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중심 로하스 연천, 연천은 어떤 곳일까요?

지금의 연천군은 서울 보다 면적은 넓지만 인구는 고작 5만여 정도의 농촌입니다.

역사 속 과거의 연천은 어땠을까요?

북녁 땅과 경계를 이루는 현실로 보아 한국전쟁 때는 어땠을 지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며 삼국시대 삼국의 접경기였던 만큼 전략적 요충지로 전쟁의 수난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이 고려에 송국하고 안주한 곳도 지금의 연천이요, 호로고루성에서 출토된 고구려 기와로 보아 고구려의 역사를 품었을 한때가 있었습니다.

새 왕조를 연 다음 전 왕조 왕의 위패와 왕릉을 보존하는 것은 전통적인 예의였다고 합니다. 이에 조선은 고려 태조 이하 7왕과 공신들의 위패를 모시고 숭의전이라 이름하였고 제사지냈습니다.

더 거슬러 선사시대로 올라가 볼까요?

전곡리에 있는 선사시대유적지는 세계 고고학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중요한 문화유적지가 되었습니다.

세계 구석기문화는 당시 유럽과 아프리카는 뗀석기(아슐리안형)로 아시아는 찍개석기문화로 선사시대의 문화를 구분하였다고 합니다.

한 미군 병사에 의해 연천군 전곡리에서 발견된 석기 4점이 역사를 바꾼 셈이죠.

선사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사가 숨 쉬고 태고의 청정 자연이 살아있는 연천으로 떠나 볼까요?

제일 먼저 당도한 곳은 단촐하고 검소한 느낌의 경순왕릉입니다.

왕릉1기와 신도비로 추정되는 비와 비각, 재실이 고작입니다.

조선 왕릉에 비해 소박한 것이 고려 왕릉의 특징이라고는 하지만 경주에 있는 웅장한 신라 왕릉과 비교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망국의 왕이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경순왕릉은 감춰져 있는 듯 신비함에 싸인 듯 우거진 수풀 뒤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주차장이 있어서 주차 걱정 없네요.

경순왕은 누구인가요?

뚝 잘라 말한다면, 고려에 신라를 넘긴 신라의 마지막 왕입니다.

후백제의 잦은 침공과 고려 왕건의 건국 사이에서 신라는 지탱하지 못하고 국가기능을 상실하게 되자 백성의 아픔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아들 마의태자나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려에 평화적 항복을 하였습니다.

아마도 그당시 상황이 그래야만 했을 것이라고......

이에 경순왕의 항복을 극구 반대했던 마의태자를 비롯하여 왕자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경순왕은 왕건의 보호 아래 왕건의 딸 낙랑공주와 다시 결혼하여 유화궁에서 지내다 여생을 마칩니다.

나라를 바치고 마음 편히 잘 지낸 탓일까요? 54세에 항복하고 43년을 유화궁에서 지내다 97세에 별세하였으니.....

경순왕릉은 한동안 존재가 잊혀지고 6.25 한국전쟁 때 이곳은 고랑포전투가 있었던 격전지로 그때 총탄에 훼손되었습니다.

경순왕이 별세하고 운구행렬이 경주로 떠나려 하자 고려 왕실은 신라인의 동요와 경주 지역의 민심을 우려하여 '왕릉은 개경 백리 밖을 벗어날 수 없다'는 이유로 이곳에 안장되었다고 합니다.

이로써 신라 왕릉 가운데 유일하게 경주 밖에 있는 릉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박찬명 연천군 문화관광해설사로 부터 들을 수 있었습니다.

호로고루성.성곽이 크지 않습니다.

몇 십 미터도 채 되지 않습니다.

이 짧디짧은 성곽이 주는 의미는 뭘까요?

호로고루성은 고구려성으로 현무암으로 쌓은 성입니다.

한강 유역에서 후퇴한 고구려가 임진강을 국경으로 삼고 10여개의 성을 쌓았는데 그 중의 하나가 호로고루성입니다.

전망대에 올라 임진강을 바라봅니다.

[출처/달콤한 나의 도시, 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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