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정치권이 6.4지방선거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여야 격돌의 핵심현장이었던 17개 광역단체장을 기준으로 보면 새누리당이 8곳, 새정치민주연합이 9곳에 깃발을 꽂았다. 지금의 9대8 구도가 뒤집힌 것이다. 한 곳을 더얻은 새정치연합의 승리로 보이지만 선거초반부터 우세를 확정지은 서울을 제외하고 경기와 인천 등 수도권을 내준 것은 뼈아픈 결과다. 새누리당으로서는 수도권을 차지한 대신 세종시를 포함해 충청권에서 단 한 곳도 건지지못하고 전패했다. 여야 모두 전통적 우세지역에서는 지역구도를 그대로 이어갔지만 대구와 광주시장 선거에서는 새정치연합이 의미있는 성과를 일궈냈다. 새누리당쪽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측근이 현장투입된 인천과 부산선거 승리가 눈에 띈다. 결과적으로 여야 어느쪽도 표심을 일방적으로 쓸어담지 못했다. 야당의 세월호 참사책임론과 여당의 박근혜정부 지원론 사이에서 여론이 미묘한 균형점을 잡은 개표결과로 보인다. 동시에 여야 정치권 모두에 세월호 정국 이후의 행보를 깊이 고민해보라는 숙제를 안겨준 투표함 민심이기도 하다.

새누리당으로서는 이번 지방선거 결과를 나름 선방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 심판여론이 선거참패를 불러오는 절체절명의 정치적 위기국면을 막아냈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성적표는 새누리당 것이 아니다. 선거막판 꺼내든 박근혜 마케팅의 보수층 자극효과와 더불어 국정대안세력으로서의 야당의 역할을 미덥지않게 보는 민심의 반사이익을 본데 불과하다. 선거내내 새누리당은 박 대통령에 기댔을 뿐 스스로의 존재감은 찾기 어려웠다. 보수층을 기반으로 한 정치적 기득권에 안주하며 향유하고 소모해왔을 뿐, 사회주류세력으로 성장하는 젊은 세대를 끌어안을 신선한 흡인력과 확장의지를 보여주지 못해온 현실이 이번 선거에서도 고스란히 표로 나타났다. 박 대통령의 측근인 유정복, 서병수 후보의 승리가 눈에 띄면서도 걱정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선거에서 발휘할 수 있는 힘이 상징적으로 드러난 동시에 새누리당의 무기력화 현상이 더욱 심화될 개연성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박 대통령측은 두 후보의 선전을 포함한 이번 선거결과를 누구보다 심각하게,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견제받지않는 1인독주 시스템이 여권내 역학구도에 구조적으로 뿌리내릴 개연성이 적지않은데다 모든 정치적 갈등과 부하가 당으로 분산되지않은 채 청와대로 집중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개인이 정치시스템 일부를 대체하는 이런 결과가 국정운영에 미칠 부작용은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거듭 새누리당의 자성과 박 대통령의 국정 쇄신의지, 정국운영방식의 혁신 필요성을 강조하지않을 수 없다.

새정치연합은 광역단체장 한곳을 늘렸음에도 불구하고 가슴을 열고 숨은 여론을 읽는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당초 여당의 참패 내지 고전이 불보듯 했던 이번 선거가 박빙의 혼전으로 흐른데는 여당의 선전보다는 표심을 담아낼 야당이라는 그릇의 한계가 더 크게 작용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지난 대선패배 이후 국정을 견제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제1야당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왔는지에 대해 국민이 내린 점수가 그리 높지않다는 점이 드러난 선거결과라는 얘기다. 당의 체질과 정책노선 등을 둘러싼 당론 형성 및 수렴과정은 당연하고도 필수적인 정당 내부활동 범주에 속하지만 정파갈등이 정리되지못한 채 수권정당으로서의 능력에까지 부정적 이미지를 가져온다면 그대로 방치할 일이 아니다. 쇄신은 정부 여당만의 몫이 아니라 야당에게도 생존의 화두라는 사실을 깨닫으라는 준엄한 민심의 요구로 새겨야 한다.

여야 정치권은 7월 재보선이 남아있기는 하나 다음번 총선까지 앞으로 2년 가까운 시간을 가지게 된다. 지방선거 결과를 향후 내부쇄신과 국정운영에 어떻게 반영하는지에 따라서 다음 총선 성적표가 달라지리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 출발선은 이번 지방선거 민심을 받아들이는 기본자세다. 어느쪽도 패배나 승리로 규정하기 애매한 개표결과는 여야 정치권이 국민으로부터 똑같은 새출발과 쇄신 요구카드를 받아든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아전인수식으로 유리한 방향으로만 생각하거나 자기들만의 아집과 논리에 빠져 국민이 요구하는 자성과 쇄신작업을 소홀히 한다면 2년후 초라한 성적표 앞에서 정치적 장래를 걱정해야하는 처지에 빠지게될 공산이 크다. 변화와 쇄신의 첫걸음으로 당장 산적한 국정.민생현안, 특히 시급한 안전한 나라만들기를 위해 여야가 진지하게 가슴을 열고 마주앉는 정치일정을 짜보는 것은 어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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