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나라가 노란 리본 물결이다. 새봄의 상징색 개나리의 노란빛깔이지만 정작 리본에 새겨진 것은 응축된 슬픔이다. 노란색이 담기는 곳도 우리 눈이 아니라 마음이다. 얼어붙은 온 국민의 마음이다. 피어보지도 못한 채 차가운 물속에 잠긴 병아리같은 우리 자식들을 향한 애절한 기원, 사고를 막지못한 이 어이없는 사회와 나라에 대한 통한과 자책, 분노가 저렇게 선연한 빛깔로 남은 것일까. 구조와 수색작업에 속도가 붙음에 따라 실종자들이 속속 사망자로 바뀌어가는 가운데 안산에 세월호 참사 희생자 임시분향소가 차려졌다. 하루사이에 다녀간 조문객만 1만4천여명이다. 이번 사건이 지금껏 우리가 보아온 최대, 최악의 참사라는 성격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어린 학생들이 대거 희생된 이번 참사가 우리 가슴에 남긴 상처가 크고 깊다는 의미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안산올림픽기념관 실내체육관에 차려진 임시분향소에는 이틀째인 24일에도 조문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국화제단 위에 안치된 단원고 교사와 학생 등 희생자들의 영정과 위패가 말이 없는 가운데 남녀와 노소 조문객도 말을 잊고 눈물을 훔치며 줄지어 고개를 숙였다. 출근길 시민, 아이를 안은 어머니, 친구와 동료를 잃은 학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체육관 앞 추모메모판에 유족들과 조문객들이 남긴 색색의 메모지들에는 절절한 애절함과 안타까움이 적혔다. 메모를 읽는 이들의 가슴에도 어린 학생들을 지켜주지 못한 비통함이 한자한자 새겨진다. 온라인과 모바일, 특히 새로운 소통통로로 자리잡은 SNS에도 온통 노란 리본이 가득찼다. 임시합동분향소를 직접 방문하지 못하는 시민을 위해 누구나 추모글을 보낼 수 있도록 마련된 휴대전화 번호는 2만통이 넘는 문자메시지가 몰려 과부하로 고장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런 노란리본의 물결, 전국민의 애도와 조문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의 실낱같은 생환가능성을 염원하는 간절한 기도만도 아니다. 의례적 검정 리본에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자책과 분노가 담겨있는 것이다. 최단기간에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는 신화같은 성장가도를 달려왔다고 오만했던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후진성의 민얼굴이 사고후 하루하루 날이 밝을 때마다 양파껍질처럼 벗겨지며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의 부끄러움을 더해주고 있는 것이다. 낡은 선박을 들여오면서 안전은 고려하지도 않은 채 뜯어고쳤고, 검사과정이나 운항과정, 감독당국이나 단속당국도 모두 엉터리였다. 승객안전은 아예 나몰라라 뒷전이었던 선박회사 책임자는 깊이 숨었고, 선장과 선원들은 뒤집혀가는 배안에 갖혀 울부짖는 어린 학생들을 팽개친 채 맨먼저 배를 빠져나왔다. 신고를 받은 해경은 천금보다 소중한 초기 구조시간을 허공에 날렸고, 정부는 승선인원은 커녕 실종자 숫자마저 헷갈린 채 허둥대며 뒷북대응으로 실종자 가족들의 가슴에 되풀이해 못을 박았다. 실종자 가족들은 눈물도 말라버린 채 진도 팽목항에 마치 난민처럼 모여 망연자실한 채 주저앉아있고, 그나마 작은 힘이라도 보태려는 심정으로 현장을 찾은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이들과 고통을 함께하며 울음을 삼키고 있다. 반면 SNS 등에는 진실과 사실로 포장한 온갖 저열하고 악의에 찬 허위와 괴담들이 유령처럼 떠돌고, 무능을 질타받은 정부는 대책을 쏟아내지만 스스로 현장을 찾은 민간잠수사들마저 떠나게하는 등 여전히 오락가락 갈지자, 엇박자 행보다. 이게 세월호 사고 9일째를 맞는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정부는, 특히 책임있는 고위관료와 정치권 등 이른바 사회지도층은 노란 리본, 그리고 안산 임시분향소를 찾는 조문객들의 가슴속 외침을 들어야 한다. 세월호 사고는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수많은 다른 세월호들의 존재를 경고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주변의 수많은 세월호들을 감지하면서도 그날그날 살아내기만도 벅찬 국민들이 '뒷짐진 선장' '먼저 도망가는 선장'과도 같은 정부를 대하면서 치미는 가슴을 누르며 지내온 분노의 크기를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뒤늦은 단속, 요란한 대책을 희생자와 유족, 국민을 위로하는 사후약방문처럼 내놓고 있는 정부는 결국 시간이 지나면 이번 사건도 기억의 뒤편으로 넘어가 상처가 아물게 될 것이라고 속단해서는 안된다. 잘못된 관행, 비틀린 사회구조와 조직시스템이 하루아침에 바로잡히지 않는 것처럼 제대로된 나라, 미래 세대가 안심하고 밝게 웃을 수 있는 안전한 나라도 쉽게 오지않는다. 정부는 물론 우리사회 구성원 전체가 함께 나서 사회전반에 함정처럼 널려있는 비리와 유착구조, 대형사고를 부를 수밖에 없는 부조리와 안이함을 뿌리째 뽑아내기 위해 온 힘을 모으는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우리 사회가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구분될 수 있는 총체적인 변혁만이 그나마 어린 희생들을 헛되이하지않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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