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팔자 짚는대서 허튼소리로 하는 말이 아니야. 함부로 천기누설 못 한다는 것쯤은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 일이잖아. 괜히 욕본 사람 한둘도 아니고, 자네한테만 슬쩍 얘기해 주는 것이여. 누구나 다 자신은 불쌍하다고 생각되는 것이지. 아직 때가 못 미친 것이니 낙심하지 마. 딴전 피우지 말고 진득하게 낚시하듯 세월이나 낚아. 쥐뿔도 모르면서 말만 많은 것들이 날뛰는 세상이여. 입은 모든 복락이 드나드는 곳이니 입맛이 당기면 무엇이든 가릴 것 없이 삼켜 봐. 잘 먹으면 똥이라도 굵어질 것 아니겠어. 무슨 억하심정이냐 그러하겠지만, 천복 중에 식복은 으뜸인 것이여. 귀신 중에 제일 불쌍한 놈이 빌어먹는 걸신이여. 그런고로 먹으려고 살건 살려고 먹건 그게 무슨 체면 문제이겠어. 요즘 당최 되는 일이 없고 자꾸 일은 틀어지잖아. 알력이야 사람끼리 살다 보면 절로 생기는 즐거운 비명이지. 오지랖 넓혀서 좋을 것도 없는 것이여. 허발나게 싸다닌다고 안 되는 게 술술 풀릴 것 같아? 사람마다 천운이란 게 있어. 내 말 허투루 듣지 말고 잘 새겨들어. 이퉁 부리다가 큰코다치고 나중에 원망하지 마. 생각은 깊어지면 이문이지만 몸뚱이는 함부로 잘못 굴리다 보면 어디쯤 요절나기 다반사여. 답답하고 속 타는 심정 왜 모르겠어. 처방이 따로 있을 수도 없잖아. 아직은 때가 아니야. 괜히 젖비린내도 안 가신 녀석들이 중뿔나게 간섭한다고 덩달아 드잡이하면 누굴 욕가마리 라고 하겠어. 복채나 챙겨 먹고 사는 꼴에 별의별 흰소리 친다고 생각 들겠지만, 이때껏 가욋돈 한번 달란 적이 없는 나여. 때맞춰 오긴 잘 왔어. 액막이하는 방편이 왜 없겠어. 내 말 어깃장 놓고 낭패 본 사람 많어. 사설 길어봤자 정신만 사납지 뭐. 톡 까놓고 한마디로 자네 같은 숙맥들이 부지기수로 널려 있는 태평연월에 그래도 앞뒤 콱콱 막힌 사이비 족속들보단 씨알이 먹히니까 다행이여. 자넨 알만큼 배웠잖아. 꼴같잖은 화려했던 추억일랑 빨리 떼버려. 꽃피던 봄날이야 누군들 그립지 않겠어. 지금은 아쉬운 것 훌훌 벗어 던지고 단단히 아퀴를 짓는 것이 중요해. 본디 놓친 고기는 커 뵈지만, 물이 깊어지면 자연히 되돌아오게 마련인 것이여. 자리 틀고 느긋하게 기다려 봐. 오히려 잘된 것이여. 복불복이잖아. 걱정 놔. 이 기회에 차라리 살림망 뒤집어엎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 속 후련하잖아. 단도직입으로 말해서 늦복은 엄청나게 쌓여 있구먼. 눈곱만큼만 얹혀 줘도 육갑까지 틀 묘수가 있는 나여. 억지다짐 놓는 것이 절대 아녀. 내키지 않으면 관둬. 세상 사는 이치가 음덕을 베푼 만큼 재산도 쌓이는 것이고, 재물이야 하늘만이 베풀 수 있는 사람의 일은 아니니까. 거북하면 무시해도 괜찮아. 그깟 땡전 몇 푼 챙기자고 입에 발린 소리는 안 해. 다 하늘 뜻이라서 저절로 나오는 소리란 말이여….」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필자가 발표했던 졸시 일부분이다. 세상살이는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름없어 그리 녹록하지 않다. 사회는 혼란스럽고 가진 자와 없는 자의 양극화는 더욱 심해졌다. 자신이 맘과 뜻대로 세상이 술술 풀린다면 무슨 걱정거리가 생기겠는가. 있으면 더 가지고 싶고 없으니 있는 자 밑에서 육체와 정신까지 헌납해 몇 푼의 생활비를 챙기는 게 사람의 보편적 일상사다. 필자도 이러저러한 사유로 시 쓰기에 전념하진 못했지만, 그렇다고 시에서 멀어진 것은 아니었다.

10여 년 전, 모교에서 문학지망생을 상대로 5년간 문예 창작 강의도 했고, 강원도에 살 때는 고향인 오산시에서 개설한 ‘어르신 자서전 쓰기’ 강좌도 맡아 원거리를 오간 적도 있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은 힘도 덜 들고 금전적 대가에 상관없이 마음이 상쾌해진다. 지금도 가끔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길을 걸을 때 ‘선생님!’ 하며 반갑게 달려와 손을 잡는 나이 많은 제자들을 볼 때면 세월의 무상함도 새삼 느끼게 된다.

정유년 새해가 어김없이 다가왔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내게 채울 욕심을 조금씩만 덜어내고 주변을 돌아볼 작정이다. 누구나 바쁘겠지만 가진 재능을 남에게 전달해주는 것만큼 값진 봉사는 없다. 세상이 혼탁하고 어지러울수록 서로 배려하는 삶이 요구된다. 새로 얻은 큼직한 달력을 책상 앞 벽에 걸면서 올 한 해도 일정이 빽빽하게 잡히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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