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는 합칠 때 소리가 나 성왕께서 소리로 천하를 다스릴 징조

신라 31대 신문왕의 아버지 문무왕이 세상을 떠나자 유언에 따라 동해 가운데 바위섬(대왕암)에서 장례를 치르고 근처에 부왕을 기념하여 감은사라는 절을 지었다. 

그리고 절 안 금당의 돌층계 아래 동쪽으로 구명을 내고 바다에서 물길을 따라 용이 된 부왕이 절 안을 드나 들수 있게 하였다. 용이 된 부왕은 신라를 엿보는 왜적들을 범접 못하게 지켰다. 

울릉도 근처에 본시 열 두 섬이 있었는데, 왜적이 붙는다고 문무왕이 이를 쳐 없애고 울릉도 하나만 남겼다고 한다.

신문왕이 감은사를 지은 해에 이견대(利見臺- 신문왕이 부왕인 해룡을 뵈었던 언덕) 앞 바다에서 작은 산이 왔다갔다 하는 일이 일어나자 왕이 사람을 시켜 그 섬을 살펴보게 하였다. 

그 섬에 가보니, 산의 생긴 모양이 흡사 거북의 머리와 같았는데 그 산위에 한줄기의 대나무가 있는데 낮에는 둘이 되고 밤에는 하나로 합하는 것이었다. 사신이 돌아와 왕께 본 대로 아뢰었다. 

왕은 그 날 밤 이견대에서 멀지 않은 감은사에서 묵었는데 다음날 아침 산 위의 대나무가 하나로 합하자, 하늘과 땅이 크게 진동하고 난데없이 비바람이 치기 시작했다. 

날씨는 금새 먹물을 풀어 놓은 듯 캄캄해졌다. 이레 동안을 그러다가 바람이 지고 청명한 날씨가 되었다. 왕은 직접 배를 타고, 바다 가운데 그 산으로 찾아갔다.

 산에 오르니 오색 구름이 영롱한 가운데 용 한 마리가 왕 앞에 나타났다. 용은 검은 옥대(玉帶)를 왕에게 주고, 이 산의 대나무가 갈라지고 합하지는 이유에 대해서 왕에게 대답했다.

" 이 대나무는 합칠 때만 소리가 납니다. 이것은 성왕께서 소리로서 천하를 다스리게 될 상서로운 징조입니다. 대왕께서는 이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불면 천하가 화평해질 것입니다.

 이제 대왕의 아버님께서 바다 속의 큰 용이 되시고, 김유신 공은 다시 천신이 되셨습니다. 두 분 성인이 마음을 같이하여 나라를 보우하고자 이같은 값을 칠 수 없는 큰 보물을 내려 저로 하여금 대왕께 드리게 한 것입니다. 
부디 대왕께서는 이 보물들을 길이 간직하시어 나라의 큰 복이 되게 하십시오"

왕은 오색 비단과 금과 옥을 용에게 주고 사람을 시켜 대나무를 베게 하였다. 왕이 일행을 거느리고 서울로 가는 도중 기림사 서쪽에 있는 작은 시냇가에서 쉬게 되었다. 

이 때 태자 이공이 이 소식을 듣고 말을 몰로 달려와 왕에게 경하하였다. 왕은 만족스러워하며 태자에게 옥대와 대나무를 내보였다. 부왕으로부터 옥대를 받아들고 찬찬히 살펴보던 태자가 부왕에게 말했다.

"아버님! 옥대를 살펴보니 여기 박힌 눈금 하나하나가 모두 용이올시다.'

"무엇이? 띠의 눈금이 다 용이라고? 태자가 그것을 어찌 알았느냐?"

"옥대의 눈금 하나를 떼어서 여기 시냇물에 넣어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왕의 허락을 받고 태자가 옥대에서 눈금 하나를 떼어 시냇물에 넣는 순간 땅이 꺼지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눈금이 순간 용으로 변하여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용이 올라가 버리고 난 자리는 못이 되었는데, 이 못을 용연(龍淵)이라고 불렀다. 왕은 태자의 혜안에 새삼 탄복했고, 그렇듯 신령한 옥대를 얻게 된 것에 다시금 기쁨을 느꼈다.

왕은 궁에 돌아온 즉시 사람을 시켜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게 했다. 그리고 이것을 월성에 있는 천존고(天尊庫)라는 나라의 보물창고에 간직했다.
 과연 이 피리는 여러 가지 신령한 힘을 나타냈는데, 피리를 불면 쳐들어왔던 적군이 스스로 물러갔고, 질병을 앓던 사람들은 저절로 나았고, 가물던 하늘에서는 비가 왔고, 궂은 비가 올 때면 날이 개었고, 바람은 자고, 물결은 스스로 잔잔해졌다.

 이런 신령한 힘을 가진 까닭으로 피리의 이름을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고 불렀다. 

그 뒤 신문왕의 아들 효소왕 때에 피리가 온데간데 없어지더니, 오랑캐에 의해 이국땅에 끌려가 실종되었던 부례랑과 안상이 피리를 갈라타고 바다를 넘어 고국 신라로 돌아올 수 있엇다.
 그 때문에 피리는 다시 만만파파식적(萬萬波波息笛)으로 불렸다. 바로 그 무렵 하늘에 나타났던 혜성(慧星)이 피리의 이름을 다시 지어주자, 저절로 없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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