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쌀 시장 전면 개방을 선언했다.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18일 기자회견을 통해 "쌀 산업의 미래를 위해 관세화가 불가피하고도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며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합치하는 범위에서 최대한 높은 관세율을 설정해 쌀 산업을 보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동필 장관은 수입쌀에 대한 관세가 300~500%가 될 것임을 시사하는 한편 수입물량이 과도하면 '특별긴급관세(SSG. Special Safeguard)'를 부과키로 하는 등 안전장치가 강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야당과 일부 농민 단체는 강하게 반발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여ㆍ야ㆍ정과 농민단체가 참여하는 '여야정단 4자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고,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가톨릭농민회 등은 철야농성, 삭발투쟁에 들어갔다. 쌀 시장 개방 문제는 늘 민감한 사안이었다. 20년 유예기간의 마감이 올해 말로 돌아온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데도 아직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주도권을 가진 정부 입장에서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충분히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의견을 수렴했는지 우선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쌀 시장 개방 문제, 엄밀히 말하면 '쌀 관세화 유예 종료' 문제는 세계 무역 질서와 관련된 사안이다. 공산품은 관세를 내면 자유롭게 국경을 넘어 이동할 수 있는데 농산품은 관세를 내도 국경을 넘나들며 이동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들은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에서 농산품을 포함한 모든 상품의 예외 없는 관세화에 합의했다. 우리나라는 공산품 수출로 큰 이익을 얻는 나라였지만, 쌀 시장에 대해서만은 관세화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펴서, 일본, 대만, 필리핀 등과 함께 일정 물량을 의무수입하는 것을 조건으로 관세화를 유예받았다. 우리나라는 이후 매년 의무수입(MMA. 최소시장접근)물량을 늘려 올해에는 국내 소비량의 9%에 달하는 약 41만t을 수입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정부는 다시 한 번 더 관세화 유예를 할 경우 의무수입물량이 배 이상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국내 쌀 소비량은 계속 줄고 있어 관세화 유예가 오히려 쌀 산업 황폐화를 앞당길 것이란 주장을 펴고 있다.

쌀 관세화를 유예받은 4개국 가운데 일본은 유예기간 만료 2년 전인 1999년 관세화로 조기 전환했고 대만은 2003년 시장을 개방했다. 일본은 15년, 대만은 11년이 지났지만 쌀 관세화로 큰 피해가 발생했다는 소식은 없다. 필리핀은 두 차례에 걸쳐 관세화 유예를 선택했고 최근에는 협상을 통해 세 번째로 그 기간을 2017년 6월 말까지 5년을 더 연장했다. 하지만, 그 이전 7년이었던 유예 기간은 5년으로 줄었고 의무수입물량은 35만t에서 80만5천t으로 2.3배로 늘어났다. 필리핀의 사례로 보건대 쌀 관세화를 미루면서 의무수입물량도 동결하자는 '현상 유지' 주장은 실현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필리핀 사례는 그러나 대가를 치를 각오만 있다면 추가 유예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쌀 시장 개방 문제는 기본적으로는 합리적 선택에 관한 문제이지만 쌀이 가지는 상징성 때문에 일도양단 식으로 결정할 문제는 아니다. 쌀 시장 개방을 선언한 정부는 관련 법 정비 등 후속 조치에 박차를 가하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라도 더 적극적으로 대화와 설득에 나설 필요가 있다. 야당이 제의한 '여야정단 4자 협의체 구성'도 검토해볼 사안이다. 문제의 핵심은 국익과 농민 보호를 위해 무엇이 가장 합리적이고 타당한 길인지를 찾는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물론 농민 단체도 '진정한 국익'이 무엇인지 찾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시점이다.

저작권자 © 일간경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