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기업 - 고소득층 稅혜택 축소 전망

▲ 정부가 박근혜 대통령 취임 첫해인 지난해 공약가계부를 작성하면서 대선 공약과 국정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정권 5년간 필요하다고 전망한 재원은 무려 135조원에 달했다. (일간경기=연합뉴스)

복지 정책의 확대로 돈 쓸 곳은 많은데 경기 침체로 세수가 줄면서 나라 살림이 녹록지 않다.
이에 정부가 올해 발표할 세법개정안에서는 세금을 더 거두기 위한 방안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정부는 고용창출투자 세액공제 등 대기업에 혜택이 집중돼온 비과세·감면 제도 정비를 검토하고 있다. 세금우대종합저축 등 저축지원제도도 혜택이 서민·취약계층에 돌아가는 방향으로 재설계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경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세제 혜택까지 줄이며 기업을 옥죌 경우 부작용이 생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돈 쓸 곳 많은데 세수는 부족…해법은 '세금 더 걷기' = 정부가 박근혜 대통령 취임 첫해인 지난해 공약가계부를 작성하면서 대선 공약과 국정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정권 5년간 필요하다고 전망한 재원은 무려 135조원에 달했다. 

기초연금과 무상보육 등 각종 복지 정책 관련 예산 소요가 늘고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재난·안전 예산도 추가 확대 필요성이 생겨 '돈 쓸 곳'은 더 많아졌다.

그러나 세입여건은 좋지 않다. 완만한 경기 회복에 따른 세수 증대를 기대했지만 세월호 참사 여파로 소비가 줄고 경기도 흔들리면서 예상이 빗나갔기 때문이다.

지난해 8조5천억원의 세수 펑크가 발생한데다 올해 4월까지의 누적 세수진도율도 34.1%로, 지난해 34.4%보다 오히려 미진한 상황이다. 침체된 경기를 살리기 위해 정부의 상반기 재정집행 규모는 당초 계획보다 늘어났다.

결국 문제를 해결할 열쇠는 세금을 더 걷는 방법밖에는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세목 신설, 세율 인상 등 '직접적 증세'는 아니지만 비과세·감면제도를 줄여 실제로 걷히는 세금을 늘리는 방식 등으로 '사실상 증세'를 하겠다는 방침이다.

지난해에는 의료비와 교육비 등 특별공제 항목을 소득공제 방식에서 세액공제로 전환해 고소득자의 세금 부담을 늘리고, 대기업이 주로 혜택을 보던 연구개발(R&D) 관련 세액공제를 줄여 추가 세수 확보 방안을 마련했다.

다만, 저소득층은 근로장려세제(EITC)와 자녀장려세제(CTC)를 통해 실질적으로 세금을 덜 내도록 하고, 중소·중견기업도 가업상속공제 제도 정비로 혜택을 볼 수 있게 했다.

◇대기업·고소득자 혜택 비과세·감면제도 정비 전망 = 올해도 정부의 기조는 크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비과세·감면 제도를 전반적으로 정비하되 대기업과 고소득자 등에 혜택을 먼저 손 볼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우선 고용창출투자 세액공제제도 정비를 검토 중이다. 올해 일몰 대상인 이 제도는 사업용 자산에 투자하고 고용을 유지하는 기업에 세액을 공제해주는 제도다.

이 제도는 감면액은 크지만 제도 취지인 '고용창출'에는 효과가 적다는 지적이 있다.

기업규모와 투자 장소, 투자 금액에 따라 결정되는 기본공제는 1∼4%로 차등화돼 있지만 고용증가에 비례한 추가공제는 일괄적으로 3%가 적용돼 투자 규모가 큰 대기업은 고용과 상관없이 더 많은 혜택을 본다는 것이다.

정부는 고용과 관련없는 기본공제율은 1%포인트 가량 인하하고 고용증가에 비례하는 추가공제율을 인상하되, 지방투자 독려를 위해 수도권 밖의 기업 기본공제율은 유지하는 방향으로 제도 정비를 검토하고 있다.

