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복 그는 누구인가?

300만 인천시민들의 최종 선택은 유정복 새누리당 인천시장 당선자였다. 

박근혜대통령의 복심, 정권의 핵심으로 불리는 유당선인은 22세에 행정고시에 합격해 이후 36세에 김포군수를 시작으로 인천서구청장, 김포시장을 전국 최연소로 역임하며 일선 행정의 달인으로 불리며 일찌감치 300만 인천광역시 수장으로서의 준비를 마쳤다. 

새롭게 인천시정을 맡게 된 유정복 당선자가 걸어온 길을 돌아봤다.
 
유당선인은 지난 1957년 6월 6일 인천 송림동 182번지에서 4남 3녀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유당선인은 공산당의 횡포가 싫어 황해도 연백을 떠나 남쪽으로 피난을 내려 온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어릴 때부터 반공의식이 강한 어린이로 자랐다.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개구쟁이로 자란 유당선인은 인천 송림초등학교, 인천 선인중학교를 거쳐 명문 제물포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유당선인은 고교 입학식 첫날 가슴에 새긴 ‘학식은 사회의 등불, 양심은 민족의 소금’의 교훈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자신의 중심을 세우는 지표로 삼고 있다. 

외교관의 꿈을 안고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한 유당선인은 때때로 현실에 대한 분노로 폭발하기도 했지만 어려운 이웃을 돕고자 포장마차를 운영해 그 수익금을 고아원에 전달하기도 하고 단돈 16,000원을 들고 제주행 무전여행을 다녀오는 등 20대 초반, 젊음의 호기를 맘껏 누리며 대학생활을 했다.

당초 외교관이 꿈이었던 유당선인은 공직자의 길로 진로를 수정하고 대학교 3년인 22세에 제23회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강원도청에서 첫 공직생활을 시작한 유당선인은 학사장교 1기로 군 생활을 마쳤고 이후 당시 이한동 내무부장관 비서관에 발탁되어 중앙정치의 내면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후, 내무부 인사계장과 경기도 기획관을 거쳐 1994년 36세의 나이로 김포군수에 임명되어 전국 최연소 군수가 됐다. 이어 1995년 인천 서구청장 발령으로 또다시 전국 최연소 구청장 타이틀을 하나 더 획득한다.

 
하지만 서구청장 발령 후 연일 김포시민들이 몰려와 유당선인의 김포군수출마를 요구했고 심지어 농성까지 벌이는 촌극(?)이 벌어지는 소동이 일어났다.
 
결국 김포주민들의 요구를 거부하는 것은 비겁한 짓이라는 생각에 선거 20일을 앞두고 출마를 결심한다. 

당시 주위에서는 아무런 준비도 하지않은 유당선인에게 무모한 짓이라고 말렸지만 유당선인 결국 무조직, 무소속으로 출마, 유권자 64%의 지지를 받고 1995년 7월 1일 초대 민선 군수로 취임했다.
 
이후, 1998년 4월 김포시 승격과 함께 초대 김포시장 타이틀과 함께 전국 최연소 시장이 되어 군수, 구청장, 시장을 전국 최연소로 역임한 전무후무한 기록 보유의 공직자가 됐다.   

이러한 행정경험을 바탕으로 17, 18, 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초선 의원이었던 17대 국회의원시절 국정감사 우수의원(2004년), 과 입법 활동과 출석률 등 종합평가에서 의정활동 우수의원(2005년)으로 선정되는 등 초선의원 시절부터 활발한 의정활동을 벌였다.
 
유정복 당선인은 17대 초선의원시절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비서실장으로 발탁되면서 첫 인연을 맺었다. 2007년 대통령경선 후보 비서실장, 2012년 대선후보 직능총괄본부장, 2013년 제18대 박근혜 대통령 취임준비위원회 부위원장, 2014년 박근혜 정부 초대 안전행정부 장관에 오르면서 박근혜 대통령과 운명의 10년을 함께 했다.   

이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박대통령의 마음 박심(朴心)을 가장 잘 헤아리는 정치인으로 유당선인을 손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 때 역임했던 농림수산식품부장관시절은 유당선인의 업무에 대한 열정과 기질을 잘 알 수 있는 좋은 대목이다. 

취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전국은 쌀값하락, 배추 값 폭등, 구제역 발생, 조류인플루엔자 발생, 일본 대지진으로 수산물 방사능 파동 등 한 시도 편할 날이 없는 나날이었다.
 
구제역 발생 당시에는 장관실에 야전침대를 가져다놓고 24시간 진두지휘에 나서며 확산방지에 나섰다.
 
또한 각종 언론과 TV에 직접 출연해 구제역의 실체에 대해 설명하고 대책을 밝혔다. 

그 과정에서 유당선인은 그 어느 전문가보다 심도 있게 공부를 했고 과학적이며 논리적으로 구제역에 대해 접근했다. 

사태가 수습이 되고나서는 향후 재발을 막기 위해 일련의 모든 과정과 내용을 기록한 '구제역백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언론에서는 ‘우돈(牛豚) 일병 구하기 작전’이라는 비유를 하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일부 소수(2명)의 국회의원들의 ‘장관책임론’에도 불구하고 많은 축산인 들과 수의사들이 유당선인의 열정에 박수를 보냈다. 

유당선인은 업무이외에도 문화·예술·체육에도 깊은 관심을 보여 왔다.
 
(사)전통문화예술연구소이사장, 국민생활체육회장 등을 역임하며 문화·체육 발전에 앞장서며 문무와 지덕체를 겸비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지도자의 표본으로 불리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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