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질퍽한 똥 밟는 꿈을 꾼 탓인지 어머니께서 용돈까지 주신다. 속속곳 비밀 주머니에서 세 번 접은 신사임당 초상화를 내게 건네시며 ‘그 나이에 뭐 돈벌이나 되겠냐’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신다. 혹시라도 동생들이 알면 큰일 난다는 뜻인지 주름 깊은 왼쪽 눈까지 찡긋하시며 ‘어서, 다녀오라’하신다. 말이야 바른말이지만 돈도 제대로 안 되는 일에 죽을 둥 살 둥 매달리면서 바쁜 체는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럽게 살았다. 사방천지가 기삿거리고 보이는 게 모두 다 글감 아니던가. 부지런히 낚아채야 싱싱한 글이 된다. 물 뜨러 간다는 핑계로 슬그머니 빠져나오긴 했지만, 왠지 찝찝한 마음 금할 길 없다.

이른 새벽, 경기도청사를 가로질러 약수터로 가는 길이다. 심하게 다투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발걸음도 빨라졌다. 마스크로 입을 가린 사람들 대여섯이 좁은 길을 막으며 양팔을 힘차게 휘저으며 내려온다. 대판 붙었구나 싶어 길을 가로막고 ‘쌈 났어요?’라고 물으니, 대꾸도 하지 않고 손사래를 치면서 휭하니 스쳐 지나간다. 예전 아버님 세대에는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고 했다지만, 누구나(특별한 분도 이따금 나올 수도 있다. 그분들은 당연히 제외) 제 입에 넣기도 바쁜 요즘 같은 세상에 남 걱정까지 하면 오히려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한다. 이른 새벽부터 예사롭지 않은 소리의 진원지가 점점 가까워진다.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다.

“허수아빌 세워놔도 그만큼은 하겠다.”

이어서 앙칼진 여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녀는 자괴감이 심하게 들었던 모양이다. ‘잘 줘야 받지, 까긴 왜 까요’라면서 말대꾸가 예사롭지 않더니, ‘받아라! 콕!’하면서 무엇인가 제대로 때린 듯하다. 수돗물 끓여 먹자는데 고집부리며 물 뜨러 다니다가 드디어 ‘특종’을 건졌구나. 앗! 그런데 카메라가 집에 있다. 꿩 대신 닭이라고 스마트폰을 열고 촬영 기능으로 잽싸게 바꿨다. 요란하게 쌍방울을 울리면서 현장으로 뛰었다. ‘배드민턴 수호대’라는 간판이 걸린 팔달산 중턱의 공중화장실 바로 아래다. 아뿔싸! 상황은 완전 딴판으로 역전됐다. 나이가 한참 들어 뵈는 노인네가 헉헉대며 이리저리 날뛰면서 비지땀을 쏟고 있다. 

배드민턴은 잘 아시겠지만, 다른 구기 종목과 다른 점이 많다. 기구의 가격도 저렴한 편이고, 좁은 공간에서도 땅바닥에 줄만 찍 긋고도 함께 치고받을 상대만 있다면 화기애애하게 즐길 수 있다. 골프, 테니스, 탁구 등 여타 운동 종목의 좋은 점만 쏙 빼냈으니 재미가 없다면 책임지겠다. 숨쉬기운동만 가능하면 누구라도 재미나게 즐길 수 있다. 국민건강 운동으로 강력히 추천하는 바이다.

준비물도 테니스 라켓보다는 상당히 가벼운 채와 ‘셔틀콕’이라 부르는 공은 무게도 4~5g 정도로 가벼울 뿐만 아니라 15개 내외의 오리 깃털까지 박혀 있다. 하늘을 날지 못하는 오리의 한을 풀어주기라도 하는 듯 이리저리 잘도 날아다닌다. 갑자기 오리 얘기가 나오니 왜 땅속에 묻히는 줄도 몰랐을 오리와 닭들의 영혼에는 미안스럽다. 그러나 한편으로 끈질긴 생명력으로 정권에 기생충처럼 빌붙은 탐관오리들 머리통이라고 생각하면서 치면 된다.

영어로 ‘AI’는 인공지능이면서 요즘 유행하는 조류인플루엔자이기도 하다. 끝없는 의혹이 불거져 나오는데도 인공지능을 돌려가며 살살 피하는 P와 S 그리고 그 패거리들. 불 보듯 뻔해도 오히려 검사에게 ‘왜 그걸 내게 묻죠?’라면서 S가 반문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하기야 그렇게 외쳐댔는데도 ‘4·16이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긴가민가하다는 이도 있으니 말해야 입만 아프다. 1000일을 넘기면서 고삐를 당겨 그들의 목덜미를 바짝 죌 일이다. 그리하여 국정을 쥐락펴락하며 관록이 붙었던 닭보다는 머리 회전이 빠른 ‘S’가 혈관이 확장돼 이렇게 불었으면 좋겠다.

“이천십사, 물 팔팔 뎁히라.”

새벽에 이런 투의 일화 한 토막을 재미 삼아 노모께 했더니, 팔달산이 무너질 듯 쩌렁쩌렁하게 호통이 메아리로 되돌아온다. 

“당장 내려온나, 갑갑해 내가 올라가야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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