연구·인력개발(R&D) 비용 세액공제도 대기업에 혜택이 집중되고 있어 공제방식과 공제율, 공제대상 항목 등의 개선이 논의 중이다.

해당 제도 적용 방식 중 대기업이 주로 선택하는 '증가분 방식'의 공제율을 하향 조정하되 해당 방식에 중견기업 구간을 신설해 중견기업에 대해서는 기존 수준의 혜택을 유지하는 방안 등이 유력하다.
세금우대종합저축을 정비해 금융소득 종합과세의 실효성을 높이고 세제 지원 혜택을 서민·취약계층에 집중시키는 방안도 검토된다. 

현재는 20세 이상 내국인이라면 누구나 1천만원까지 이자·배당소득에 대해 9%로 분리과세되는 세금우대종합저축에 가입할 수 있다. 자산이 많은 고소득층일수록 효과적인 세(稅)테크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는 구조다.

이를 개선하려면 재산·소득기준을 도입해 고액자산층의 가입을 차단하거나, 일반인 대상 단순 저축 지원 기능보다는 취약계층 지원 기능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문창용 기획재정부 조세정책관은 최근 조세재정연구원이 주최한 공청회에서 "고령화 시대에 맞춰 연금저축 등으로 선택과 집중을 하는 방향이 어떻겠냐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영업자들이 주로 혜택을 보는 신용카드 매출 세액공제도 올해 일몰이 만료되면서 개편이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고차 매매업자가 개인으로부터 중고차를 사들일 때 매입가액의 109분의 9 공제율을 적용해주는 중고차 부가가치세 의제매입 세액공제와, 농협과 수협, 신협, 새마을금고 등 협동조합에 대한 법인세 과세특례도 정비될 가능성이 크다.

◇"재정건전성 위해 증세 필요" vs "투자 줄이면 경기 꺼진다"

나라 살림을 고려하면 대기업과 고소득층 등에 혜택이 큰 비과세·감면 제도를 정비하는 것은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많다.

지출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수입은 오히려 줄고 있어 재정건전성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직접적 증세'를 억제하면서 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미약하게나마 지속하던 경기 회복세가 세월호 참사 등으로 꺾일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기업의 세제혜택을 줄이면 투자가 더욱 위축돼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특히 고용창출투자 세액공제와 연구개발(R&D)비용 세액공제로 혜택을 많이 받던 대기업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세법개정 방향에 대한 토론이 열린 조세연 공청회 때 송원근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은 "올해 경기 상황이 여러 가지로 좋지 않고 성장률 전망도 3% 중반대까지 하향조정됐다"며 "이런 상황에서 기업 투자가 중요한데, 비과세·감면제도 정비 계획은 기업의 투자의욕을 고취시키는 것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송 본부장은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고용창출투자 세액공제 기본공제율까지 줄인다는 것은 상당히 문제가 있다"며 "R&D비용 세액공제도 특성상 대기업의 절대적 투자액수가 크기 때문에 수혜비율이 높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금우대종합저축도 저소득층과 취약계층 중심으로 정비하면 중산층·고소득층으로부터 불만이 나올 수 있다.

신용카드 사용금액 소득공제의 경우 정부가 지난해 소득공제율을 15%에서 10%로 축소하기로 했다가 반발에 부딪혀 결국 국회 논의 단계에서 1년간 추가 유예기간을 설정하기로 한 바 있다. 올해도 정비가 녹록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현재 3단계로 나뉘어 있는 법인세율을 단일세율화하는 방안과 부가가치세 인상 방안도 검토했지만, 비과세·감면 정비방안보다도 더 강한 반발과 경기 둔화, 조세 저항이 우려되는 만큼 실행에 옮기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담뱃세와 주세 등 이른바 '죄악세'를 올리는 방안도 몇년째 검토해왔지만 '서민 증세'라는 역풍을 맞을 공산도 있어 상대적으로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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