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이후 처음으로 민방위 훈련이 20일 오후 전국에서 실시됐다. 전국 초·중·고교가 집중훈련시설로 지정돼 화재 상황을 가상한 실제 대피훈련을 하고 백화점과 터미널 등 많은 다중이용시설에서도 대거 훈련이 이뤄졌다. 전국 규모 화재대피 훈련은 1975년 민방위 창설 이래 처음이라고 한다. 긴급차량 길터주기 연습을 하는 골든타임 확보훈련도 진행됐다. 이 모든 훈련은 세월호 사고의 뼈아픈 교훈을 실천에 옮겨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자는 취지라고 할 수 있다. 대피훈련 등 안전을 위한 조치들을 평소 제대로 준비하고 몸에 익혔다면 그 많은 생명을 잃는 참담함을 겪지 않았을 것이라는 반성인 셈이다. 

세월호 참사를 겪은 만큼 훈련에 임하는 국민의 자세는 과거와는 많이 다를 것으로 기대됐다. 사실 이전에는 마지못해 형식적으로 훈련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훈련에는 많은 국민이 열심히 동참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우리의 안전사회 만들기는 아직 갈 길이 먼 듯하다. 늘 많은 사람으로 북적이는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 전역에서는 이날 화재대피 훈련이 실시됐다. 영화관에서는 상영 중이던 영화를 중단하고 관객들을 모두 건물 외부로 내보냈고 다른 시설에서도 시민을 바깥으로 안내했다. 그러나 불이 꺼진 코엑스몰 지하 곳곳에는 휴대전화를 만지며 훈련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시민이 서 있는 등 훈련을 외면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카페 등은 훈련 안내요원을 피해 들어온 시민으로 오히려 평소보다 붐볐고 대피하라고 해도 훈련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시민도 많았다고 한다. 세월호 사고를 겪고도 별로 바뀐 게 없는듯한 모습에 씁쓸하기까지 하다. 다만 지난달 13일 화재대피훈련에서 문제점을 드러냈던 트레이드타워와 아셈타워의 대피훈련은 성과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훈련에서는 입주자 5천800여명의 25% 정도만 대피해 안전불감증의 전형을 보여줬지만 이번엔 90% 이상이 훈련에 참여해 한달여 만에 확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훈련으로 안전을 지키려고 노력한 결과라고 하니 다행이다. 

사실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안전불감증은 세월호 사고 이후에도 곳곳에서 확인됐다. 지난달만 해도 고양시외버스종합터미널 화재와 전남 장성의 요양병원 화재로 많은 생명을 잃었다. 인명 피해가 컸던 이면에는 안전 조치들을 소홀히 한 크고 작은 잘못들이 자리하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지하철 사고도 잇따라 일어나 시민의 불안감을 키웠다. 이런 사고들은 그동안 우리의 안전불감증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그 적나라한 민낯을 그대로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안전하기 위해서는 감수해야 할 불편함도 많고 그동안 해온 잘못을 하루아침에 고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사고가 나면 그때만 반짝 안전 문제를 챙긴다고 호들갑을 떨다 시간이 지나면 까맣게 잊어버리는 망각증이 반복되는 한 안전한 대한민국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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