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총리후보자 문제가 갈수록 꼬여가는 기류다. 박근혜 대통령 귀국 후 상황이 정리될 것이라는 전망은 23일 "조용히 제 일을 하면서 기다리겠다"라는 문 후보자의 월요일 출근길 일성으로 물건너 갔다. 주말을 거치면서 문 후보자의 거취문제가 정리되기는 커녕 청와대와의 간극이 더 커졌다는 방증으로 보인다. 문 후보자의 자진사퇴가 해법에서 제외되면 남는 것은 사실상 지명철회밖에 없다. 현재 여론추이로 볼때 청문회에서 여당의 당론투표는 사실상 정치적 자살행위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청문회에서 문 후보자에게 소명기회를 준 뒤 투표전 그가 스스로 거취를 정리하거나 여당이 자유투표토록 하는 방안도 그 과정이나 결과를 예상해볼 때 청와대와 여권에는 지명철회에 버금가는 타격이 될 전망이다.

새 총리 등을 둘러싼 잇단 인사잡음으로 국정공백이 길게 이어지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해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여론의 질타를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불가항력적 돌발사태로 인한 상황이 아니라 이미 여러차례 지적되어온 인사정책의 폐쇄성과 검증 결함 등의 문제가 되풀이 됐고, 사태 수습과정에서도 책임있는 판단이나 결정이 제때에, 제대로 된 방식으로 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방선거와 여야간 강대강 대치국면이 이어지고 있는 정국상황이 영향을 미쳤을 것임을 감안하더라도 문제가 된 인사상 결격사유들과 이에따른 여론동향은 단순한 정치적 득실판단을 넘어 국민의 눈높이에서 신속하게 해결했어야 할 사안이라는 얘기다. 문 후보자의 경우도 자진사퇴를 압박하기보다는 먼저 내부적으로 그가 억울해하고 있는 여론몰이식 편파적 재단에 대한 소명 문제를 진지하게 함께 검토하는 자리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정치력 차원을 떠나서 청와대와 여당, 문 후보자간 기본적인 내부소통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짐작까지 들게할 정도로 상황이 흘러왔기 때문이다. 이제는 사실상 자진사퇴나 지명철회나 별다른 의미가 없어 보인다. 인사갈등 상황에서 속수무책으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청와대와 여권의 맨 얼굴이 국민 앞에 그대로 다 드러난 뒤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고노담화 흔들기와 전방에서 또 발생한 총기사건 등 국내외적으로 즉각대처가 필요한 현안들이 잇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더 국정표류를 지켜봐야 하는지 걱정스러울 따름이다.

책임은 대통령과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집중되는 양상이지만 무책임하기는 새누리당도 마찬가지다. 청와대와 국정 공동책임을 지고 있는 집권여당으로 전혀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한 채 끌려다니다가 볼썽사나운 집안싸움까지 벌이는 모습은 어이없을 정도다. 당청관계 복원을 외치지만 문 총리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 와중에 이리저리 상황논리에 휘둘리다 대통령과 청와대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마치 제3자인 듯 총리후보자와 거리를 두는 듯한 모습은 무책임 그자체다. 대통령에 할 말을 하며 국민과의 정치적 소통창구로 자리매김하지 못하면서 제대로된 당청관계를 기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유력 당권주자들간에 벌어지고 있는 줄세우기, 여론조사 조작 논란 등을 보면 과연 국정 위기감을 공유는 하고있는 것인지 의아스러울 정도다. 세월호 참사로 인한 정부여당에 대한 성난 민심 속에 치러졌던 지방선거에서 막판 '박근혜 마케팅' 읍소작전으로 겨우 완패를 면한게 불과 20일전이다. 이제 충분히 늦었고, 국민도 충분히 기다린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 보좌진, 새누리당은 국정 수습을 위해 비상한 각오를 다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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