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형준 홍익대 교수, '위기를 비웃어라' 출간

프랑스 작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가 1943년에 발표한 '어린 왕자'.

사람들은 이 책의 주인공이 어린 왕자니까 어린이가 읽을 책이라고 생각한다. 해마다 '어린이날'이 되면 선물용으로 이 책이 잘 팔리는 것도 이러한 인식을 보여준다.

그러나 한국문학번역원 원장을 지낸 진형준(62) 홍익대 불문학과 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이 책이 어린 왕자 또래의 아이들을 위한 동화가 아니라고 말한다.

'어린 왕자'는 자기 속의 어린 왕자를 잃어버린 어른들을 위한 책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우리 속의 어린 왕자를 일깨워 지금의 우리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책이라는 것이다.

'어린 왕자'를 20년 넘게 강의해온 것으로도 유명한 진 교수는 이 책에 대한 일반의 오해를 풀고 동시에 이 책이 담은 깊이 있는 의미를 널리 알리고자 최근 '위기를 비웃어라-어린왕자와 위기극복의 상상력'(M&K)을 펴냈다.

'어린 왕자' 속 어린 시절의 '나'는 여섯 살 때 정글의 모험에 관한 책을 읽은 후 코끼리를 통째로 삼킨 채 소화시키고 있는 '보아 구렁이' 그림을 그린다. 모두 두 장이다. 한 장은 구렁이 뱃속이 보이지 않는 그림이고 다른 한 장은 속이 보이는 그림이다.

'나'는 속이 보이지 않는 그림을 어른들에게 보여주며 무섭지 않으냐고 묻지만, 어른들은 모자가 뭐가 무서우냐고 답한다. 어른들은 한 술 더 떠 쓸데없는 짓 집어치우고 공부나 하라고 충고한다.

'나'는 그 충고를 따라 화가가 되는 길을 포기하고 비행기 조종사가 되다. '나'는 말한다. "나는 더 이상 보아 구렁이 이야기도 별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진 교수는 작품 속 화자가 보아 구렁이 이야기와 함께 왜 별이라는 단어를 언급했는지 주목한다. 그것은 생텍쥐페리가 어린 시절 잃은 것이 바로 꿈이며 이상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게 진 교수의 해석이다.

"그 꿈이나 이상을 버리면 어떻게 되는가? 바로 자기 자신을 잃게 된다. 꿈을 꿀 줄 아는 자기 자신을 잃게 된다."(40쪽)
진 교수는 어린 왕자가 여러 별을 여행하며 만난 어른들은 나와는 다른 어른들이 아니라 어른들 틈에서 그들과 어울리면서 살아온 나 자신, 그 어른들에게 익숙해진 나 자신, 그래서 어른들과 비슷해진 나 자신이라고 말한다.

"당신이 만일 홀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면, 당신 속의 어린 왕자를 만나기 위해 노력하라. 그 고독 속에서 내가 길들인 것들을 향한 책임감을 느끼고 그들을 향한 사랑을 더 깊이 느끼도록 노력해라. 그러면 당신은 삶의 비밀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으리니. 당신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으리니. 당신은 당신 스스로를 작게 만들고 비웃으면서 당신의 삶 전체를 환하게 빛나는 것으로 만들 수 있으리니……."(141~1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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