럼 언젠가는 밝혀지게 마련이다. 모르쇠로 일관하며 상관없음을 주장한다면 너무 뻔뻔하다. 매정하다고 서러워하지도 말일이다. 설령 하늘과 땅, 쥐도 새도 모르게 감추어도 양심의 소리는 낮은 데서부터 듣는 법, 가슴에 붙여진 503번에 손을 얹고 5분만 아니 3초 만이라도…. 황공하옵니다만 304 영혼을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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