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의 낙마로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수습성격을 띤 국정쇄신 추진작업에 첫걸음부터 제동이 걸린 모양새다. 특히 전관예우 문제에 관한 국민정서와 괴리된 판단을 한 청와대 참모진들의 법조계 편향 '동질성'이 부각되면서 유임이 유력시되던 김기춘 비서실장 퇴진론으로 비화되고 있다. 인적 쇄신과 정부조직 개편을 바탕으로 '관피아' 등 적폐 척결 과제를 추진하려던 박 대통령으로서는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그러나 인사청문과정을 통과하더라도 커다란 상처를 안게될 안 총리후보자, 야당은 물론 여당내에서도 퇴진론이 나오고 있는 김 실장 문제를 반추할 수 있게 된 것은 박 대통령에게 정치적 손실만은 아닐 것이다. 위기의 깊이는 새출발할 기회의 크기와 비례한다.


이제 의문의 여지도 없이 청와대를 비롯한 인적쇄신과 정부개편 작업은 한템포 늦춰지게 됐다. 청와대 국가안보실(NSC)을 비롯한 외교안보 수뇌부의 부재 등 현재의 국정공백을 예측불가능성이라는 변수가 아니라 당분간 일종의 상수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 6.4 지방선거를 의식한 졸속 개편, 보여주기 쇄신의 정치적 효용성 저하로 박 대통령이 이 문제를 근본적, 장기적 관점에서 천착할 수 있게 된것은 크게 다행스런 일이다. 박 대통령이 다짐한 국가개조 수준의 쇄신은 절대 서둘러 추진할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정공백 해소지연이 국정표류로 이어져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이미 김장수 실장과 남재준 국정원장의 후임 인선이 지연되면서 외교안보 부문의 불안에 대한 우려가 적지않고, 경제부문에서도 더블딥 가능성 등에 대한 걱정으로 정책당국을 향한 비판론이 높다. 공무원들, 특히 고위직 공직자들의 소명의식과 책임감을 강조하지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그동안 '받아적기 장관' 등의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자리를 비우는 마지막 시간까지 직책과 직무이행에, 국민을 위한 의무이행에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 어수선한 분위기 아래 그나마 일손을 놓아버리면 그간 국정 고위책임자들을 향한 세간의 비판이 틀린 것이 아니었음을 스스로 입증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점에서라도 더욱 자세를 다잡아야 할 것이다. 쇄신을 위한 동력확보에 온몸을 던진다는 공직자로서의 엄중한 책임의식을 주문한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 및 정부쇄신 작업과 사회적 적폐척결 등 현재 눈앞에 놓인 과제들을 단신으로, 한꺼번에 처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만기친람식 국가개조는 가능하지 않다. 그리고 세월호 침몰로 드러난 대한민국호의 온갖 문제점은 단순히 정부나 법, 제도의 영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돈이 다른 모든 가치를 대체한 사회의식의 단선화와 황폐화, 지연학연 등을 고리로 한 끼리끼리 문화의 고착화, 개발독재와 민주화시대를 거치면서 형성된 계층간 지역간 뿌리깊은 갈등 등 우리 사회 구성원 전체의 자각과 반성이 필요한 영역까지 정치권력이 들어갈 수는 없는 일이다. 국정최고책임자로서, 정부수반으로서 대통령의 역할의 한계를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 작업의 첫 단추는 물론 대통령이 스스로 꿰야한다. 달라진 시대, 달라진 집권환경의 변화를 반영할 수 있는 열린 인사와 권한의 적절한 이양을 통해 개인이 아니라 조직전체의 효율과 집단적 지성이 국정을 끌어가도록 해야 한다. 대통령이 달라지려면 청와대가 함께 달라져야 한다. 사람이 바뀌고 조직, 운영방식이 동시에 바뀌어야 한다. 어차피 대통령제 아래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책임총리'나 구체적인 정부조직 개편은 그 다음 수순으로 미뤄도 된다.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온 인사들이 현 시점의 위중함에 대해 자신들이나 정치적 견지에서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입장에서 인식을 같이한다면 그 작업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진정성에 관한 소통이 이뤄진다면 국민은 인내할 수 있고, 기다릴 수 있다.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으면 대통령이 직간접적 방식으로 국민에게 어려운 시기임을 솔직히 밝히고 고개숙여 인내를 요청할 수도 있고, 물러날 고위공직자들에게도 마지막까지 책임감으로 국정공백을 막아달라고 당부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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