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고군 침입때 '손돌'의 말대로 박을 물에 띄워 무사히 피신

초겨울에 부는 차가운 바람신인 손돌신의 이야기는 손돌목이라는 여울의 지명 유래담은 손돌목·손돌무덤이 있는 강화·인천 지방을 중심으로 전승되어 왔다. 

고려시대 몽고군의 침입으로 왕이 강화로 피난을 할 때의 이야기다, 손돌이란 뱃사공이 왕과 그 일행을 배에 태워서 건너게 되었다.

손돌은 안전한 물길을 택해 초지(草芝)의 여울로 배를 몰고 열심히 가고 있었다.그런데 마음이 급한 왕은 손돌이 자신을 해치려고 배를 다른 방향으로 몰아가는 것으로 착각하고, 신하를 시켜 손돌의 목을 베도록 엄명하였다. 

항변조차 하지못한 손돌은 왕에게, 자신이 죽은 뒤 배에 있는 박을 물에 띄우고 그것을 따라가면 몽고군을 피하며 험한 물길을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 

손돌을 죽이고 난뒤 적이 뒤따라 오자 왕과 그 일행은 황급하게 손돌의 말대로 박을 물에 띄워 무사히 강화로 피신할 수 있었다. 

목숨을 구한 왕은 손돌의 충성심에 감복하여 그의 무덤을 만들고 제사를 지내 그 영혼을 위로하였다. 

손돌이 억울하게 죽은 날이 10월 20일이었으므로, 그 뒤 이 날이 되면 손돌의 원혼에 의해 매년 추운 바람이 불어오므로, 이를 ‘손돌바람’이라 하고, 이 여울목을 ‘손돌목’이라 하였다.

이로 인해 어부들은 이 날 바다에 나가는 것을 삼가고, 평인들은 겨울옷을 마련하는 풍습이 생기게 되었다.

손돌목 부근을 비롯한 경기도 서북부 지역에서는 위의 설화의 줄거리가 소극적 변이 형태로 전승되었다.
 
그 변이의 정도는 박 이야기가 생략되기도 하고, 몇 가지 종류의 박 속에서 벌·폭약 등이 나와서 몽고 군을 격퇴시켰다는 것으로 부연되기도 한다. 

그러나 본격적인 변이 형태는 경기도 안성지방에서 전승되는 힘센 장사로서의 손돌설화에서 발견된다. 

이 지역에서는 손돌이라는 힘이 센 장사가 스승의 명으로 시장에 옷을 사러 갔으나 날씨가 따뜻하므로 옷 대신에 절구통을 사 왔다. 손돌이 그 통에 절구질을 하며 추운 줄을 모르고 지냈으나 날이 갑자기 추워지자 겨울옷이 없어 얼어 죽고 말았다. 

손돌장사가 10월 20일에 얼어 죽었고, 이 날은 매년 심히 추우므로 이 날을 ‘손돌뱅이 죽은 날’이라 하고, 추위를 ‘손돌추위’라 한다. 

또한 충청북도 영동지방에서는 10월 20일을 ‘손사공 죽은 날’ 또는 ‘모진 놈 죽은 날’로 표현해, 무섭고 흉악한 손돌사공으로 굴절되기도 했다.
 
그러므로 손돌설화는 전통 풍신 신앙의 약화로 나타난 소멸계 설화를 포함한, 한 설화의 생성·굴절의 양상을 파악할 수 있다는 데 그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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