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님처럼 쌍꺼풀 선이 두터운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다. 외탁으로 쌍꺼풀이 없던 여동생은 ‘순대’라는 말만 해도 묘하게도 얄팍하게나마 쌍꺼풀이 잡혔다. 필자야 그야말로 귀한 아들이라서 아버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잘 얻어먹지만, 여동생은 ‘계집애가 시장통을 쏘다니면 안 된다’는 엄명이 떨어진 후 외톨이가 됐다. 

“자야! 순대 가져왔어.” 
“수∼운대!” 

골목길에서 또래들과 공기놀이를 하던 여동생은 순대라는 말에 공깃돌을 휙 팽개치고 쏜살같이 내게로 달려왔다. 우시장에서 어른들 술좌석 틈에 끼어 있다가 흥정하신다며 다들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 틈에 비닐봉지에 순대를 싸 양쪽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소장이 파한 후 집으로 오신 아버님은 아랫목에서 소 판 돈뭉치를 목침처럼 머리에 베고 이내 천장이 들썩거리도록 코를 골며 주무셨다. 막걸리를 얼마나 많이 드셨는지 온 방 안에 누룩 뜨는 냄새가 진동한다. 애먼 사람까지 술에 취한 듯 얼굴이 벌게졌다. 봄나물을 캐신다며 동네 아주머니들과 어머님께서 들판으로 나가셨기 망정이지 한바탕 난리가 날 뻔했다. 

신문지를 마룻바닥에 깔고 비닐에 담긴 순대를 소복하게 쏟았다. 장독대로 굵은 소금을 푸러 간 사이 여동생은 벌써 순대를 입에 넣고 오물거린다. 눈을 아래위로 뜨면서 연신 쌍꺼풀도 깊게 만들었다. 요즘에야 너나없이 수술해 오히려 쌍꺼풀 없는 사람이 이상하게 보이지만, 그때만 해도 쌍꺼풀은 배고프고 불쌍한 사람들에게만 생기는 줄로만 알았다. 왜냐하면 ‘순대’만 가져오면 동생의 눈에 쌍꺼풀이 확 지는 거로 그렇게 짐작했다. 

아버님은 큰 냇가 아래의 텃밭을 높게 돋우어 새집을 지으셨다. 첫해는 몰랐는데, 이태째부터 우리 집은 우거진 풀밭으로 변했다. 땅속으로 묻혔던 잡초의 씨앗들이 죽기 살기로 밀고 올라왔다. 아무리 열심히 뽑아도 잡초들을 이길 수가 없었다. 풀이 많으니 개구리도 많고, 개구리를 먹으려고 뱀까지 득실거렸다. 아버님께서는 뱀을 잡는 기발한 방편으로 돼지우리를 사방 경계에 지으셨다. 희한하게도 뱀들은 스스로 돼지우리 속으로 기어들어 갔고, 돼지가 그 뱀들이 오는 족족 맛있게 씹어 삼켰다. 

우리 집 돼지는 다른 집보다는 시세를 높게 쳤다. 독사를 삼킨 돼지라서 보양에 좋기도 했고, 워낙 넓은 텃밭에서 제멋대로 돌아다니니 육질까지 좋은 건 당연했다. 더 중요한 이유가 또 있었다. 새끼 때부터 불알을 까서 지린내도 전혀 안 난다고 푸줏간에서 인정했다. 필자도 돼지 불알을 깔 때 아버님을 도와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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