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관세화 유예 기간 종료 시점이 올해 말로 다가오면서 20년을 미뤄온 쌀 시장 개방 문제에 대한 논의가 재점화했다. 찬반양론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지만 10년씩 두 번이나 미뤄온 사안인 만큼 이번에는 어떤 형태로는 결론을 내려야 한다. 정부는 20일 공청회에서 쌀 시장 개방을 사실상 공식화하고, 앞으로 있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쌀을 관세폐지 양허 대상에서 제외키로 하는 등 후속 대책을 내놓았다. 시장을 개방하되 높은 관세율을 적용해 국내 시장을 보호하고, 그 사이에 쌀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실익이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등 일부 농민단체는 쌀 관세화도 미루고 의무수입(MMA. 최소시장접근)물량도 동결하는 '현상 유지'를 요구하고 있어 절충이 쉽지 않다. 정부가 최근까지 주요 지역을 돌며 한 설명회가 일부 농민들의 실력저지로 파행을 거듭해온 사실은 이 문제가 가진 '휘발성'이 간단치 않음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들은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에서 농산물 시장을 전면 개방하기로 합의했으나 한국과 일본, 대만, 필리핀 등 4개국은 쌀 시장에 대해서만 일정 물량을 의무적으로 수입하는 것을 조건으로 시장 개방 유예를 인정받았다. 우리나라는 그 이후 매년 의무수입물량을 늘려 올해에는 국내 소비량의 9%에 달하는 약 41만t을 수입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유예기간이 올해 12월로 끝나기 때문에 정부는 9월 말까지 새로운 입장을 정해 WTO에 통보해야 한다. 쌀 시장 개방을 유예받은 4개국 가운데 일본과 대만은 먼저 시장을 개방했다. 나중에 쌀 시장을 완전히 개방해도 의무수입물량은 영구적으로 수입해야 한다는 불리한 규정이 있기 때문에 결단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은 유예기간 만료 2년 전인 1999년 관세화로 조기 전환했고, 2002년 뒤늦게 WTO에 가입한 대만은 가입 첫해만 유예하고 이듬해인 2003년 곧바로 시장을 개방했다.

우리나라와 같이 장기 시장 개방 유예를 선택한 필리핀은 긴 협상 끝에 지난 19일 쌀 시장 개방 유예 기간을 2017년 6월 말까지 5년을 더 연장했다. 하지만 유예 기간은 5년으로 줄었고 의무수입물량은 지금의 35만t에서 80만5천t으로 2.3배로 늘어났다. 이밖에 쌀 이외 품목의 관세도 인하키로 하는 등 큰 대가를 지불했다. 필리핀의 사례로 보건대 쌀 관세화를 미루면서 의무수입물량도 동결하는 농민단체의 '현상 유지' 주장은 실현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시장 개방을 유예하려면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는 것이 냉엄한 국제사회의 현실이다. 반면 시장 개방을 피할 수 없다는 정부와 일부 전문가들의 입장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필리핀은 대가를 치를 각오만 있다면 유예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쌀 시장 개방 문제는 기본적으로는 합리적 선택에 관한 문제이지만 최대 이해관계자인 농민의 입장을 무시할 수 없다는데 어려움이 있다. 우선 마음을 열고 진지한 토론을 시작하는 것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마음을 연 대화를 하려면 상대를 존중해야 한다. 정부는 비록 비합리적이라는 비판을 받을지라도 필리핀과 같은 선택도 할 수 있다는 유연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 농민단체도 정부에 대해 합당한 신뢰를 보여야 한다. 농민을 망하게 하려는 것이 정부의 의도는 아닐 것이다. 정부와 농민단체 모두가 마음을 열고 진지하게 토론에 임할 때 길은 열린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먼 미래를 내다보며 진정으로 농민과 국가를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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