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에서 청문제도 개선론을 제기하고 있는 가운데 정홍원 총리가 유임됐다. 세월호 참사책임으로 사의를 표명한지 60일만이다. 청와대는 박근혜 대통령이 정총리의 사의를 반려한 사실을 발표하고 국정과제가 산적해있는데도 청문회 과정에서 노출된 여러 문제들로 인해 국정공백과 국론분열이 심각한 상황을 더이상 방치하기 어려웠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청와대는 또 이명박 정부때 폐지된 인사수석실을 부활시켜 인사검증상의 결함을 보완키로 했다. 총리후보자의 잇단 낙마에 따른 임시방편 성격의 조치다.

현실적으로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후 국정쇄신을 추진할 '골든타임'을 더이상 후임총리 논란으로 허비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불가피성에 관한 설명을 십분 이해한다 해도 참사책임 문책의 상징성도, 면모일신을 통한 새 내각의 참신성도, 반성과 자기쇄신을 통한 새로운 국정동력 확보도 모두 놓쳤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시 총리후보자를 찾아 임명동의 절차까지 거치려면 국정공백이 길어진다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땜질정부로 버틸 상황은 아닌 것이다. 박 대통령이 다짐한 이른바 관피아 혁파 등 국가개조 수준의 사회적 적폐 일소작업은 강력한 전기와 국민여론의 뒷받침, 지속성을 보장할 수 있는 엄중한 감시와 사후관리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안부재로 유임된 총리와 흠결이 적지않은 새 내각진용으로 과제수행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특히 사회부총리를 겸하게될 김명수 교육부장관 후보자의 경우 제기되고 있는 흠결이 단순한 도덕성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청정성 확보라는 기본적 직무상의 문제이기 때문에 야당의 집중공세 여부를 떠나 결단이 필요해보인다. 더 큰 우려는 김기춘 비서실장의 유임과 인사수석실 부활조치로 볼 때 박 대통령이 총리후보자들을 둘러싼 논란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점이다. 두 총리 후보의 잇단 낙마는 단순한 검증 결함이 문제가 아니라 인사정책의 폐쇄성에 따른 인력풀의 협소함이 바탕에 깔려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과거시대에나 유효했던 단선적이고도 권위주의적인 국정운영 시각을 털고 자연스럽게 변화된 시대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국민과 진정한 '소통'에 나설 전기를 흘려버리고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비서실장의 거취 문제가 중요한 것도 단순한 검증 소홀에 따른 문책 차원을 넘어 지금 대통령에게 가장 필요한 것, 바로 변화와 소통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항간에 도는 비선라인에 관한 얘기들도 사실 여부를 떠나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과 관련해 심각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여권에서 제기하고 있는 청문제도 개선론이다. 후보자 검증이 마녀사냥처럼 성격이 변질돼 바꿀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지만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인사 논란의 본질은 국회 인사청문제도의 흠결에 있지않다. 지나치게 좁은 공직후보군에서 폐쇄적 방식으로 낙점과 검증이 진행되는 인사방식이 불러온,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사태라는 측면이 강하다. 안대희, 문창극 두 총리후보자에 대해 일종의 여론재판이 전개돼 실제 국회청문절차까지 들어가지도 못한 문제점을 고쳐보자는 것이지만 국민여론이 받아들이기 힘든 흠결을 가진 공직후보라도 국회에서 통과시키면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뜻인지 의문이다. 공직후보자가 엄격한 도덕성 기준을 충족시켜야 하고, 필요한 업무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은 기본중의 기본이다. 도덕성은 공적영역에서 국가의 공공성 확장업무를 맡게되는 공직의 특수성 때문에 피할 수 없는 검증영역에 속한다. 우리사회와 역사를 대하는 기본시각도 마찬가지다. 압축성장기를 거쳐오면서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정도의 흠결이라면 모르되 국민의 눈높이에서 수용가능한 선을 넘는 경우라면 적격자라고 판단하기 어렵다.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 여론재판식 매도 등은 지양해야 하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청문회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운용의 역사가 짧아 청문문화가 우리 사회에 제대로 자리잡고 성숙하지 못한 탓이다. 새누리당은 특히 공직후보자의 도덕성과 업무능력 부분을 분리해 도덕성 부분을 비공개로 하자는 방향인 것으로 보이지만 여야 정치권의 도덕성 평가 적격성을 국민이 얼마나 인정해줄지부터 자문해보는 것이 순서일 것같다. 원인을 잘못 짚으면 결론을 엉뚱하게 내리게 된다. 언론탓, 야당탓 이전에 먼저 제대로 된 인물을 철저한 사전검증을 거쳐 국민 앞에 세우고 국회에서 야당의 협조를 끌어내 임명동의를 받는 정치력을 확보하는데 당력을 기울이는 게 집권여당의 풍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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