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인데 겨울비가 제법 많이 내렸다. 12월 중 강수량으로는 역대 3위 기록이란다. 비 온 뒤 저녁나절부터는 춥다 싶었는데 그저께 밤에는 눈으로 뒤바뀌었다. 날씨마저 묘하다. 퇴근길에 때아닌 우산까지 펴들고 발바닥에 있는 힘을 잔뜩 주며 조심스레 길을 걸었다. 녹아내린 눈이 추위로 빙판길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쯤이면 편집도 마감했을 것 같아 선배 기자에게 전화했다.

걱정이라면 남북통일 밖에 없는 필자와는 딴판으로 선배는 세상만사 모두 꿰찬 팔방미인이다. 공회전이 계속되는 먹통 청문회 땜에 신경깨나 곤두섰을 성싶었다. 때마침 지갑 속에 신사임당 할머니 두 분이 얌전히 계신다. 지난주에는 빈대떡을 공짜로 얻어먹었다. 비 오는 날에는 역시 부침개가 제격이다. 우리가 가끔 들렸던 통닭거리 전집에서 오늘은 한턱내겠다고 했더니 신문사 회식하는 날이란다.

이래저래 오늘도 혼밥에 혼술이다. 하기야 대통령도 혼밥하는 시대가 아니던가. 꼬리 치며 반겨줄 진돗개 한 마리도 없는 쓸쓸한 현관 앞, 누르는 비밀번호의 낭랑한 기계음이 끝나자 ‘철컥’하며 문이 열린다. 예전처럼 문이 부서지라 두드리거나 온 동네가 떠나갈 듯 ‘이리 오너라!’ 외치지 않아도 이처럼 문이 자동으로 열리는 편리한 세상이 됐다.

어깨에 둘러멨던 노트북이 담긴 무거운 배낭을 벗어 책상 위에 올려놓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우리 집 냉장고에는 미안한 맘이 한둘이 아니다. 필자가 고집스럽게 일주일에 두 번씩 팔달산 중턱에서 받아오는 약수를 꺼내 마실 때 빼고는 별로 가까이할 기회가 없다. 바깥에서 주로 밥을 해결하는 직업이다 보니 집안 살림에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때로는 무관심이 쾌재를 부를 때도 있다. 냉장고를 들여다보다가 이참에 버릴 것은 버리고 먹을 만한 것만 챙기려 했는데, 뜻밖에도 부침개로 쓸 만한 재료들이 수북하다. 언제 사다 놓았는지 신문지에 돌돌 말린 부추도 끄트머리가 누렇게 떠서 빨리 잡수쇼 애원하는 듯하다. 부추에 대한 추억은 예전에 썼을 듯싶다. 동생이 아파트로 이사한 후 난간에 화초 대신 부추를 키우셨던 알뜰살뜰한 어머님 생각이 절로 나는 익숙한 놈이다.

옳거니! 오늘은 부추전이다. 우선 아래층 마트에서 메밀가루를 사 왔다. 오늘처럼 우울한 날은 걸걸한 막걸리가 제격이다. 냉동실에는 새우, 물오징어와 영양 만점 굴까지 꽁꽁 얼어있어 일단은 해동시켰다. 묵은 조선간장에 깨소금을 조금 넣고 양념간장부터 만들었다. 불판에 번철을 올려놓고 포도씨유를 동그랗게 둘렸다. 마치 양철지붕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내며 뜨겁게 달궈진다.

모든 국민이 원하고 바라는바, 오직 하나일진대 결과론은 둘로 갈라선 분단된 남북의 짝퉁처럼 팽팽하게 대치 중이다. 알짜배기가 쏙 빠져 맹탕이 된 박·순실 게이트, 빈대떡 뒤집듯 쉽지 않다. 믿어 의심치 않아야 마땅한데 이해 못 할 의문투성이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국회청문회, 특검, 헌재에서는 보란 듯이 본때를 보일 절호의 기회다.

생고생하는 그대들, 엄지 척, ‘참 잘했어요·.·’라는 덕담이 세밑에 즈음하여 쏟아지길 진심으로 빌어 마지않는 바이다. 

찌꺼기가 바닥에 가라앉은 맨 마지막 막걸리 한 잔과 테두리가 새까맣게 탄 빈대떡 한 점이 남았다.

아깝지만 ‘아니다, 모른다’며 오리발과 기억상실증에 걸린 간 큰, 큰 도둑들의 뻔뻔한 얼굴을 향해 미워서 다시 한번 고수레!

저작권자 © 일간경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