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제주지사 당선자가 6·4 지방선거의 경쟁자였던 새정치민주연합 신구범 전 후보에게 지사직 인수위원장을 제안한 것은 파격적이다. 신 전 후보도 "전직 제주 지사로서 제주도와 도민을 위한 결심을 하겠다"며 긍정적인 의사를 내비친 것으로 알려져 이들이 손을 잡을 가능성은 커 보인다. 우리 정치사에서는 선거의 승자가 패자에게 손을 내미는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만일 신 전 후보가 이 제안을 수용해 향후 4년간의 도정 청사진 마련작업에 참여한다면 제주는 통합정치의 실험장으로 전국적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남경필 경기도지사 당선자도 "야당 인사를 사회통합 부지사에 임명할 계획이며 이미 추천을 부탁했다"고 했다. 그는 선거 기간에도 야당과 머리를 맞대 도정을 풀어나가겠다고 여러 차례 밝힌바 있다. 그가 "나를 지지하지 않은 경기도 유권자 절반의 마음을 사는 일에 주력하겠다"고 한 말이 당선 직후의 의례적인 인사말이 아니길 바란다. 서병수 부산 시장 당선자도 경쟁자였던 오거돈 전 후보와의 회동을 준비하고 있고 부산출신 야당지도자인 문재인·안철수 의원과의 회동도 검토중이라고 한다. 남 당선자와 서 당선자는 워낙 적은 표차로 당선돼 상대방을 끌어안지 않고는 효율적인 시·도정 운영이 어렵다고 판단했을 법 하다. 하지만 과거에도 그런 박빙 선거는 많았지만 이같이 적극적인 소통과 통합의 노력은 부재했다는 점에서 이들의 시도는 신선해 보인다.

원 당선자와 남 당선자는 과거 한나라당에서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으로 불렸던 소장 쇄신그룹의 일원이다. 나이도 얼추 비슷한 50세 전후이고, 성향도 중도 보수로 당내에서는 개혁쪽에 가깝다. 그래서 여당내 야당 역할을 자임하기도 했다. 또한 이들은 새누리당의 잠재적 차기 대선주자라는 공통점도 있다. 원 당선자의 통합 도정 실험 제안에 대해 새정치연합 제주도당이 긴급성명을 내 `이미지 메이킹을 위한 저급한 정치쇼'니, `야합'이니 하며 비판하는 이유다. 그러나 야당의 이런 비판은 편협한 진영논리로 볼 수밖에 없다. 작은 선거에 매몰돼 큰 정치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처지가 옹색해질까봐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는 `정치꾼 정치'로는 유권자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새정치연합 제주도당은 원 당선자를 도와 새로운 통합의 정치 실현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반색했어야 했다. 정말 원 당선자가 `정치쇼'로 이런 제안을 한 것이라면 얼마 안가 그의 본색이 드러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지금 우리 사회는 통합의 정치를 목말라 하고 있다. 선거기간 또는 당선 직후에는 반대편의 의견을 경청하겠다느니, 나를 찍지 않은 유권자들도 포용하겠다느니 하면서도 실제는 그와 정반대로 움직인다. 오로지 진영의 논리에 갇혀 삿대질하고 증오하기에 바쁘다. 이런 정치판에서는 어떤 건설적인 제안도 당리당략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다. 지금 박근혜 정부와 야당의 관계가 꼭 그렇다. 오죽하면 `불통'이 현 정부의 대명사처럼 인식되고 있겠는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대통합 리더십이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임용 등이 자주 회자 되는 것은 그들의 통합정치가 부럽기 때문이다. 이런 때에 원희룡, 남경필 당선자의 적극적인 소통과 통합 움직임은 그 진의가 무엇이든 시도 자체만으로도 반가운 일이다. 이들의 정치실험이 시도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성사돼 숱한 부작용과 장애를 딛고 `연립도정' 운영에 성공한다면 이는 우리 정치사에 `통합=불가능'이라는 각인을 걷어내는 이정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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