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일상을 일순에 멈추게한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100일이 다가왔다.

그간 많은 일이 있었다.

단 한명의 소중한 목숨이라도 더 구할 수 있었던 금쪽같은 시간들을 정부의 총체적 무능과 혼란 와중에서 허송하고 온 국민이 망연자실, 끝없는 비탄의 나락에 빠져든게 엊그제처럼 생생하다.

절대 바다에 떠있어서는 안 되는 배가 복마전과 같은 부정과 유착의 그물망 구조 위에서 버젓이 위험항로를 오가고, 감독당국이나 구조당국이나 가릴 것 없이 누구도 제자리에서 제역할을 하지않고 있었다는 우리의 처참한 현실도 고개를 떨구게 했다.

대통령이 눈물의 사과를 하고 국가개조, 국가혁신을 수차 다짐했지만 총리후보자가 연이어 낙마하고 사의를 밝혔던 총리가 다시 자리에 앉는 어지러운 인사파문 와중에 정작 세월호가 우리사회에 남긴 무거운 과제는 첫장도 펼치지못한 채 고스란히 남아있다.

봄에 피는 선연한 개나리색으로 온 나라와 국민 가슴에 휘날리던 노란리본도 지금은 장맛비에 젖어든 채 그간 속절없이 흘러온 시간을 보여준다.

그러나 지난 18일 조리사 이모씨의 시신이 수습된 것을 마지막으로 바닷속에는 아직 돌아오지 못한 10명의 실종자가 여전히 가족들을 애끓게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언제까지나 세월호 충격 속에 주저앉아 있을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당연히 새출발해야 하고 당연히 세월호 사고의 문제점들을 뿌리째 들어내 안전한 나라를 만들어나가는 데 국력과 국민의 마음을 모아나가야 한다.

그러나 참사 100일을 맞는 지금 우리는 점점 흐려져가는 사고 당시의 기억과 함께 사고를 되풀이하지않겠다는 각오와 과제마저 잊고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원내지도부 회동 석상에서도 합의됐던 세월호 특별법조차 정치권 기싸움으로 아직 접점을 찾지못하고 있는 모습은 개탄스러울 정도다.

여야를 막론하고 눈앞의 작은 계산에만 빠져있는 모습을 보면 정치권이, 나아가 이른바 사회지도층이 세월호 사태를 계기로 수면위로 드러난 성난 민심의 무게를 아직도 깨닫지못하고 있는 듯하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과 구조, 수습과정을 지켜보면서 국민은 우리 사회의 모습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됐다. 압축성장 과정에서 켜켜이 쌓여온 사회구조의 왜곡과 부조리를 지켜보면서도 울분을 삭혀온 가슴 깊숙한 곳의 응어리를 스스로 들여다보게 됐다는 뜻이다.

이 점을 정치권은 잊어서는 안된다.

국가쇄신 작업은 그래서 단순히 참사에 따른 통과의례가 아니라 민심의 바다가 모든 것을 삼키는 폭풍으로 바뀌기 전에 상황을 바로잡을 유일한 방안이고, 유일한 기회일 것이다.

그 골든타임이 지금 세월호 참사 초기대응 당시처럼 가차없이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세월호 진상조사기구를 어떻게 구성하고, 의결은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 수사권을 부여할지 말지의 문제가 여야가 서로 책임을 상대방에게 떠밀며 비난전만을 펼 정도로 타결짓기 불가능한 사안인가.

가라앉는 배위에서 협상을 한다해도 그렇게 정략을 내세울 것인가. 국민의 입장에서 여야 공방은 세월호가 우리사회에 던진 과제의 의미와 무게를 간과한 채 작은 정략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우리 정치권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자화상이나 다름없다.

이와함께 참사 100일을 앞두고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된 것도 주목할만한 사안이다.

그에게 모든 의혹을 집중시켜 마치 마녀사냥의 제물처럼 만들어 상황을 봉합시킨 채 정작 중요한 책임소재 규명이나 사후대책을 소홀히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검찰은 지금까지 세월호 수사에서 331명을 입건하고 139명을 구속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세월호 참사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사안에 관한 것일뿐이다.

우리 사회의 적폐해소와 이른바 관피아 등 구조적 문제를 바로잡는 노력은 이제부터가 시작일 뿐이라는 뜻이다.

유씨의 사망이 사실로 확인되더라도 이는 세월호 참사 수습과정에 정점을 찍는 사안이 아니라는 얘기다.

오히려 유씨의 소재파악에 집중했던 수사당국이 현장에 국한하지않고 사고발생 원인의 저변에 넓게 깔려있는 각종 비리와 의혹들을 샅샅이 파헤치는 시발점으로 삼아야할 것이다.

물론 정치권과 관련당국도 지난 100일간 국민앞에 다짐해온 쇄신약속을 차질없이 이행하는 진정성으로 국민의 신뢰를 되찾는데 명운을 걸어야할 것이다. 쇄신의 골든타임은 아직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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